삶은 거저 얻은 것들로 차있다
'자, 여기. 네 선물이야!' 선물을 발견한 사람은 결국 웃음을 터트린다. '뭐야, 전혀 몰랐어!' 준비한 사람도 가슴이 뛴다. 선물이 세상에 나타난 이후 선물이 등장하는 곳에선 모두가 주인공이 된다. 선물이 만들어 준 무대에는 조명도 없고 박수소리도 없지만 괜스레 마음이 간질간질해진다. '아 정말 아름다운 인생이야'. 요정의 램프나 절대반지 같은 대단한 물건도 아닌데 선물이 선사한 마법에 홀려버리고 만다.
선물이 등장하는 이야기
'디즈니 만화동산'의 알라딘을 재밌게 보았다면 '지니'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지니가 들어주는 '3가지 소원'을 상상해 보았을 테니 말이다. 지니의 소원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한 아이가 질문한다. 넌 어떤 소원을 빌 거야? 친구가 대답했다. 첫 번째는 장난감, 두 번째는 돈,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원 100개만 더 들어달라고 할 거야. 아무래도 아이였던 어른은 이렇게 동심을 잃어갔던 것 같다.
반지의 제왕을 보던 친구가 절대반지에 관해 나눈 일화도 있다. 자신을 프로도라고 가정한다. '그 좋은 반지를, 죽을지도 모르는데 왜 굳이 파괴하겠다고 나선 거야. 나라면 절대반지를 가지고 떠날 거야. 요정들의 나라 말이야. 마지막에 프로도가 배 타고 가는 곳 있잖아. 그리고 거기서 요정을 다스렸겠지'. 이 아이도 어른이 되어간다. 여기서 잠깐, 자신이 어른이라면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과연 이렇게 쉬운 이야기인가?'
쉽지 않은 이야기
반지 운반자 '프로도'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평생 호빗들의 마을인 '샤이어'를 벗어본 적이 없기에 자신이 맡은 역할의 책임과 운명이 얼마나 무거운지 알지 못한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프로도는 가장 충실한 친구인 '샘'과 요정, 인간, 난쟁이, 마법사와 함께 절대반지가 태어난 곳, '운명의 산'을 향한 여정을 시작한다. 절대반지를 차지하기 위한 그리고 이들을 저지하기 위한 자들의 이야기는 이렇게 펼쳐진다.
일명 반지원정대는 이들을 위협하는 오크, 마법사 사루만, 사우론, 그리고 대원들 간의 아집과 불신을 연달아 마주한다. 결국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프로도와 샘은 친구들과 헤어진다. 원정대에 위기가 닥쳤다. 사우론에게 절대반지를 뺏겨 중간계가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다. 심지어 이들을 이끈 마법사 간달프는 다리 아래로 떨어지고 만다. 흩어진 대원은 서로의 도움이 없이는 이길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한편 프로도와 샘은 욕망의 화신, 골룸의 도움으로 운명의 산에 도착한다. 그들이 마주한 산은 마그마가 끓는 큰 용광로와 같았다. 반지가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왔다. 시뻘겋게 타오르고 있는 용암 위로 반지를 던지는 일만 남았다. 그러나 마그마가 끓는 절벽에서 욕망을 이기지 못한 프로도는 벌게진 얼굴로 샘에게 말한다. '이건 내 거야'. 숨을 멈추고 보게 되는 장면 중에 하나다.
너는 혼자 살 수 없어
프로도를 찾아 반지를 차지하려는 숱한 방해꾼들을 물리쳐 준 친구들의 도움이 허사가 되는 순간이다. 샘이 말려보지만 소용없다. 프로도는 이미 반지를 손가락에 낀 채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그러나 죽은 줄로만 알았던 골룸이 재등장하면서 이들의 운명은 급작스레 변한다. 골룸은 반지를 빼앗으려 프로도의 손가락을 깨물고 결국 프로도는 손가락 한 마디를 잃고 만다. 영광이 아닌 수치의 상처입니다.
이 혈투는 반지를 떨어트려 파괴해야 했던 곳, 즉 마그마가 흐르는 절벽 밑으로 프로도와 골룸, 반지가 함께 떨어지며 끝이 난다. 구사일생으로 절벽의 끝을 잡은 프로도는, 모든 여정을 충실히 함께 해준 샘의 마지막 도움으로 지옥과도 같던 운명의 산을 벗어난다. 프로도는 샘에게 그제야 자신의 고향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욕망과 의심의 안개가 사라지자 아름답고 달콤했던 기억들이 선명하게 드러났다고 말이다.
멈추지 않는 마음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무엇을 향한다. 하나 그칠 것 없는 가을 하늘을 보다가도 구름 한 조각, 날아다니는 새라도 없나 찾는다. 보지 않을 때에도 마음은 무언가를 담아내고 싶어 한다. 피곤으로 절은 몸으로 멍한 상태인데 지치지 않는 생각이 여전한 활력으로 머릿속을 휘저어 다닌다. 눈을 감아도 소용없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마음 깊이 숨겨진 무언가를 더 선명히 보기도 할 정도다.
