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읽고, 쓰다 (15) - 수박 수영장

by 숨CHIP

제목 : 수박 수영장

작가 : 안녕달 그림책

출판사 : 창비




소개된 작가 홈페이지에 접속해 보면 그동안 그린 많은 그림책과 그림을 맛볼 수 있다. 책 정보 코너에도 수박씨가 붙어 있다.


초록 바탕 위에 무규칙으로 검은 줄이 그어진 수박 위로 빨간 태양이 격렬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땅과 태양의 기운을 담뿍 받은 수박은 한여름의 선물처럼 완전히 익었습니다. 다 익은 수박은 제 힘을 견디지 못하고 조금씩 갈라지더니 반으로 쩍 나누어졌습니다. 빨간 속살에 검은 씨앗이 참 잘 익었습니다.


넓은 챙의 밀짚모자를 쓰고 수영복 바지를 입은 백발의 할아버지가 사다리를 든 채 수박 아래로 다가오더니 반으로 쪼개진 수박에 사다리를 척, 하고 걸칩니다. 사다리를 타고 갈라진 수박 위로 올라온 할아버지가 놀랍니다. 이 수박은 수영장 용 수박이기 때문입니다. 이름하여 수박 수영장입니다.


할아버지가 수박 안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빨간 속살을 밟을 때마다 석, 석 소리가 납니다. 수박 씨앗으로 다가간 할아버지는 팔뚝만 한 씨앗을 쏙 빼내 휙 집어던지더니 씨앗을 뺀 자리에 살포시 몸을 담급니다. 어깨까지 몸을 담근 할아버지 입에서 자연스럽게 감탄이 나옵니다.


음, 시원하다.


반듯하지는 않지만 정갈하게 구획 지어진 논에서 농부가 낫을 들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수박 한 통을 들고 지나가는 마을주민이 옆 동네의 코코넛 수영장 개장 소식을 농부에게 알리며 수박 수영장의 개장 여부를 농부에게 묻습니다. 논에서 나온 농부는 마을주민과 함께 수박 수영장을 보러 길을 나섭니다. 농부는 잘 정리된 논둑길을 걸으며 작년에는 씨가 너무 많아 수영하기 힘들었다며 올해는 어떨지 궁금해합니다. 저 멀리에서는 하루에 몇 번 오지 않는 마을버스가 산 끝자락에 위치한 마을버스 정류장을 막 출발합니다.


한 아이가 수박 수영장에서 놀고 있습니다. 그런데 수박씨가 너무 많아 제대로 물놀이를 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사람보다 수박씨가 더 많습니다. 아마도 작년 수박 수영장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길을 가는 농부와 마을주민 뒤로 누군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두 어른은 무슨 소린가, 하며 뒤를 돌아봅니다. 곧이어 노란 튜브와 튜브를 들고 있는 작은 손이 보입니다. 튜브를 들고뛰는 아이의 뒤로 아이의 친구들이 보입니다. 모두 수영복을 입었고 제일 뒤에 있는 아이는 허리에 튜브를 낀 채 달리고 있습니다. 수박 수영장을 향해 달려가는 소리가 경쾌합니다.


타닥, 타닥.


마을버스가 저 멀리 사라져 갑니다. 낮게 솟아있는 산 아래 파란색과 보라색 지붕을 인 집들이 보입니다. 아이들은 논둑길을 가로지르고 산 아래 마을을 지나 수박 수영장으로 달려갑니다. 농부와 마을주민은 아이들을 보고 흐뭇해합니다. 사랑스럽고 평화로운 농촌풍경이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나무들을 기둥 삼아 빨랫줄이 늘어서 있고 팽팽한 빨랫줄 위로 이불과 옷들을 널고 있습니다. 빨래가 바람에 떨어지지 않게 빨래집게로 단단히 고정합니다. 쪽쪽이를 입에 문 아이를 포대기로 업고 있는 엄마는 온 가족이 덮을 만큼 큰 이불을 널고 있습니다. 엄마 곁에는 엄마 일을 도와주는 큰아이가 다음에 널 빨래를 꺼내고 있습니다. 빨래를 너는 공터 한 켠에서는 여자 아이들이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수영복을 입고 튜브를 든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그 사이를 가로질러 달려갑니다. 허리에 튜브를 낀 채 달리는 아이는 아예 널어놓은 이불을 뚫고 달립니다. 고무줄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묻습니다.


