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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글아 로 Apr 09. 2021

부치지 못한 태교편지 22

유산과 임신 사이.

코복이를 유산하고 다시 임신해 아기를 낳을 때까지 3년이 걸렸습니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짧지도 않았습니다.

지금 4살인 나의 아들을 보고 있으면 순간순간 내 눈이 카메라가 아닌 것이 안타깝고 내 귀에 녹음 기능이 없다는 것이 속상할 정도로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코복이에 대한 기억과 기록을 정리해두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부터 임신과 출산 육아에는 전혀 관심도 없었고, 결혼해도 아이를 갖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나에게 잠깐 와주었던 아이에 대한 기록, 나와 그 아이가 함께 겪었던 짧은 기억, 그 짧고 길었던 시간 동안 나에게 일어난 변화, 그리고 그 무엇보다 코복이라는 이름.

짧은 글인데 긴 시간 정리했습니다. 예전 편지를 꺼내 읽고 쓰고 정리하면서 내 삶에 큰 의미 준 과정이었습니다.



이제까지 경험으로 비춰볼 때, 나에게 너무 큰 의미를 준 것들은 대부분 남들에게는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편지를 웹상에 올려두는 것이 나 스스로 말곤 다른 이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를테면, 유산의 고통과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들, 임신에 대한 불안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아이를 가질지 말지 고민하는 사람들.


먼저 유산의 고통과 임신에 대한 불안을 가진 사람들은 이 편지를 그저 읽으면서 고통과 불안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으면 합니다. 제가 같은 시기 유산을 경험한 친구와 통화하면서 쉴 수 있었던 것처럼.


그리고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편지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도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는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니 꼭 가지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반대로 유산의 슬픔을 보았으니 처음부터 임신하지 말라고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아이는 나를 위한 축복이 아니고 그 누구를 위한 축복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아이는 그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 수단이 아니라는 것을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내 삶의, 혹은 내 가족의 기쁨을 위해 아이를 낳을 생각을 하지 마세요. 아이는  그 자체로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입니다. 그러니 우리 부부가 자녀를 가질지 말 지에 대한 책임을 '아이는 축복'이라는 이름으로 아이에게 떠넘기기 마세요.

부모는 그 아이를 가질 생각을 하는 순간부터 그 생각으로 비롯한 모든 것을 다 책임져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를 소중히 지키고 길러내야 합니다. 부모가(내가) 아이의 삶을 위해 존재하는 수단이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걸 기억하면 아이를 갖지 말지에 대한 고민에 대한 답이 나올 것입니다.


만약 아이를 가지겠다는 결정을 한다면 이 편지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코복이에게 부치는 편지이기도 하고, 나 자신에게 부치는 편지이기도 하고, 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편지이기도 한 '부치지 못한 태교 편지'를 마치려고 합니다.


잘 지내. 코복아.

2021년. 4월 9일.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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