현대인 대부분은 성찰할 시간이 많지 않지만 그렇게 머릿속에서 자주 마주하는 특별한 장면이나 대상은 잊을 순 없을 것이다. 간절히 바라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내용이 어둡든 밝든 말이다. 반지의 제왕, '호빗'을 지은 J.R.R. 톨킨은 사람의 마음을 잘 파악한 듯 보인다. 절대반지라는 소재로 반지를 마주하는 중간계 생물체들의 숨겨진 욕망을 가시화한다. 볼 수 없는 마음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난다.
톨킨의 생각
톨킨은 욕망을 멀리해야 하는 무서운 대상으로 그려낸다. '사우론, 모든 것을 지켜보는 눈'. '마음을 빼앗아 자신의 종으로 삼는 절대반지'. 이 두 등장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읽어낼 수 있다. '욕망은 어디에나 있다. 타인을 다스리려는 욕망은 그 마음을 품은 사람의 영혼을 타락시키고 잃게 한다. 지나친 욕망은 마침내 타인과 세계까지 파괴한다'. 그러나 톨킨의 세계관은 이게 다가 아니다.
작가는 반지를 파괴할 의무라는 무거운 짐을 프로도 혼자 지게 하지 않는다. 반지원정대는 그가 걸어가야 할 길을 열어주기 위해 분투한다. 적재적소에 이 여정에 도움을 주도록 요정왕들을 이끈다. 그리고 충실한 샘은 자신과의 싸움을 포기하지 않도록 프로도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준다. 덕분에 프로도와 친구들은 아집에서 벗어나 점점 서로를 이해하는 존재로 변해간다. 톨킨의 의도를 볼 수 있다.
겨울왕국
톨킨의 세상에서 나와, 이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로 잠깐 들어가 볼까 한다. 바로 '엘사'의 '겨울왕국'이다. 어두운 화산재와 뜨거운 불이 떠오르는 톨킨의 세상과 달리 하얗고 추운 바람이 부는 왕국의 이야기다. 엘사는 어렸을 적 얼음을 만들어내는 능력으로 동생을 다치게 하고 만다. 이후 통제하지 못하는 능력을 저주라고 생각하던 엘사는 정체가 탄로 나자 도망가며 노래를 부른다. 'Let it go'. 명장면이다.
엘사는 스스로를 괴물로 여긴다. 추운 겨울을 불러오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능력인데다 제대로 통제도 못하니 말 그대로 '설상가상'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도망간 엘사는 얼음궁전을 만든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고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자신만의 왕국이다. 그러나 이것은 실수였다. 다스리던 왕국만 얼음 가운데 방치하지 않고 자신을 얼음 벽으로 가둬버려 문제는 해결되지도 않고 더 커지기만 한다.
엘사가 보여주는 사람에 관한 통찰은 '홀로 된 사람의 마음은 고독한 겨울왕국과 같다'이다. 인정을 받지 못하든,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한 상황에 있든 함께 살아가지 못한 사람의 마음에는 겨울왕국이 숨어있다고 말하고 있다. 또 한 가지, 닫힌 마음은 다시 말해, '닫아버린' 마음은 세상을 얼린다고 말하고 있다. 다름을 인정받지 못하는 세상은 곧 누구도 살 수 없는 겨울왕국이라고 말이다.
봄을 기다리는 사람
C.S. 루이스가 쓴 '나니아 연대기'의 '사자와 마녀와 옷장'에도 겨울왕국이 등장한다. 하얀 마녀가 다스리면서 따뜻한 날씨만 있던 나니아는 눈이 녹지 않는 나라가 된다. 하얀 마녀는 '심오한 마법'을 내세워 기준에 들지 못한, 소위 '배반자'를 모두 처단한다. 또한 자신의 통치를 아슬란과 인간 네 명이 끝낼 거라는 예언을 듣고 그중 에드먼드를 배반자로 만들어 예언을 막으려고 한다.
루이스는 마녀를 물리칠 방법과 더불어 나니아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 올 방법으로 '더 심오한 마법'을 제시한다. 바로 기준에 든 '결백한 자의 희생'이다. 결백한 자란 '해방자 아슬란'을 가리킨다. 나니아를 만든 아슬란은 나니아의 모든 마법을 다 알고 있었고 배반자를 대신해 죽은 결백한 자는 살아날 거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하얀 마녀는 자기 꾀에 넘어가 아슬란을 끝냈다 생각했지만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이었다.
마녀는 봄이 찾아온지도 모른 채 전쟁을 시작한다. 아슬란이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나니아와 인간 4명은 그런 마녀와 사투를 벌인다. 이제 좀 겨울왕국에서 벗어나 '배반자'라는 딱지를 떼고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결국 다시 죽게 되었다 싶을 때 살아 난 아슬란이 극적으로 나타난다. 아슬란은 배반자들을 이끌고, 배반자들을 내쫓고 도륙하고 돌로 만들었던 마녀를 물리친다. 마침내 정말 겨울이 끝이 난다.
