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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영 Feb 11. 2024

3화 깨어진 기와 틈


육이오로 삶의 터전이 폐허가 되어 갈 때에 육지 밖 섬 응골에 터를 잡았던 위수네까지 전쟁의 역사는 물들어 왔다. 한 마을에서 젊은이들만 골라 무차별 처단한 사건이 터졌고, 한 마을을 잔학하게 죽이는 학살 사건은 위수의 마을로까지 소문이 퍼져왔다. 그렇게 끄트머리의 밤나무 아래까지 전쟁은 파고들었고, 기와를 하나 둘 무너뜨렸다.

100년을 넘는 시간을 그 자리를 지키며, 이끼 하나까지 당당함을 잃지 않았던 기와는 전쟁의 바람에 깨어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작은 깨어짐이 시작이었는지도 몰랐다. 위수가 살아내어야 할 시간들의 시작, 전쟁의 바람이 가져온 기와의 깨진 틈에서부터 시작이었는지도 몰랐다.

깨어진 기와 틈을 남겨둔 채 전쟁은 잠시 멈추었다. 그 해 가을을 다 보내고 겨울이 왔을 때 무너져버린 기와를 다시 세웠다.  

그러나, 세우지 못한 것도 있었다.

전쟁은 많은 것을 바꾸었다. 폐허가 된 땅이 남았고, 형제가 적이 되어버리는 이데올로기는 상처로 남았다. 가족은 남이 되었고, 동지는 가족이 되는 회오리바람을 만들었다.

바람은 위수네를 비껴가지 않았다. 전쟁 속에서 작은오빠는 사라졌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작은오빠가 어디로 갔는지?,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무엇을 했는지?


들려오는 소문은 무성했지만, 집안 누구도 찾지 않았다. 무언의 약속이었고, 무언의 믿음이었다. 등을 돌리게 만든 그것에 적의를 드러냈지만, 작은오빠에 대한 원망을 하지는 않았다.

큰 오빠는 생을 끝내는 그 순간이 되어서야 작은 오빠에 대한 이야기를 가족들에게 했다. 어디로 흘러 들어가 어떠한 인생을 살았는지? 알고 있었지만 찾지 않았던, 가족들에게조차 알려 주지 않았던 비밀을 큰 오빠는 생의 마지막이 되어서야 알려 주었다.


15살,
위수의 가슴에 그렇게 물결이 숨어들기 시작했다. 안채의 작은 연못. 달빛에 비치어 만들어 내는 물결의 파장이 들기 시작했다. 총총걸음으로 호기심을 드러내던 어린 소녀는 이제 없었다. 여중학교를 다니며 문학에 심취해 있던 소녀는 이제 없었다. 다만, 어디든 흘러가고 싶은, 어디로든 사라지고 싶은 소녀만 남았다.

그때쯤, 위수는 학교를 그만둔다고 하였다.

"학교를 그만두고 싶어예. 지금 다녀봤자 더 배우지도 못할끼고."

위수의 이야기를 듣던 큰오빠는 말이 없었다. 이유도 묻지 않았다. 다만, 흔들리는 문풍지 너머만 무심히 보고 있었다. 큰오빠가 보던 것이 그 옛날 위수가 태어나던 날 아버지가 보았던 달이었는지, 흔들리는 촛불이 비치는 문풍지였는지. 붉어지는 눈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는지.

"아기씨, 와예? 뭔 일로 그랍니꺼?"

남편의 침묵을 지켜보던 새 언니가 대신 물었다. 걸음마할 때부터 키우던 위수가 시누이라기보다는 큰 딸이었던 새 언니는 위수의 선택에 놀랐다. 그런 의도를 내비치지 않았던 시누이가 갑자기 학업을 중단한다는 그 말이 마치 자기의 잘못처럼 느껴졌다. 남편에게 시누이의 존재는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새 언니는 위수를 뜻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언니, 지가 지금 배워서 뭣을 합니꺼?."

애처롭다 못해 딱하기까지 한 큰 오빠의 옆얼굴, 볼이 홀쭉하여 광대가 두드러져 나이보다 더 늙어 보이는 얼굴을 보며 말했다. 말라버린 솔방울, 겨울이 되기 전 막바지 가을에 마지막 수분을 빼앗기고 있던 솔방울 같이 말라버린 오빠가 눈에 들어왔다.

