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로서 빛나다
갈팡질팡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 문제를 파악해보니 여러 원인이 있지만 꿈이 없는 나 자신이 가장 큰 고민이다. 하고 싶은 일이 분명한 친구들이 부럽다. 가능과 불가능의 문제는 이것 다음이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이것저것 찾아도 본다. 나를 찾는다는 여행을 다녀오면 달라질까. 마음의 양식을 쌓아볼까. 도서관도 가보고, 맘에 드는 책이 있을까 서점에 들린다.
답답한 마음에 친구를 만나볼까 휴대폰을 켠다. 연락처를 한동안 들여다보며 손가락을 위아래로 움직인다. 고민하다 보니 어느새 저녁때다. 사람 만나기도 쉽지 않다. 혼자 식사를 하다가 뭘 좀 배워볼까, 자기계발은 전혀 못 하겠고 취미 정도로 가져볼까 생각하다 하루의 끝이 한 없이 뒤로 미뤄진다. 이런저런 생각에 늦잠을 잔 아침엔 머리가 무겁다. 잠이 덜 깬 몸을 일으켜서 샤워를 하며 생각한다. 어휴 한심한 놈. 상상만 하면 뭐하냐. 제대로 한 게 하나도 없네.
어린 왕자 이야기
얼마 전 <어린 왕자>가 애니메이션 영화로 각색되었다. 어린 왕자가 실제로 살아있는 마을이 이야기가 펼쳐지는 무대다. 영화에서 어린 왕자는 더 이상 어리지 않다. 원작에서는 '사업가'에게 별을 소유하면 무엇을 할 수 있냐고 당돌히 묻던 어린 왕자가 이젠 그 사업가에게 고용된 어른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어른이 된 어린 왕자의 삶은 별로 좋지 않다. 겨우 얻은 이 직장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이전 직장들에서 제대로 일을 해내지 못해 이곳으로 쫓겨왔기 때문이다.
영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모습을 담아낸다. '어린'왕자처럼 '정말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며 꿈을 꾸는 젊은이들은 이상을 좇는 부적응자일 뿐 그들의 미래는 생각보다 밝지 않다. 사람들이 가진 소망을 상징하는 별 모두를 사업가가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별이 사라져버린 어두운 밤엔 꿈꿀 수 없다는 이야기는 우리의 현실과 비슷하다. 요새 자라는 아이들은 더 심하다. 꿈을 꾸기보다 꿈을 소유하라고 강요받는다. 하늘의 별처럼, 길을 찾도록 인도해주고 세상을 밝히 비출 수 있을지도 모르는 꿈들은 모든 꿈을 소유한 '사업가'에게 팔린 시대다. 그래서 결국 어린왕자는 부모와 어른들의 충고를 따라 '사업가'에게 쓸모 있으려고 노력한다.
'사업가'가 B612 소행성도 가져갔기 때문에 어린 왕자는 자신의 고향을 잃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기억이 희미해지고 말았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왜인지 우리들의 모습이 보인다. 마음 한편이 묵직해지고 시려오는 이유는 우리가 꿈이 없었던 게 아니라 꿈을 잃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정말 어릴 적 바라보던 '보이지 않지만, 밝게 빛나던 인생의 별'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영화 속 사업가는 세상의 모든 별을 잡아다가 잘게 가루를 낸 뒤 자신이 원하는 물건들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옆엔 '어른이 되는 기계'가 있다. 쓸모없는 아이를 어른으로 만들어주는 기계다. 그래서 이 곳, '어른들의 도시'에는 아이가 없다. 다시 말해, 꿈을 꿀 줄 아는 아이는 남아있지 않다. 그리고 모두 새롭게 조립된 꿈을 얻으려 열심히 산다. 영화에서처럼 어른이 된 우리도 쓸모 있는 어른이 되고 싶어 한다. '정말 중요한,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다 잃은 채로 말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
'어른들의 도시' 변두리에 남은 집으로 한 소녀가 엄마와 함께 겨우 이사를 온다. 이 아이는 장차 이 도시와 어른이 된 어린 왕자의 구원자가 된다. 어린왕자의 소행성을 찾아 어린시절을 기억나게 해주고 도시의 밤에 별이 다시 빛나도록 한다. 그러나 첫 시작은 순탄하지 않다. 엄마가 이 도시로 이사 온 이유가 '명문학교 학군'이기 때문이어서다. 하지만 소녀의 새 집이 변두리에 있다는 사실이 뜻밖에도 새 이야기의 시작점이 된다.