더 심오한 질문
현대인들은 경쟁을 익숙한 개념이라 생각하지만 상이한 의미를 가진 '노력'이라는 단어와 혼동하여 쓰곤 한다. 노력은 간절히 바라 온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애를 쓴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러니 상은 남들과 겨루와 이겨서 얻는 '성취물'이 아니라 노력으로 얻은 좋은 결과와 수고로운 행위를 칭찬하는 '값비싼 무엇'이다. 하지만 어느새 상은 성취물이 되었다. 경쟁에서 졌다면 노력하지 않은 것이 되었다.
경쟁에서 지면 '인생에서 경쟁은 필수인가'에 라는 다소 철학적인 질문을 마주하면 '아니다'의 진영에 서서 스스로를 위로한다. 하지만 이 질문을 제쳐두고 생각해야 할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경쟁하고 있는가 경쟁하기 위해 살고 있는가?'라는 문제다. 주객전도가 되어버린 듯한 현실을 살아가를 인생으로서 '왜 우리는 경쟁하는가? 다른 방법은 없는가?'라고 질문해봐야 한다.
상 vs 선물
'반지원정대'에 지원했던 사람들은 프로도와 같은 호빗을 제외하곤 소위 전문가들이었다.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이들이었기 때문에 아집과 서로에 대한 편견이 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얼마 가지 않아 실패의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하지만 그들은 곧 배웠다. 자신이 우위에 서겠다는 욕망을 버려야만 함께 살 수 있다는 교훈을 말이다. 타인을 나의 소유물이나 성취물로 받아들이지 않고 존재로 보게 된다.
자신의 왕국을 온통 겨울로 만들었던 엘사는 자신을 사랑하고 믿어주는 동생의 사랑 덕분에 자신을 발견한다. 저주를 받은 괴물이 아니라 능력을 가진 자신의 본모습을 발견한 엘사는 '사랑'이라는 마법으로 눈을 녹여내고 동생을 구한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이전과 달리 능숙하게 제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방법도 알게 된다. 저주가 선물로 바뀌는 순간이다.
'배반자'로 낙인찍혀 하얀 마녀의 노예로 살던 '나니아인'들이 '무고한 자의 희생'으로 자유를 얻은 이야기에서 우리는 인생을 상과 벌로 나눌 수 있지 않음을 배울 수 있다. 경쟁을 해야만 값어치 있는 '상'을 받을 수 있고 상이 아니면 혹독한 벌이라고 생각하기엔 인생은 선물로 가득 차 있다고, 루이스는 말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받은 선물이 없다고 생각하신다면 지금부터 조금 실마리를 드려보겠다.
선물은 탄생하면서부터 그 궤를 달리 했다. 세상의 다른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인내한 적도, 간절히 원한 적도 없는데 너무 당연하게 인생을 채우고 있는 것. 그것이 '선물'이다. 또한 나의 소유가 될 수도 없고 노력한다고 성취할 수 있는 무엇도 아니다. 당연하지 않지만 너무 당연히 내게 있는 것. 나에겐 영원할 수 없지만 영원히 있는 모든 것. 알아차리셨는가?
삶을 살아가려면
알라딘 이야기는 꽤 길고 복잡하지만 핵심은 이렇다. '삶은 생각과 다르게 진행된다. 하지만 주어진 기회로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고 남을 돕는다면 꿈꾼 그림과 그리 멀지 않다'. 알라딘은 왕궁에 살고 싶다는 소원 대신 마지막 소원으로 지니를 해방시켜주었다. 지니는 알라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고 '자스민' 공주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려 했던 소원을 이루었다. 바로 알라딘이다.
우리가 사는 삶에는 승부만 있지 않다. 어쩔 수 없이, 피할 수 없는 승부를 벌여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승부가 있는 곳에서도 승패와 관련 없는 고귀한 기품과 깊은 성찰 그리고 인내로만 보는 세계가 있다. 현실을 이해하고 감내하고 붙들 수 있는 풍성한 내면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 선물로 주어진 모든 것, 그것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각자가 선물이라 깨달은 무엇이든, 사람은 그 모든 것을 받았다.
어쩌면 사람에게 주어진 큰 선물 중에 하나가 바로 사람일지도 모른다. 홀로 살 수 없다고 인정하고 내게 없는 것이 저 사람에게 있다는 현실을 알았을 때 경쟁하여 상대방을 성취물로 삼기보다 서로에게 선물로서 존재할 있다면 가능한 이야기다. 우리가 정말 살아가야 할 삶은 승부가 독식하지 못하는 인생이고, 인생은 승패로 결정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그러니 '같이 살아가라고' 무언가가 속삭여주고 있지 않은가.
루이스는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자신을 위해 할 수 없는 일을 다른 사람들이 해줄 수 있다는 것, 사람이 자기 카누만 빼고 모든 카누를 다 저을 수 있다는 것이 우주의 규칙이거든.
[당신의 벗, 루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