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화 Jul 12. 2024

작은 차이를 읽을 수 있다면

4. 결핍은 채워 가면 되죠(7)

느닷없이 침묵을 깨고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울렸다. 그러나 누구도 안색을 찌푸리지 않았다. 자상함과 인내라는 성품을 얼굴에 모두 품고 있는 에이미 사장이 다정하게 물었다.


“어떤 거 말이에요?”


이진우는 잠시 머뭇거렸으나, 지금 함께 있는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자신이 어떤 말을 하건 그 말 한마디로 냉정하게 자신의 사람됨을 평가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든 듯 밝게 말했다.


“다 같이 민망해지기로 하는… 거요?”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르고 또다시 왁자하게 웃음이 터졌다. 


“오늘 진우 씨가 여러 번 웃음버튼 눌러주네요.”


그럼에도 한번쯤 하고 싶은 말이었는지 이진우는 웬일로 막힘없이 말했다. 


“그냥, 요즘은 아무것도 다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도 누가 어디 가서…그러니까, 저는 되게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가 한 말인데, 남들한테는 어디 가서 이런 소릴 하는 사람도 있다더라 정도로 재미 삼아 떠드는 화젯거리 정도밖에 안 됐다는 걸 알았을 때의 기분은 정말 좀, 별로거든요.”


함께 있는 사람들이 다 자신보다 연배가 있다는 걸 신경 쓰고 있어서인지, 이진우의 말투는 몹시도 조심스러웠다.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수저질을 하며 어렵사리 말을 잇고 있는 이진우는 자신에게 안쓰러운 시선이 쏟아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다들 사실은 안 그런데도 항상 센 척, 상처 같은 건 전혀 받지 않는 척하면서 말하고 그러거든요. 근데 저는 이제 그런 게 눈에 보여요. 다들 똑같은데, 자기는 굉장히 터프한 것처럼 행동하고 말하는 게. 그럼 유달리 좀, 안됐더라고요. 왜 저렇게까지 세 보이려고 애쓸까. 안 그러면 안 되나. 그런데 그런 제 기분이 밖으로 드러나나 봐요. 싫어하더라고요.”

“진우 씨.” 


다들 숙연한 기분이 되어 조용히 이진우의 말을 듣고 있는데 이로미가 불쑥 이진우를 불렀다. 그제야 간신히 고개를 든 이진우가 머쓱하게 네, 하고 대답하자 이로미가 씩 웃었다.


“어떡해요, 이렇게 애어른이어서. 진우 씨는 앞으로도 계속 아저씨 아줌마들하고 놀아야겠어요. 아직 철딱서니 없어도 괜찮은 나이일 텐데, 마음이 너무 어른이야, 어른. 안 그래요?”

“어, 전 어려서부터 할머니랑 살아서 어른들이랑 얘기하는 거 편해요.”


반은 놀리듯 한 말에 진지하게 대답하는 모습을 본 일행들이 이번만큼은 웃지 않으려고 각자 얼굴에 갖은 힘을 다 주어 씰룩거리는 모습은 실로 괴이한 수준이었다. 정작 이진우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두리번거리다 소심해진 태도로 중얼거렸다.


“제가, 또 무슨 말실수했나요?”


이로미가 테이블을 힘주어 꼬집는 것처럼 꾹꾹 누르면서 이를 악물고 말했다.


“아니에요, 아니야. 진우 씨 진짜 너무 귀엽다. 요즘 애들 다 되바라진 줄 알았는데 내 편견이었어요.” 

“로미 씨가 그렇게 말하니까 굉장히 낯설게 들리네. 로미 씨도 내 나이에서 보면 요즘 애들 범주에 들어가는데요.”


최현욱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에이미 사장이 모처럼 호탕하게 말했다.


“에이, 다들 나한테 비하면 아직들 젊어요. 한참 멀었어.” 


한바탕 웃고 떠들며 식사를 마친 뒤 나오다 말고 이진우가 가만히 주차장 쪽을 바라보자 이로미가 고개를 갸웃 기울이며 걱정스레 물었다.


“왜 그래? 자전거 없어졌어요?”

“아뇨, 그게 아니라. 오늘 바다가 색이 유난히 예뻐서요.”

“그래요? 그런 게 구별이 가요?”

“네. 제가 그닥 취미가 없다 보니까 매일 눈에 들어오는 걸 그냥 한참 쳐다보는 습관이 생겼거든요. 그러다 보니 매일매일 달라지는 건 조금씩 보이더라고요, 눈에.” 


음식값을 계산하고 나오던 최현욱이 이진우와 이로미가 나누던 대화를 듣고서는 그대로 멈춰 섰다. 클래스를 시작한 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어도 그간 이진우의 손놀림이나 형태에 대한 감각을 보면서 내심 감탄하던 그였다.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고, 손대지 못한 재능을 발견한 기분이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최현욱은 참지 못하고 대화에 끼어들고 말았다.


“굉장히 미세한 차이일 텐데, 대단하네요. 그런 걸 다 알아보고.”

“대단… 한 것까지는 아니고요. 그냥 보여서요.”


이진우가 한껏 민망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런 섬세한 차이를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배운 적이 없었기에, 알지 못하는 것일 터였다. 최현욱은 안타까웠다. 몇 주 되지는 않았으나 지금까지 지켜본 바, 이진우에게는 제법 예술가로서의 자질이 있었다. 

세상의 어떤 일면에 대해 자신의 해석과 세계관을 펼쳐 답을 내놓는 것 역시 예술의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면, 이진우는 거칠고 힘든 그 세계에서도 자신의 세계를 착실히 펼쳐나갈 충분한 바탕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진우가 하루하루 힘겹게 일궈나가는 생활의 민낯을 어설프게 들어서라도 알고 있는 자신이, 감히 그에게 너는 이러저러한 소질이 있으니 반드시 공부를 해서 어떠저떠한 일을 하면 좋겠다- 라고 강하게 권유할 수가 있을까? 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럴 수 없었다. 책임질 수 없는 말을 함부로 입에 담아서는 안 되었다. 그러나 자신이 알아본 어떤 재능을 함구하고, 본 것을 못 본 척하는 것은 과연 옳을까? 어려운 문제였다.     

이전 04화 자기 자신의 장인이 되면 어떨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