어른들의 도시와 이질감이 드는 집이 소녀가 사는 집 옆에 있다. 이 집엔 어린 왕자를 만난 원작 속 비행사가 살고 있다. 이제 할아버지가 된 늙은 비행사는 소설 마지막 부분에 나오듯 여전히 어린 왕자를 찾는 중이다.
영화가 여기서부터 보여주는 재미있는 설정은 이 할아버지를 제외하고는 어린 왕자의 이야기를 아무도 기억하거나 믿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린 왕자의 이야기를 소녀는 믿어준다. 소녀는 '보이지 않는 것'을 믿어보기로 도전한 셈이다. 분명하고 쓸모 있는 것만 믿는 어른들과 달리 소녀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믿는다. 하지만 딸의 행동이 엄마는 탐탁지 않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장차 인정을 받으려면 앞으로 해야 할게 아직 많다고 생각했고 그러기엔 이런 시시한 농담 따먹기는 그만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사람들과의 평범한 대화에서 느끼는 '친밀함'은 어른들이 누릴 수 있는, 혹은 바랄 수 있는 소소하지만 바라기 어려운 '보이지 않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 아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아이들은 소꿉장난을 하고 역할놀이를 하면서 전혀 모르는 아이들 사이에서 친밀함을 느낀다. 상대의 사소한 움직임에 반응하고 감동하고 그래서 마침내 소리를 지른다. 화가 나서도 무서워서도 아니다. 기쁨의 탄성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어린 시절을 기쁨으로 채운다. 역시 어른들은 자라면서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이 틀림없다.
성취의 문제가 아니라 유지하는 측면에서
아이들은 어른과 달리 걱정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다. 책임져야 할 것들이 없고, 또 책임을 져야 할 선택을 하기 위해 고민할 이유도 없다. 그러기에 행복한 얼굴을 항상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때 아이 었던 적이 있었던 우리는 궁금하다. 과연 책임 때문에 우리가 불행한 걸까. 우리가 갈팡질팡하는 게 우리에게 불행인 걸까. 아이들도 과자를 고를 때 갈팡질팡한다. 그런데도 아이들이 과자를 두고도 웃을 수 있는 이유가 과자를 많이 먹으면 탈이 날지 모르기에 후회하지 않기 때문일까?
사람은 성장하는 과정에서 많은 경험을 쌓을 뿐만 아니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점점 많이 얻는다. 그래서 미래를 미리 볼 수 있다고 스스로 믿게 된다. 지금 자신이 볼 수 있는 확실한 근거를 토대로 곧 다가 올 어려움과 행복을 준비하고 기대할 수 있다고 말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확보할 수 있는 확실한 근거가 더 많아야 한다. 그래서 '쓸모 있는' 것을 찾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쓸모 있고자' 한다. 나 자신을 확실하게 만들지 않으면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나를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야만 나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 아주 확실한 미래 말이다.
아이들은 분명 어른처럼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과거를 어른들보다 더 잘 기억한다. 그리고 행복한 기억이든 좋지 않은 기억이든 다 되새긴다. 그러나 그것들로 현재를 판단하지 않는다. 그리고 미래를 그려내려 애쓰지 않는다. 다시 말해 미래를 아름답게 만들려고 자신을 바꾸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얘기합니다. '나는 젤리보다 과자가 좋아. 나는 초콜릿보다 코코아가 더 좋아'라고 말이다. 그들은 그저 자신을 유지한다. 현재의 모습 그대로 존재하면서 과거가 현재를 판단하지 않게 하고, 미래를 더 아름답게 하려고 자신의 모습을 일부러 변형시키지 않는다.
난 꿈이 있어요
자신을 이겨내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시도와 그 과정 중에 겪는 고난을 어느 누구도 무시할 수는 없다. 또한 모든 사람은 오늘보다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자유가 있다. 하지만 정작 세운 꿈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다. 이것이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자신이 세워놓은 계획표 앞에서 스스로의 가치를 무시한다. 이것이 아이의 꿈과 어른의 꿈의 차이다.
아이의 꿈은 당연히 허무맹랑하다. 실현 가능성이 없다. 어른들이 보기에 세상을 조금도 모르는 어리석은 꿈이다. 그러나 꿈을 이루지 못했다는 자책감으로 아이는 자신을 무너뜨리진 않는다. 어른들처럼 갈고닦아 온 날카로운 실력의 칼로 스스로를 베어버리지 않는다. 꿈을 이루기 위해 더 소중한 것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버리는 자만심도 아이들에겐 없다.
