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비상

바다의 밤처럼

by 쓴쓴

바다 앞에 실컷 서 있던 겨울이 기억난다. 밤에 급작스럽게 떠난 여행이었기에 '바다니까 가는 거지, 다른 곳이면 안 갔어'라는 가벼운 불평으로 따라나섰다. 하지만 모래사장에 도착하고 보니 옹졸한 생각은 이내 바뀌었다. 파도 소리로 가득 찬 어두운 휘장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어지럽고 힘들었던 하루를 어둠이 삼키자 조용하지만 명확히 들리는 잔잔한 파도 소리에 샤워를 한 듯 개운해졌다.


눈이 어둠에 조금 적응하자 소리에 민감해졌기에 불빛을 찾아 조금 자리를 옮겨보기로 했다. 다행히 백사장 가까운 곳에 가로등이 있었다. 드디어 눈으로 확인한 바다였지만 드러난 바닷물은 당연히 푸른색이 아니었다. 불빛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던 바다는 겨우, 발 앞을 오가던 하얀 물거품이었다. 하지만 특유의 짠 냄새와 시원히 불던 축축한 바람 덕분에 바다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바다를 느끼며 '내일'도 이런 것이겠구나 생각했다.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겐 도착하고야 마는 내일이겠지만 간절히 원하는 오늘에는 아무리 애를 써도 이렇게 영영 볼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마주한 바다의 색깔과 같이 지금 내가 만약 밤을 지나치고 있는 거라면, 누군가가 말하듯 터널을 통과하고 있다면 아무리 찾아도 무엇을 마주할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길고 가느다란 수평선과 영롱한 색을 내뿜는 바다를 그 밤에 어떻게든 보려 했다면 세 가지 중에 하나를 택해야만 했다. 1) 모래사장에 죽치고 앉아서 해가 뜨기까지 기다린다(멋진 일이지만 가장 바보 같아 보인다). 2) 이런 멍청한 생각을 멈추고 눈을 감고 차라리 멋진 상상을 즐긴다(바닷가에 와서 바다를 상상하는 사람도 있을까). 3) 숙소에 들어가 따뜻한 물로 씻은 후 해가 뜬 내일을 기대하며 잠을 청한다(멋지다).




자고 일어나 보니 감사하게도 조금의 구름도 없는 '맑음'이었다. 가로등 아래, 축축하게 젖어 계속 발이 빠지던 어제 서 있던 곳을 찾았을 땐 물거품과 함께, 남겼던 발자국은 지워지고 없었다. 그 밤의 기억도 지워진 발자국만큼이나 이젠 희미해졌다. 하지만 바다는 여전히 맞이할 것이다. 바다의 밤을 찾아온 사람에게 파도소리, 짠 냄새와 축축한 바람을 보내어 자신의 본모습을 감춘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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