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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영 Mar 10. 2024

7화 겨울방학 1


서성이는 발걸음 위로 바람이 스쳤고, 기다리는 걸음이 위수를 재촉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바람에 혹 창근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칠까 조마조마했다. 오늘은 창근이 겨울방학을 해 집으로 온다고 한 날이었다. 시험 기간으로 몇 주를 집에 찾지 않아 기다리고 있었던 위수였다. 혼례식장에서 처음 얼굴을 보고 결혼을 한 것이 다이지만, 남편이었다.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였다. 말로는 다 하지 못했지만, 기다렸다.

아침 서리가 내린 마당을 내려설 때면 그가 있는 그곳에도 서리가 내렸는지 궁금했고, 가을 감이 홍시가 되어 갈 때면 그가 있는 그곳에도 주황색 감이 빨갛게 익었는지 궁금했다. 온전히 함께한 계절이 없어 그가 어떤 계절을 좋아하는지 알지 못했다. 막연한 생각으로 그도 밤송이가 톡톡 입을 벌리는 늦가을을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위수였다.

다가오는 봄이 오면 밤나무를 몇 그루 심어야겠다고 생각한 위수였다. 친정 집 뒤편 가을이면  풍성함으로 물들던 산을 생각하며 밤이 생각났다.

휘익….
위수는 멈춘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 틈에서 창근을 찾으려 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이번 버스가 마지막일 터인데 모습을 보이지 않는 그가 원망스러워졌다. 다시 사람들 틈을 훑어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짐을 이고 내리는 아주머니는 윗동네에 사시는 분이었고, 학생모를 쓴 남학생은 창근과 동기인 친구였다. 그도 방학을 맞아 시골집으로 온 듯했다. 그에게 창근의 소식을 묻고 싶었지만 선뜻 다가갈 수 없어 고개 숙였다. 애먼 돌만 툭툭 찼다.

도대체 언제쯤 오는 것인지, 그는 나의 기다림을 알고 있는 것인지 왜 이리 속 태우는 거야. 뻔히 내가 기다리는 것을 알면서. 나 혼자인 줄 알면서…..

그에 대한 미움을 차버린 돌에 묻어 낼 때, 학생모를 쓴 친구가 다가왔다.

“제수씨, 창근이 기다리지예?“

조심스레 나를 부른 그가 내 물음을 읽었는지 먼저 말을 걸어 주었다.
고개 들어 옆으로 돌렸다. 친구를 마주 보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안 될 말이었다. 시골, 많은 눈들이 지켜보고 있을 터였다. 대답대신 위수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창근이 문태에서 친구 만나고 온다고 내렸는데. “

미리 말 안 했나 보네..

그는 혼잣말을 하면 돌아섰다. 돌아서는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잊은 채 그가 걸어올 길을 바라보았다. 겨울바람이 일으키는 흙먼지로 거리는 쓸쓸했다. 차가웠다. 점심을 먹고 창근을 기다리기 위해 길을 나섰던 자신이 초라했다. 계속 기다려야 하나, 돌아 집으로 가야 하나. 찬 바람에 붉어진 볼이 따가웠다.
이대로 홀로 돌아간다면 시어머니의 눈치를 봐야 할 거이었다. 기다리면 올 것인데 마중을 간다는 말에 탐탁지 않아 하던 시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발길을 돌리까. 더 기다릴까 위수의 고민이 깊어졌다.

어둠으로 짙어지는 겨울 하늘을 보며 결국 위수는 걸음을 돌렸다.


***

"왜? 혼자 오는 거이야? 만나지 못했나 보구나."

양철 대문을 밀고 들어서는 위수를 대청마루에서 내려다본 시어머니는 한마디 던졌다. 무심히 던져진 말은 잔잔한 호수에 조약돌이 되어 파문으로 위수에게 돌아왔다. 찰랑찰랑 흔들리는 것을 부여잡고 대답을 하려 고갤 들었지만 탁 닫히는 문에 묻혀버렸다.

아쉬움에 대문을 돌아보았지만 어둠만이 밀려들어 오고 있었다.

저녁상을 차리기 위해 부엌으로 들어서며 아쉬운 마음을 돌렸다. 6명의 저녁을 준비하려면 지금부터 서둘러야 했다. 군불을 지피고 쌀을 안쳤다. 한쪽은 하얀 쌀밥을 반대편에는 보리를 섞었다. 빈 하지 않았던 살림이라고 하나, 시아버지의 병환이 깊어지면서 6명 모두에게 쌀밥은 사치가 되어 버리고 있었다.

휴,,,

섞여 지어지는 밥을 보며 위수는 자신도 모르고 한숨을 내 쉬었다. 누군가는 생존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할 시기이나, 이 집안에 누구도 그럴 사람이 없었다. 양반집 둘째 딸이었다는 시어머니가 경제 활동을 하지도 않을 거이었다. 아직 어린 도련님들이 할 수도 없었고, 공부 중인 창근이 할 수 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위수 홀로 봄이 오면 무언가를 찾아보아야겠다 생각했다.


치이익.
밥이 되었다는 소리가 고요했던 부엌을 깨웠다. 밖에서 소란스러움이 들려온 것도 그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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