어디가?


수박 수영장에!


한참을 달려온 아이들이 드디어 수박밭에 도착했습니다. 거대한 수박 사이를 가로지르다가 수영장 수박을 발견하고는 너무 좋아서 비명을 지르는 아이도 보입니다. 수박이 어찌나 큰지 아이들이 난쟁이가 된 것 같습니다.


달려온 아이들은 잽싸게 사다리는 타고 올라갑니다. 한 아이는 수박 넝쿨을 타고 올라갑니다. 수박 안에는 제일 먼저 오신 할아버지가 여전히 수박 찜질을 즐기고 있습니다.


사다리를 다 오른 아이가 폴짝 뛰어 빨갛게 익은 수박 살로 들어갑니다. 뒤따라오던 아이들도 안으로 들어오더니 석, 석, 석 소리를 내며 수박 살을 가로지릅니다. 수박 살 위에는 아이들이 발을 디딜 때마다 앙증맞은 발자국이 찍힙니다. 잘 익은 수박은 아주 시원합니다.


수박 넝쿨을 타고 올라간 아이는 나머지 반쪽 수박에 도착했습니다. 넝쿨에서 수박 쪽으로 난 수박잎 위로 조심스럽게 나아간 아이는 마치 다이빙 선수처럼 수박을 향해 뛰어내립니다. 허리춤에 찬 노란 튜브를 꽉 잡은 아이가 낙하합니다. 다이빙 수영장이라면 풍덩, 이나 퐁 같은 소리가 나겠지만 이곳은 수박 수영장이니만큼 썩 소리를 내며 수박에 쑥 박혀버립니다. 사다리가 설치된 수박으로 올라온 아이들이 석, 석, 수박을 밟으며 수박에 박힌 아이가 있는 수박으로 달려갑니다.


아이들은 힘을 합쳐 수박에 박힌 아이의 튜브를 들어 뽁 빼냅니다. 그 사이 수영복을 차려입고 튜브를 든 다른 아이들도 도착해 하나둘 사다리와 넝쿨을 오릅니다. 어린아이도 할머니가 끄는 유모차에 탄 채 넝쿨을 오릅니다.


운동장만큼 넓은 수박에 올라선 아이들은 신이 났습니다. 수박 조각을 캐내고, 캐낸 조각을 수박 폭탄이라며 친구에게 던지기도 합니다. 어떤 아이는 수박 덩이를 짜내 친구의 머리 위로 수박즙을 흘려보내기도 합니다. 자기 몸집보다 큰 수박을 캐낸 아이도 있습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수박 위에서 웃음꽃이 활짝 피어납니다.


철퍽, 철퍽. 아이들이 수박을 잘근잘근 밟아댑니다. 아이들에게 밟힌 수박 살은 붉고 투명한 수박 물로 변합니다. 씨가 없는 중앙부터 점점 넓게 밟다 보니 어느새 진정한 수박 수영장이 만들어집니다. 아이들의 몸에도 붉은 수박색이 물듭니다.


수박처럼 붉은 해가 최고의 힘을 발하는 한낮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더위에 조금씩 지쳐갈 무렵 노랫소리와 함께 누군가 수박으로 다가옵니다. 한쪽에 하얀 구름과 다른 한쪽에 검은 구름을 매달고서 구름 아저씨가 구름 리어카를 끌고 옵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구름 리어카로 몰려듭니다. 하얀 구름은 햇빛을 막아주는 구름 양산이고 검은 구름은 구름 속에 가득 담고 있는 빗물을 쏟아내 즉석에서 몸을 씻을 수 있는 먹구름 샤워입니다. 인기 대폭팔입니다. 수박 한쪽에서는 먹구름 아래서 샤워를 하고 흰구름 양산을 몸에 단 아이들은 다시 사다리를 오릅니다.


