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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Nov 13. 2024

코가 가출한 사건에 대하여

니콜라이 고골, 코/외투/광인일기/감찰관

친애할까 말까 고민 좀 하게 만드는 코발료프 소령님, 안녕하신지요. 


하지만 당신은 우리가 애써 숨기고 싶어 하는 흔하디 흔한 속물근성을 고스란히 내보이는 역할을 떠맡은 죄밖에 없지요. 그걸 생각하면 사실 친근하게 여겨야 마땅한 것 같은데 본디 인간이란 저와 같은 부류에게 내적 친밀감은 느낄지언정 겉으로는 아는척하고 싶어 하지 않는 기묘하고 (못된) 습성이 있는지라, 서두부터 뭐라고 적을지 고민했답니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말입니다. 소령님은 당연히 모르시겠지만, 당신을 세상에 있게 한 고골 선생님은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상당히 인지도 있는 캐릭터(......)가 된 지 좀 되었답니다. 「문호 스트레이독스」라고 하는, 실로 그 상상력에 경탄하지 아니할 수 없는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로서요. 이 작품에는 문호들의 이름을 그대로 딴 캐릭터들이 여럿 등장하는데 각자가 보유한 이능력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지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이능은 '라쇼몽'입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이능력은 '인간 실격'이고요. 그럼 니콜라이 고골의 이능은 무엇이겠습니까. 네, 정답. 그것은 '외투'입니다... 저는 「문호 스트레이독스」(약칭 문스독)의 설정과 세계관을 처음 알았을 때 이 작가는 정녕 미친 천재가 아닐까 했습니다... 근데 이 얘기를 왜 했지. 아, 그렇죠. 소령님을 존재하게 해 준 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거기까지 말이 샜네요. 아무튼 그것도, 고골 선생님과 같은 천재가 존재했기에 또 이런 후대의 천재들이 등장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렇고 중요한 걸 여쭙는 걸 잊었네요. 소령님의 코는 여전히 무사히 잘 붙어 있는지요. 옙, 놀리는 게 맞습니다. 


그나저나 소령님께서 당하셨던 일은 여러 번 돌이켜 봐도 참으로 등골이 서늘해집니다. 멀쩡히 붙어있던 코가 어느 날 갑자기 행방불명되고 얼굴엔 판판하고 널따란 빈 터만 남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온몸의 털이 쭈뼛 설 정도로 공포스럽습니다. 소령님 정도의 반응이면 굉장히 양호한... 아니, 양호함을 넘어서 사뭇 전투적이셨죠. 아무튼 그건 존경스럽네요. 어쨌든 상황을 해결해보고자 하는 의지 하나는 투철하시지 않았습니까.


물론 그런 소령님조차도 갑자기 난데없이 마차에서 뛰어내린 신사가 실종된 본인의 코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퍽 놀라신 듯하더군요. 왜 아니겠습니까마는.


그 순간, 그 신사가 바로 자신의 코라는 것을 알게 된 코발료프의 공포와 경악은 어찌나 대단했는지! 이 기괴한 광경을 본 코발료프는 주변의 모든 것이 뒤집히는 느낌을 받았다. 간신히 서 있을 수 있을 따름이었다. -44쪽 


처음 「코」를 읽었을 때의 저의 '공포와 경악'도 기억이 납니다. 저는 유달리 머릿속에서 이미지를 잘 만드는 사람입니다. 텍스트를 보았을 때 순식간에 눈앞에서 영상화가 가능한 재주가 있거든요. 그래서 대경실색해서 어쩔 줄 몰라하던 소령님의 반응 뒤에 이어지는 대목을 보았을 때 정말로 기절초풍할 뻔했던 기억이 납니다.


2분 후에 코가 정말 나왔다. 코는 커다란 깃을 높게 세운, 금실로 재봉된 제복과 영양 가죽으로 만든 바지를 입고, 허리에는 장검을 차고 있었다. 모자의 깃털 장식으로 보아 그가 5등 문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45쪽


오, 맙소사. 저는 저 대목을 읽었을 때 그만 이 기막힌 장면을 눈앞에 그려내고 말았습니다. 그냥 텍스트로만 읽었으면 유쾌하고 웃고 넘어갔을 텐데 저는 그때부터 퍽 공포스러웠을 소령님의 심정에 심하게 이입하고 말았죠.


다른 건 다 차치하고, 이 말도 안 되는 현실 앞에서 어떻게든 조리 있게 현상을 이해하고 해결해 보려고 발버둥 치는 당신의 노력만큼은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굉장했습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나가떨어질 것 같거든요. 이게 내가 어떻게 해보려 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기는 할까 하고요. 물론 그 노력의 핀트는 상당히 윤리적으로 어긋나는 경향도 없지는 않았습니다만 아주 조금은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왜 아니겠어요, 코가 사라졌고 심지어 그 코가 제복을 갖춰 입고 온 도시를 활보하고 다니는데요! 


참모장교 부인이 자신의 딸을 코발료프에게 주겠다고 대놓고 말했을 때, 자신은 결혼하기는 아직 젊으며, 마흔둘이 될 때까지 5년 정도 더 근무한 후에 생각해 보겠다고 대충 얼버무렸던 것이다. 그래서 참모장교 부인이 보복하기 위해 요술 할멈을 시켜 해코지를 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코가 없어질 이유가 도대체 어디 있겠는가! -58쪽 


네... 심정은 이해합니다만. 이건 아니잖아요...


하지만 (지켜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한바탕 즐겁고 유쾌한 이 소동 이야기는 결국 계급에 대한 풍자와 다르지 않습니다. 당신이 잃어버렸던 것은 지위에 붙어 있었던 허망한 자부심에 다름 아니었던 거죠. 잠시나마 소령님의 사회적 위치를 몹시도 위태롭게 만들었던 코가 사라졌던 동안 절실하게 체감했을 것들이 당신의 삶에 어떤 교훈으로 녹아들었을까 궁금했던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소령님은 변한 것이 없더군요. 하긴 사람은 쉽게 바뀌지도 않거니와 그 잠시의 경험이 뭐 얼마나 대단한 가르침을 주었겠어요. 하지만 적어도 당신이 겪었던 일을 간접 체험하는 독자에게는 일말의 변화가 있기를 바라는 게 작가의 바람이지 않았을까요. 


너무 방심하지 마세요, 소령님. 진짜 코야 뭐 또 가출을 감행하진 않겠지만, 다른 차원에서의 코란 있다가도 또 없어지기도 하는 것이니까요. 



http://aladin.kr/p/rF1j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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