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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Sep 06. 2024

친절이 필요한 시기

6. 나선 계단을 오르며(3)

“대단하다.”


감탄하는 소리가 들려오자 김은지는 마치 자신이 칭찬받은 것처럼 낯부끄러워하면서도 자랑스러운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결국 다른 일정이 있었던 두 사람을 제외하고 최현욱과 윤소은이 함께 도예재료상을 방문하게 되었다. 진열대를 열심히 구경하며 이것저것 열성적으로 설명하던 최현욱은 손에 쥐고 있던 도구를 내려놓고 갑자기 뭔가를 떠올린 사람처럼  말했다.


“참 신기하죠.”

“뭐가요?”

“세상에 온갖 도구가 이렇게 많다는 게요.”


최현욱이 한 말을 이해해 보려는 노력처럼, 미간을 좁힌 채로 유약 진열대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던 윤소은이 마침내 탄식 같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제대로 이해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선생님 말씀은 혹시 표현의 도구, 뭐 그런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제가 너무 앞뒤 잘라먹고 말했나 봐요.”

“그런 건 아닌데요, 가끔 어려운 말씀을 하셔서 한참 생각해 봐야 알 것 같더라고요.”


윤소은의 말에 최현욱이 당황한 듯 빠른 어조로 해명했다.


“죄송해요. 제가 말을 좀 그렇게 해서… 옛날부터도 알아들을 수 있게 얘기하라는 소릴 많이 듣긴 했는데, 저도 모르게 생각하던 중간에 한 마디를 툭 내뱉는 게 습관이 되어버려서 쉽지 않네요. 불편하시죠.”

“불편은요. 그것도 개성이죠. 세상에 어떻게 쉽고 편한 것만 있겠어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사람도 만나보고 그래야 노력을 들여야 알 수 있는 것도 있단 걸 배우지 않겠어요.”


이해한다는 뜻의 고갯짓을 하며 윤소은은 일부러 딴청 하듯 시선을 먼 곳으로 던졌다. 최현욱은 스스로 나쁜 습관이라 생각했던 것을 긍정적으로 감싸주는 말이 민망하면서도 기분이 나쁘지 않아 혼자 속으로 웃었다.


“긍정적으로 말씀해 주셔서 좋네요.”

“그래서,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셨는데요?”

“음… 사람들은 평생을 두고 세상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 한 가지쯤은 있지 않나 싶어서요. 그걸 그림으로 하는 사람도 있고, 음악으로 하는 사람도 있고 선생님처럼 가르치는 일로 하는 사람도 있지 않나 싶네요.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졌다. 어쩐지 물어보기 두려웠지만 한 번쯤 직설적인 평가가 듣고 싶기도 해서 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질문이 떠올랐다. 적어도 지금 묻는다면 생뚱맞다는 소리를 듣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최현욱은 용기를 냈다.


“교수님 보시기엔 제가 도자기 인형으로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으셨어요?”

“글쎄요…”


곤란한 표정으로 살짝 말꼬리를 늘이는 것이 이런 식의 반문을 받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그럼에도 항상 누군가의 솔직한 생각이 듣고팠던 그로서는 기회를 놓치기 어려웠다.


“그러지 마시고 그냥 생각나신 거 그대로 말씀해 주셔도 괜찮은데요.”

“당연히 선생님이 의도하신 거랑 다를 수 있어요. 그건 감안하시죠?”

“그럼요.”


말하는 사람도 대답하는 사람도 긴장할 수밖에 없는 질문이었다. 잠시 호흡을 고르던 윤소은이 입을 열었다.


“선생님의 작품을 보면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뭐건 간에 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늘 그렇듯 단정한 말이었다. 그걸로 조금 부족하다 생각했는지, 그녀는 얼른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어도 솔직하게 드러내기 힘든 게 보통 사람이잖아요. 선생님이 만드시는 것들을 보면, 여기는 신뢰와 다정다감만으로 이루어진 세계라는 느낌이 들거든요.”


긴장감 어린 침묵이 흘렀다. 말을 마친 윤소은이 그의 눈치를 살피다 말고 난처하게 웃으며 변명했다.


“그러니까 그게 항상 작품을 통한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지는 건 아니라니까요. 그치만 분명히 선생님의 의도를 정확히 읽는 분도 있을 거예요.”

“아니, 그게 아니에요. 교수님이 잘못 읽으신 게 아니라,”


최현욱이 가만히 입술을 감쳐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몰라 헤매는 듯이 찡그린 얼굴이었지만 기분이 언짢아 보이는 기색은 아니어서 윤소은은 조금 안심했다.


“제가 작업하면서 어렴풋이 했던 생각보다 훨씬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요,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게 이런 건가 싶기도 하고…”

“... 제가 완전히 넘겨짚은 건 아니었고요?”

“아뇨, 아니에요.”


최현욱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강하게 부정했다. 윤소은이 건넸던 말이 다시금 귓전을 맴도는 것 같았다.

자신의 필요에 의해 빚었던 것들이 이렇게까지  따스한 말을 들어도 괜찮은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선율로 가득한 세계도 좋았지만, 더 구체적으로 손에 와닿고 눈에 담을 수 있는 것을 갖기를 소망했었던 기억이 났다. 쓸모없이 인생을 낭비하는 게 아닌가 자책했는데 그만두지 않고 지속한 것이 어느새 남들도 알아볼 수 있는 그만의 세계가 된 모양이었다.


“선생님의 도자기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마 다 작고 귀여운 친절을 베풀기 좋아할 거예요.”


단정적인 말투에 웃음이 묻어 있었다. 무슨 뜻이냐고 묻기도 전에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저도 좀 친절해져 보려고요.”

“네?”


영문 모를 소리에 최현욱이 어리둥절해했다. 윤소은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진우 씨요, 지금 그런 친절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인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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