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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쓴쓴 Nov 19. 2020

무대에서 퇴장

포근한 겨울이란 말만큼 이질적이었던 죽음

예보 시점이 지나도 내리지 않는 비의 밤이었다. 바닥에 고인 물조차 없는 가물어버린 겨울의, 하룻밤 사이 일 년치 추위가 다 지나가버린 것만 같은 포근한 연말의 밤이었다. 산책하기 좋다며 웃으며 지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고양이가 죽어있었다.


이 명징한 문장에 과한 의미를 싣고 싶진 않다. 하지만 인간은 정보를 담아내는 언어의 한계를 육감적으로 알고 있다. 그렇게 나는 시각 혹은 청각으로 전해진 문자 너머에 자리 잡은 많은 것들을 나머지 감각으로 구현해낸다. 마치 어제 보았던 것처럼 기억해낸다. 그러기에 기억은 스크린에 비치는 화소의 조합이 아니라 끊임없이 흔들리는 스노볼 속의 하얀 입자가 된다. 둘 다 현실을 흉내 낸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지만, 입자는 생각의 자리, 나의 공간까지 들어와 특정한 무언가를 떠올리게 만드는 하양이 된다.


고양이는 차가운 바닥에 누워있었다. 마치 오랜 갈증과 사냥에 지친 것처럼, 배가 푹 꺼져버린 채로 옆으로 누워있었다. 자는 듯한 모습으로 눈을 감고, 항상 등장하던 자신의 무대, 쓰레기 더미 옆에 자리 잡고 있었다.




늦잠을 자도 되는 아침, 조금 열린 창 사이로 빗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천둥이 잦게 쳤다. 더 이상 잠을 청할 수 없었고 또 붓을 줄 알면서도 라면을 끓였다. 빠르게 식사를 해결하고, 좀이 쑤시는 몸을 부지런히 놀려 집을 나섰다. 곳곳에 물 웅덩이가 보였고, 대기는 온통 습기로 가득했다. 길모퉁이는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고, 마치 비어있는 무대처럼 간밤의 죽음은 포근한 겨울의 고양이와 함께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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