"배워서 머슬하기는요. 대학 가야지예. 오빠가 어떤 심정으로 아기씨를 키웠는지 알면서 와 그라는데요? 참말로..... 알다가도 모르겄다. "

새 언니는 그 말을 끝으로 긴 한숨을 토해냈다.


큰오빠 은오에게 위수는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존재였다. 어머니를 가장 많이 닮은 여동생이었고, 딸이었다. 아내를 맞이할 때에도 말했다. 위수는 동생이 아니라, 큰 딸이니, 딸로 돌봐 달라. 그리 부탁했었다.

수국 같던 어머니가 떠난 자리에 위수가 있어 자신이 버티어 냈다. 작은 화단에 여름이면 피우던 수국. 자주색이 되었다가, 하늘색이 되었다가, 연한 홍색이 되었던 수국 같던 동생을 보는 것으로 버티었던 은오였다.

어머니가 떠난 후 여름 가뭄처럼 쩍쩍 말라버린 가슴에 빗줄기가 되어 준 것은 위수였다. 자신이 대학을 가지 않았던 것은 위수 때문이었다. 자신이 아이를 세 명만 낳은 것 또한 위수 때문이었다. 그랬던 위수가 학업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무엇이 여동생의 마음을 허하게 만들었는지 묻지 못했다. 눈길조차 따뜻하지 못했다.



계절은 오고, 떠나야 할 때를 알았고 돌아와야 할 때를 알았다. 계절 따라 살아가는 들판의 잡초조차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고 있었다. 봄에 새싹을 틔어 냈고, 여름에 자신의 뿌리를 단단하게 내렸고 가을에 씨앗을 품어내었다. 쓸쓸하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내내 품었던 씨앗을 날려 보냈다. 그리고 다시 봄을 기다리는 잡초는 자신이 뿌리내려야 할 곳을 알았고, 가야 할 길을 알았다. 묵묵히 걸었다.

모르는 것은 위수 뿐이었다. 어디에 서서 뿌리를 내려야 할지 몰랐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몰랐다.

다만, 어디든 흘러가고 싶었다. 어디든 사라지고 싶었다.
다만, 어디든 갈 수 없었다. 사라질 수가 없었다.  


****

겨울바람이 작은 방문을 휙 치고 지나갔다. 무엇이 할머니를 갈 수 없게 했는지? 아니 무엇이 흘러가고 싶게 했는데 나는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대신 나는 물었다

"할매, 와 학교는 그만뒀는데?"

'배우면 좋지.'
그 시절에는 시골마을에서 중학교, 고등학교를 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 것을 어렴풋이 알았기에 할머니에게 물었다.

"응? 와? 연애라도 했나?"
 
나는 오랜 세월 할머니의 이마를 지키고 있는 깊게 파인 석 삼자를 보며 다시 물었다.  

"가시나 못하는 말이 없다. 너그 외할배가 첫 남자다."

그 말을 하며 할머니는 나를 향해 때리는 시늉을 하며 흘리듯 중얼거렸다.
 
"자유롭게 살고 싶었데이. 어디든 길 따라 바람 따라가고 싶었데이. 세상이 얼매나 넓노? 얼매나 가 볼 곳이 많노?"  

그 말속에 묻혀 들려오던 쓸쓸함을 허전함을 보아버렸다. 나와 같은 나이였던 할머니에게 응골은 너무 작은 세상이었다. 책에 묻혀 살았던 할머니는 세상을 알아 버렸다. 밤나무 밑이 다가 아닌, 세상. 그 세상을 향한 뿌리를 뻗쳐 보고 싶었던 15살 할머니. 끝내 뻗어가지 못한 채 움츠리고 말았던 15살의 할머니.

할머니가 무엇을 갈망했는지 몰랐지만, 알 것도 같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기와로부터 자유롭고 싶지 않았을까? 할머니는, 뿌리로부터 자유롭고 싶지 않았을까? 늘 그 뿌리를 찾았지만, 자신의 발을 묶고 있는 것이 그 뿌리였기에 할머니는 그것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지 않았을까?

15살 할머니는 꾸지 못한 꿈을 잃었고, 세상을 잃었다

나는 그런 결론을 내렸다. 자신의 정착시켜 주는 것이었지만, 얽매는 것이기도 했던 그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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