어른의 꿈으로 자라는 아이
아이들은 부모라는 어른을 통해 이 세상을 사람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각에 일어나는 일이 왜 중요한지도 모른 채 그래야 한다고 하니 타의로 시도할 수밖에 없다. 아침마다 비슷한 시각에 일어나 앞으로 가야 할 학교뿐만 아니라 회사, 사회생활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 가르치는 '어른의 꿈'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당분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좀 더 자라면 자연스레 익힌 습관 덕분에 어른이 되어가는 다음 과정을 조금 더 수월하게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어른들도 여전히 배운다. 어른은 어른을 통해 사람답게, 사람이 되는 방법을 배운다. 화해해야 하는 사람에게 눈 질끈 감고 먼저 말 걸기가, 아니 그러겠다는 마음을 먹기조차 얼마나 어려운지 아이들은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였던 어른은 생각한다. '규칙적으로 비슷한 시각에 일어나는 것은 얼마나 쉬웠던 거야. 아이로 돌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화해 같은 쓸모없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될 텐데'. 그런데 이렇게 생각했다면 과거의 자신에게 사과하셔야 한다. 이는 아이였던 내가 부지런히 노력했던 시절에 대한 모독이다. 아침마다 투정 부리던 자신을 잊으신 건가.
아이의 마음은 항상 설렌다
어느 한 가정의 주말을 상상해 보자. 알람이 울린다. 늦게까지 자고 싶은 마음은 사람이라면 모두 같다. 부모님이 아이를 깨운다. '놀러 가기로 했잖아. 어서 일어나 씻어야지'. 아이는 칭얼댑니다. 왜냐면 그것은 나의 꿈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른의 꿈이고, 어른이 계획하는 3시간 후 도착할 식당의 음식을 기대할 수 있는 능력이 아직 자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 아이는 3시간 후 마주 앉은 바닷가의 한 식탁에서 벌겋게 익은 새우를 보며 좋아하고 있을 것이다.
어른은 아이를 가르친다. 그러나 아이가 아니었던 적이 없는 어른은 무언가를 잃어버렸다. 미래를 계획하고 추측할 수 있는 경험과 사고능력이 자라면서부터였다. 아이의 마음이자 사람이 잊어버리기 쉬운 마음, 바로 '설렘'이다. 사람을 만나 대화를 진행할 때, 친밀감을 기대해본 적이 오래 전이다. 새롭게 마주하는 일들에 대해 먼저 나타나는 반응은 설렘이나 기쁨이 아니라, 긴장과 걱정이다.
어느새 무언가를 책임져야만 하는 나이가 된 사람에겐 책의 첫 장을 넘기는 설렘이 남아있지 않다. 첫 번째 장이 끝나기도 전에 표지를 보며 다짐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만다. 그런 자신을 어떻게든 미워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습관처럼 과거의 책을 꺼내 들어, 손가락에 침을 묻혀가며 조목조목 오늘의 나를 판단한다. 그리고 미래를 예측한다. 그리고 자만심과 자괴감으로 스스로를 망치고 만다.
소망
우리에겐 아이의 마음이 필요하다. 과거의 일과 미래의 걱정으로 현재를 망치지 않는 어린이처럼 되어야 한다. 설레는 마음을 잃지 않아야한다. 그리고 포기했던 지난날과 성취하지 못한 조금 전 일에 함몰되지 않고, 내가 누구인지를 기억해야 한다. 나는 코코아보다 초콜릿이고, 젤리보다 과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아주 간단한 사실을 말이다.
꿈의 망대가 쓰러져 스스로를 덮치지 못하도록 주의할 줄 아는 어른의 지혜도 필요하다. 바로 더 중요한 것을 잊지않고 지킬 수 있는 능력 말이다. 쓸모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을 찾다가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나머지를 버리는 어리석은 일은 그만 반복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존재로서 빛나다
이 글의 처음, 무엇을 할지 몰라 고민하던 한 청년의 이야기로 돌아가 본다. 꿈이 없다. 아니 꿈이 있었지만 꿈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머리를 식히려고 잠깐 밖으로 나와 본 밤하늘에 별이 드문드문 보인다. 잘 보이진 않지만 저게 아마도 북극성일까, 하고 생각해본다. 갑자기 별이 가득 차 있는 하늘을 보고 싶어 진다. 밤을 밝게 빛나게 해주던 어린 시절의 별들이 마치 전래동화처럼 머릿속에 희미한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한동안 별빛을 관찰하던 청년은 이내 무언가를 결심한 듯 한숨을 내뱉는다. 그리고 빈 노트를 꺼내어 무언가를 적어 내려 갑니다. 살짝 내려온 눈매에선 기대감을 그리고 꾹 다문 입꼬리에선 단호함이 느껴진다. 한참을 적어 내려 간 후에, 적어 놓은 항목 위에 이러한 제목이 붙는다. '나를 비추는 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