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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Oct 30. 2024

우리들은 진짜를 원해

임태운,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

안녕, 마포구를 지키는 정의의 사도 리얼맨.


근데 생각해 보니 별로 안녕하지 못할 것 같아요. 사려 깊지 못한 인사였군요. 미안합니다.


말이죠. 전 컨셉에 되게 강한 사람이에요. 무슨 의도로 한 말인가면 웬만한 기발한 컨셉엔 눈도 깜빡 안 한단 뜻이죠. 그런데 당신이 나오는 이 단편집을 읽다가 진짜 테이블을 두드리면서 웃다가 만화처럼 옆으로 넘어갔어요. 와 c. 그게 언제였냐 하면, 무려 5년 전이었단 말이죠. 캘리포니아 주 북부에 있는 한 공립도서관에서 빌린 책에 등장하더라구요, 그쪽이. 제목은 무려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 그리고 저는 제목에 몹시 잘 낚이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님들이 많이 참여하신 것도 좋았지만, 외국의 도서관에서 우리말 책을 빌려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사실 대단한 일이잖아요. 여기에 있을 때처럼 내가 좋아하는 작가 별로 안 좋아하는 작가 이렇게 가릴 처지가 아니긴 해요. 그런데 좋아하는 작가들의 이름이 포진한 책을 발견했으니 그건 도서관에서 맞은 일종의 로또였어요. 어쨌거나.


히어로물을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대번에 아니,라고 할 것 같아요. 그렇다고 보지 않는 건 또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제게 히어로물이란 그냥 '관성'의 영역에 있는 것이지 취향의 영역에 있는 게 아니었어요. 하지만 히어로를 소재로 만든 단편집이라면 그저 한 사람의 히어로가 악을 대적해 싸우는 이야기로만 채워져 있을 리는 없겠다는 확신 같은 게 들더군요. 물론 그건 히어로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아주 중요한 대민 업무(......)중 하나겠지만, 어쨌든 히어로도 사람이고 히어로의 희로애락이란 게 분명히 세상 어딘가엔 존재할 게 아니겠어요? (say yes ASAP.)


책에 실린 여러 편의 히어로물 중에서 제가 리얼맨, 당신이 나오는 이야기를 고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일단 재밌었어요.

표제작이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웃기고 슬프고 혼자 다 잘하시더라고요.


A Rise and Fall of a Humble Hero. 이렇게 부제를 붙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잠깐, 여기서의 험블은 겸손하다고 쓴 거 아니에요. 약간 중의적이면서도 반어적인 의미로 썼습니다... 왠지는 본인이 더 잘 아시리라.


당신이 사는 세상은 정말로 흥미진진합니다. 물론 빌런이 연속출물하고 폭주하는 세상은 사양하고 싶지만, 히어로콜이 존재한다니!!!!!!!!! 끝내주네요. 이거야말로 문명의 승리이자 퍼펙트 디바이스 4 저스티스 & 펠로우 시티즌을 위한 서비스 아닙니까? 온 동네마다 하나씩 등장하는 우리들의 수퍼히어로와, 위기에 처하는 순간이면 언제든 그들을 호출할 수 있는 앱이라니! 심지어 별점도 매길 수 있어!!! 대박(이라고 하기엔 별점에 신경쓸 수밖에 없는 히어로들의 심정을 너무 잘 압니다...)


히어로콜.

그 앱은 시민과 히어로를 초 단위로 연결해 주는 끈이었다. 모름지기 히어로라면 텔레파시나 초감각으로 출동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적어도 이곳 대한민국에서는 물리법칙을 쥐락펴락하는 히어로도 와이파이가 뿌려주는 은총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 -33쪽


히어로콜도 모자라 히어로위키가 등장할 때는 피식피식 새는 웃음을 가까스로 여몄지만,


영등포구 레인보우걸이 당신(마포구 리얼맨)에게 "히어로톡 친구 추가해"라고 말한 순간에는 장렬하게 웃참실패했습니다. 실로 천재적인 리얼리티라는 말밖에는...


리얼맨이 되면


두 개의 알프스 산맥을 이두근에 세워놓은 듯한 팔뚝을 보여주며 행인들의 도촬에 응해주고 있었다. 아무래도 본인의 세리모니를 마친 것에 흡족해하는 모양이었다. -37쪽


이런 마초 근육을 자랑하기에 여념이 없지만, 현실의 리얼맨은


"하이고, 청년. 오늘도 빼빼시네. 이거 먹고 살 좀 쪄야겄어, 잉?" -40쪽


이라는 애정 어린 핀잔을 받는 멸치 공익요원 박우람이라는 데서 미묘한 현실감이 듭니다. 이야기의 끝에 다다르면 그 감각은 더욱 강렬해지게 되죠. 웃으면서 읽기 시작했던 이야기가 덮일 때쯤 되니 저는 스스로 떠올린 질문에 휘감겨 한참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타인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욕망은, 어디까지 묵인될 수 있는 걸까. 흔히 관종이라는 말로 종종 비웃음의 대상이 되지만, 과연 그 관종'끼'가 없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타인을 넘어서 대중의 관심과 인정을 갈구하다 폭주하는 사람은 동정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혹은 척결의 대상으로 보고 사전 예방 조치를 취하는 게 맞는 것일까.


그 모든 걸 넘어서, 인간적으로 당신을 이해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정말로 그게 다예요. 그래도 인생은 계속되는 거래요. 힘내요, 리얼맨. 박우람은 여전히 박우람이니까. 마지막으로 당신의 펀치라인을 함께 외칩니다.


"괴로울 땐 이렇게 외쳐, 우리들은 진짜를 원해!"


http://aladin.kr/p/z1er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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