수박 수영장에서는 모두가 구름 양산을 매달았습니다. 커다란 밀짚모자를 쓴 할아버지만 뺴고요. 구름 양산이 만들어 준 그늘 탓에 수박 물놀이가 이어집니다. 어른들과 아주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는 수박 가장자리에 구덩이를 파고 시원하게 몸을 담급니다. 한 아빠는 튜브에 줄을 매달아 아이들을 끌고 다니고, 수박 물을 서로에게 튀기는 아이들, 구름 양산이 만들어 준 그늘 밑에서 고요히 떠 있는 아이, 친구의 손을 잡고 수영하는 아이, 발만 담금 채 아이들을 지켜보는 주민. 파란 하늘아래 붉은 수박, 그 위에 둥실둥실 떠다니는 구름 양산은 마치 꽃이 핀 것 같습니다.


한 아이가 할아버지에게 미끄럼틀을 만들어 달라고 조릅니다. 이 말을 듣고 마을주민들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먼저 한쪽 수박의 살을 파냅니다. 파낸 수박 살은 어른과 아이들이 손에서 손으로 옮겨가며 반대편으로 나릅니다. 수박 살을 발라낸 다음에 하얗게 드러난 수박 껍질을 삽을 이용해 미끄럼틀 모양으로 자릅니다. 양쪽 수박에 나누어 선 주민들은 읏샤, 잘라낸 수박 껍질을 번쩍 들더니 반으로 나누어진 수박과 수박 사이에 내려놓습니다.


체리가 그려진 노란 수영복과 노란 줄무늬 수영 모자를 쓴 할머니가 양팔을 벌리고 신난 표정으로 수박 껍질 미끄럼틀을 타고 싹, 내려가 반대편 수박 살 속으로 퍽, 들어갑니다. 수박 살을 쌓아 올려 계단도 만들고 계단 양옆으로 수박씨를 쌓아 안전도 확보합니다. 질서 있게 줄을 서며 아이도, 어른도, 할아버지 할머니도 미끄럼틀 차례를 기다립니다.


마을 뒷산 뒤로 해가 모습을 감추기 시작합니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마을버스도 떠나고 있습니다. 수박 살로 성을 쌓고 수박씨로 울타리를 만듭니다. 동그랗게 잘라낸 수박 살에 얼굴을 그려 수박 사람도 만들며 놀던 아이들이 지는 해를 바라봅니다. 파랬던 하늘은 노란 물이 들어갑니다.


마을 사람들이 수박 위에 모여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푸르고 파랬던 산과 논도 다른 색깔로 옷을 갈아입습니다. 그때 저 멀리서 아이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명수야, 집에 가자.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엄마가 부르는 소리대로 하나둘 아이들이 수박 수영장에서 사라집니다. 어두운 하늘에 별이 빛나고 빛나는 별빛을 조명 삼아 수박 수영장에서 마지막까지 놀던 진희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바람을 따라 하늘하늘 낙엽이 흩날립니다. 모두가 떠나고 한여름의 흔적이 가득한 수박 수영장에도 노랗고 빨간 낙엽이 내려앉기 시작합니다. 수박 수영장이 문을 닫을 시간입니다.


뜨겁고 즐거웠던 여름을 떠나보내는 마지막 의식처럼 석, 석. 씨를 골라가며 숟가락으로 수박을 파먹습니다. 개다리소반 위에 놓인 수박이 깔끔하게 비워졌습니다. 비어버린 수박 통과 개다리소반에 흩어져 있는 숟가락과 수박씨가 지나가 버린 여름의 추억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괜찮습니다. 아쉬워 마세요.

수박 수영장은 내년에 또 열릴 테니까요.


그림책에는 띄엄띄엄 쪽수가 표기되어 있습니다. 책장을 덮고 세로로 세워서 보면 종이 테두리가 수박색으로 되어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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