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읽고, 쓰다 (14) - 모 모 모 모 모

by 숨CHIP

제목 : 모 모 모 모 모

작가 : 밤코

출판사 : 향



이 책의 사용연령은 3세 이상입니다.


이마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밀짚모자를 눌러쓴 농부가 있습니다. 밀짚모자 아래로 삐져나온 머리카락이 보입니다. 일하는 중에 흐르는 땀을 닦기 위해 수건을 목에 걸쳤습니다. 노동에 단련된 농부의 손과 손가락은 크고 두껍습니다. 검은 바지와 작업화에는 흙이 묻어 있습니다. 농부의 옆으로 벼의 근본이 되는 초록 모를 키워 놓은 모판 다섯 개가 놓여 있습니다. 그 위에 모 모 모 모 모라고,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농부는 지면에서 사십오도 각으로 허리를 아래로 숙인 채 논에 일정한 간격으로 모를 심고 있습니다. 모내기를 하는 중입니다. 얼마나 힘이 드는지 농부의 얼굴에서 땀이 비 오듯 떨어지고 있습니다. 논에 심어진 모 사이사이로 알에서 깨어난 올챙이들이 헤엄치고 있습니다.


땅에서 지열이 피어오르는 계절입니다. 봄에 깨어난 올챙이들이 개구리가 되었습니다. 어린 모들도 무럭무럭 덩치를 키우며 벼로 자라는 중인데 농부는 무척 화가 나 있습니다. 한 벼 건너마다 벼보다 더 빨리, 더 크게, 악착같이 자라는 논의 잡초, 피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벼 피 벼 피 벼 피입니다.


벼에 낱알이 풍성하게 자라나고 있습니다. 농부는 작업용 목장갑을 끼고 허리를 직각으로 숙인 채 앞으로 전진하며 피를 뽑아냅니다. 그 모습이 마치 불도저가 돌진하는 것 같습니다. 피는 벼보다 더 강력하게 뿌리를 내리기에 힘이 많이 들어갑니다. 한쪽에선 뽑힌 피들이 쌓여가고 논에 살고 있는 메뚜기와 개구리들이 농부의 잡초 제거에 깜짝 놀라 여기저기로 뛰어오릅니다. 피 뽑기는 벼농사의 큰일 중 하나입니다. 피를 뽑지 않으면 벼로 갈 영양분을 잡초가 빼앗기 때문입니다.


낱알이 튼실하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벼는 자신을 키워준 땅에 감사하다는 듯이 조금씩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습니다. 엄마 오리와 아기 오리들이 평화롭게 벼 사이를 지나갑니다. 오리들은 벼 사이사이에 자라나는 잡초들을 먹이로 삼기에 농부와 벼의 좋은 친구입니다. 농부는 흐뭇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논이 온통 벼 벼 벼 벼 벼입니다.


이대로 가을까지 잘 자라면 좋겠건만, 거센 바람을 동반한 태풍이 들이닥칩니다. 엄마 오리도 날아가고, 아기 오리들도 날아가고, 농부가 쓰고 있던 밀짚모자도 날아가고, 몇 가닥 남아있지 않은 농부의 머리칼도 날리고, 벼에서 떨어져 나간 낱알도 바람에 날아갑니다. 바람을 견디지 못한 벼들이 땅바닥에 바싹 엎으려 누워버립니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벼가 썩어버립니다.


농부는 벼에 벼를 기대어 쓰러지지 않게 단단히 묶어 세웁니다. 벼와 벼가 만났기에 ‘뼈’가 되는 걸까요. 벼가 많이 자란 탓인지 모내기와 피를 뽑을 때보다는 허리를 적게 숙일 수 있습니다. 더욱 굵어진 낱알은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자꾸 땅을 향합니다.


논이 온통 황금빛입니다. 황금빛 벼들 위로 빨간 고추잠자리들이 날고 있습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햇살과 바람, 비를 내어준 자연과 농부의 정성이 만들어 낸 장관입니다. 농부는 평화로운 표정으로 자신이 일구어낸 광경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목장갑을 낀 농부의 한 손에 둥글게 굽은 낫이 들려 있습니다.

농부는 조선 제일의 검객처럼 한 번의 낫을 휘둘러 벼를 베어냅니다. 오른 다리는 뒤로 쭉 뻗고 왼 다리는 구십 도로 굽힌 채, 사사삭. 마치 벼를 베는 소리가 나는 것만 같습니다. 베어낸 벼를 든 왼손과 낫을 든 오른손. 일직선이 된 얼굴과 몸과 다리. 불필요한 동작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자세입니다. 작가는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해 벼라는 글자마저 반 토막을 내어버립니다.


넓은 논에 자라나는 모든 벼를 낫으로 베어낼 수는 없습니다. 농부는 콤바인으로 벼를 수확합니다. 그동안은 허리를 굽혀 일했지만, 이번에는 허리를 편 채 의자에 앉아 편안하게 기계를 조종합니다. 이런 기회를 지나칠 리 없는 참새 때가 농부의 머리 위로 날아듭니다.


콤바인이 지나간 자리에는 낱알이 제거된 벼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습니다. 콤바인도 백 퍼센트 완벽할 수 없는 법. 벼에 남아있는 낱알을 먹기 위해 참새 때가 보물 찾기를 하듯 볏짚 속을 꼼꼼하게 뒤집니다. 가을은 누구에게나 풍성한 수확의 계절입니다. 풍성한 먹거리에 신이 난 참새 때가 볏짚 위에서 노래 부릅니다. 지지벼벼 지지벼벼.


낫으로 베어낸 벼 역시 탈곡기에 넣어 낱알을 수확합니다. 탈곡기 위에도 탈곡기 아래에도 떨어진 낱알을 주워 먹으려는 참새들이 목이 빠질 듯이 탈곡하는 과정을 지켜봅니다. 탈곡기에 들어간 낱알은 쌀이 되어 커다란 포대에 가득가득 담깁니다.

농부는 수확을 끝내고도 쉬지 않고 허리 숙여 일합니다. 낱알을 제거한 볏짚을 한 아름씩 모아 볏단을 만듭니다. 모아 놓은 볏단은 젖소들의 겨울 양식이 됩니다.

커다란 상 위에 밥이 차려져 있습니다. 아이들은 숟가락 가득 밥을 담아 그 해 수확한 햅쌀로 지은 밥을 맛나게 막습니다. 농부는 아이들이 밥 먹는 모습을 밝게 웃으며 바라봅니다. 농부는 상 앞에 앉아서야 일 년 동안 몸의 일부였던 밀짚모자, 수건, 목장갑, 작업화를 모두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선 말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맨 뒷장 표지를 넘기면 주의사항이 나옵니다. 일 년 동안 정성껏 농사지은 쌀로 지은 밥이니 밥톨 남기지 말고 떼어먹기 바랍니다.


keyword
이전 13화그림책 읽고, 쓰다 (13) - 씩씩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