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집에 있을 때 나는 풀메이크업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화장은 하고 있는 편이다. 눈에 하드렌즈를 착용하고, 얼굴에는 토너와 로션을 시작으로 선크림과 피부톤에 맞는 파운데이션을 얇게 펴 바른다. 짙은 갈색 아이브로우로 눈썹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입술에는 코랄 핑크 립스틱을 옅게 칠한다. 5분도 안 걸리는 화장을 한 후에는, 집에서 입을 옷을 고른다. 반팔 티셔츠에 검은색 요가 바지를 입고, 가끔은 120cm짜리 천연 진주 목걸이를 목에서 한번 감아 자연스럽게 내려 뜨리기도 한다. 영화 'Sex and the City'에서 작가역할의 주인공이 침대 위에서 실크 파자마 차림에 진주 목걸이를 하고, 책을 읽는 장면을 인상 깊게 본 다음부터 가끔씩 따라 하곤 한다. 여배우의 영롱한 진주 목걸이는 마치 '나는 나를 어디에서나 이만큼 존중한답니다.'라는 당당한 자기표현으로 느껴졌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는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헝클어진 머리에, 고도근시 교정용 뿔테 안경을 쓰고, 아무 티셔츠에 무릎 나온 트레이닝 바지 차림인 것이 싫다.
신생아 아들을 키우기 위해 전업주부가 되기 전까지, 나는 오랫동안 영어학원 원장으로 일을 했다. 매일 정장 스커트에 블라우스, 재킷을 갖춰 입고, 하이힐을 신고 출퇴근을 하던 워킹맘에서, 24시간 신생아를 돌보고,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는 전업 주부로 역할로 바뀌었다. 결혼 후, 십 년이 넘도록 일을 놓은 적이 없던 나는 하루 종일 집에서 아기를 안고, 업고 달래며 분유를 타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요리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것이 무한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해졌다. 연이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집안일들로 인해 무척 피곤함을 느끼기도 했다. 한 번씩은 애착을 가지고 만들었던 나의 학원 원장실이 못 견디게 그리웠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당장 나만을 바라보며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우는 것과 자는 것, 먹는 것밖에 없는 신생아 아들을 남에게 맡겨놓고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클리셰처럼, 나는 새롭게 주어진 전업주부로서의 삶에 이왕이면 즐거운 마음으로 적응하려 애썼다. 오늘은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라는데, 나의 이 젊고 귀한 하루를 무료한 기분으로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았다. 우울감이나 무기력함, 혹은 지루함이라는 감정이 나를 덮쳐버리지 않도록 고민했다. 하루의 일상을 규칙적으로 성실하게 살아보기로 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자마자 세안을 하고, 기초화장을 하고, 간단한 메이크업을 하는 루틴을 만들었다. 물론, 네일숍에서 손톱 손질을 받고, 예쁘게 매니큐어를 칠하고 싶었지만 멋 낸 긴 손톱이 자칫 아들의 얼굴을 긁을까 두려워서 시도하지 않았다. 아들이 일어나기 전에 옅은 화장을 마치고, 목이 늘어나지 않은 티셔츠를 잘 골라서 입는 것으로 나에 대한 예의와 존중을 표했다.
이렇게 나를 꾸미고 나면, 기분 또한 산뜻해져서 하루 종일 아기와 더욱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 전업주부로서 해야 할 일에 충실할 힘이 생기곤 했다. 혼자서 아침과 점심을 챙겨 먹을 때에도 식탁 의자에 앉아, 반찬은 접시에 덜고, 샐러드도 만들어서 먹었다. 미역국이나 된장국에 밥을 말아 대충 서서 후루루 마시듯 먹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식은 국밥을 먹고 나면 이상하게 초라해지는 기분이 들곤 했기 때문이다. 저녁에는 퇴근한 남편과 함께 저녁을 먹은 후, 그에게 아이를 맡겨 놓고 근처 카페에 가서 커피와 달콤한 케이크를 천천히 음미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천천히 즐겼다. 기본적인 화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외출도 한결 쉬웠다. 카페에서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인터넷으로 굽이 낮으면서도 스타일을 살릴 수 있는 구두와 반짝반짝하게 화려한 귀걸이를 고르는 것도 즐거웠다. 솔직히 아기용품 고를 때보다, 내가 사용할 물건을 고르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아이가 아무리 울고, 보채도 주문해 놓은 택배를 기다릴 때만큼은 짜증이 덜 났다.
토요일이 되면 드디어 배송된 고마운 구두를 신고, 화려한 귀걸이를 하고 대형서점에 갔다. 그곳에서 인문학 도서나, 에세이집, 추리 소설이나 좋아하는 시인의 시, 어느 유명인의 자기 계발 서적을 읽으며 지적 목마름을 조금씩 채워나갔다. 아들의 몸에서 나는 베이비 로션 냄새와 아기 냄새도 좋았지만, 막 출판되어 서점에 전시되어 있는 새책의 신선한 종이 냄새도 참 좋았다. 나만을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하면 할수록 '내가 이렇게 집에 있을 사람이 아니야...'라는 아쉬움이나 예전 나의 명성(?)에 대한 그리움으로 우울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충만해진 마음으로 내게 선물처럼 주어진 '아이를 사랑하는 시간'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주어진 상황에서 내면이 흩트려지거나, 외로워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대접해 주는 작은 습관은 집 앞 카페와, 서점으로 나를 이끌어냈다. 그러다 대학원 복학이라는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공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상황이 기적처럼 허락되었을 때, 내가 느낀 감사함과 희열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복학한 후 정확히 3년 뒤에 무사히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오늘도 화장을 고치고, 코코 샤넬이 할 법한 아름다운 진주 목걸이를 하고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습관이 나를 언제 어디로 어떻게 이끌어 줄지 기대하고 기다리는 마음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