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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영 Feb 25. 2024

5화 풀 먹인 치맛자락


위수를 처음 맞이한 것은 사당나무였다. 늦여름, 때 이른 가을의 어느 경계선 위에 있던 늦은 오후였다. 사당나무를 둘러싼 새끼줄 곳곳에 빨간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낯선 풍경을 눈에 담으며 위수는, 익숙해져야 하겠지. 지천으로 밤나무가 없어도.... 옆에 서 있는 신랑의 옆얼굴을 보며 중얼거렸다. 혼례식에서 처음 본 신랑. 자신보다 한 치는 더 커 보이는 그 옆에 딱 붙어 섰다. 그 모습이 고목나무에 매달린 매미 같았다. 의지할 곳이 그곳 하나인 듯.

온 동네 사람들이 위수가 보고 있었다. 시집온 여자에 대한 호기심이 위수의 몸을 훑었다.
아이고, 저리 작아서야 아를 낳긋나.
그걸 우찌아노, 순풍순풍 낳게 생겼구만. 튼실하구만.
창근이 색시 이뿌구만, 순덕이 보다 낫구만.

웅성웅성 소란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한걸음 더 창근의 옆으로 붙었다.

사당나무를 반쯤 돌아서자 보이는 골목길 안쪽으로 작은 우물이 보였다. 우물을 두고 몇 가구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 중 양철 대문으로 창근은 들어섰다. 따라 들어 서자 작은 사랑채가 보였다. 안채와 사랑채, 창고가 마당을 감싸 안고 있는 집이었다. 사방 어디서 바람이 불어와도 포근함을 잃지 않을 것 같은 집이었다. 위수가 살았던 응골의 집에 비하여 연못도 화단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포근함이 감싸는 곳이었다.

포근하긋지.  따뜻하지 못혀도 뜻시기는 하긋지. 그것면 된 것이야. 잘 살 수 있긋제. 못할 것이 뭔디. 큰오빠의 걱정을 들어주어야지.

잠시 큰오빠의 연못에서 본 등이 생각났다. 언제부턴가 점점 작아져 갔던 큰오빠의 등이 작아져 버린 등이 말없이 서서 떨리던 그날의 뒷모습이.

고개 들어 다시 집아 곳곳을 살펴보았다. 마당 한가운데 서서 빙그르르 돌아보았다. 돌담을 먼저 올라서는 창근을 보았지만, 작은 발을 돌렸다. 햇볕은 따가웠다. 늦여름의 심술 같은 따가움을 잠시 견디었다.


낯섦에 작은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으응, " 누군가 잡아 끄는 치맛자락에 눈을 떴다. 자그마한 아이가 위수의 치마를 잡아끌고 있었다. 땡그란 눈에 가득 담긴 까만 눈동자가 반짝반짝 위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2살 배기 시누이가 있다 들었다. 그 아인가 보다. 아이와 눈을 맞추기 위해 쪼그리고 앉았다.
맑은 눈을 가진 아이였다. 위수를 향해 웃는 아이의 무구함이 긴장으로 굳어 있던 눈을 풀게 했다.

"안녕, " 아이의 볼을 톡톡 두 번 두드려 주었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아이는 해사하게 웃었다. 아침 햇살이 저처럼 눈부실까.   

눈부심을 깨뜨린 쩌렁쩌렁함이 울려 퍼졌다.
  
"막내 시누이에게 그 무슨 말버릇 인고."
왔으면 얼른 따라 올라서지 뭐슬한다고 쯧쯧...

혀끝을 차올리는 말에 올려다보았다. 마당보다 한치는 높은 돌담 위에. 그 보다 더 높은 마루에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하얀 옷을 입는 시어머니였다.

처음 시어머니를 본 것은 위수네 집을 결혼을 논의하러 온 매파와 함께였던 때였다. 봄 햇살이 따사로웠던가? 봄의 화사함이었던가? 연 초록색 저고리를 입은 시어머니의 첫인상은 봄을 몰고 온 연 초록의 따사로움도 화사함도 아니었다. 쪽진 머리에 단 한 하나의 흘러내리는 머리카락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다부짐이었다. 찢어진 눈매는 위수의 모든 것을 훑어보았다.

저리 약해서야 원. 애라도 낳겠나. 실하지 못하니 쯧.

위수를 향한 말들을 마치 그 자리에 없는 이에게 하듯이 혀 끝을 차내는 것으로 판단을 내려 버린 시어머니였다. 몇 해전 홀로 되었다는 시어머니는 까슬까슬하게 풀을 먹인 치맛자락만큼 깔깔했다.

새 언니는 시어머니가 다녀간 후 시집살이를 걱정하는 말을 큰오빠에게 전했다.

" 앉는 자리에 풀도 안 나긋다니깐요. 어찌나 깔깔하던지. 에휴 우리 애기씨 우째요."
"시집가면 그 집 사람인 것을 우찌긴 우째. 지 하기 나름 인기지."

한숨을 쉬어내는 아내를 보고 돌아 앉아 버렸다.

"아이고, 저리 무심해서야."
돌아 앉아버린 남편의 등 뒤로 무심함을 원망으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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