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풀이엽편 | 그리워하다

지나간 한 시절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을 위하여

by 담화

나는 늘 방안에만 앉아 있다. 마음 같아서야 나도 여기서 나가서 바깥세상 구경을 하고 싶지만, 내겐 허락되지 않은 일이다. 해랑도 항상 그 사실을 안타깝게 여기지만, 해랑은 나를 데리고 밖을 돌아다닐 용기를 내지는 못하는 듯싶다. 그래도 해랑이 어릴 적에는 간혹 바깥바람을 쐴 기회가 있었다. 이제는 그러기가 힘들다.

머리로는 이해한다. 집안에서야 가만히 앉아만 있고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 일도 없으니 괜찮지만, 바깥에 나서는 순간 나는 항상 챙김을 받아야만 하는 입장이 되니까.


해랑은 늘 내게 친절하지만 어딘가 나를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이 있다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그래도 나는 괜찮다. 해랑의 마음을 이해한다. 십수 년간 해랑이 내게 남긴 모든 애정의 흔적과 사랑의 기억들이 내 마음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그 뿌리는 깊고도 단단하게 엉켜 있어서 약간의 서운함 정도로 흔들릴 일은 없다.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 소망한다. 언젠가 해랑이 나를 데리고 세상에 나서 주었으면 좋겠다고.

물론 해랑이 신경 써서 적당히 구름 낀 날, 나를 창가에 데려다 놓고 나가기는 하지만 늘 같은 위치에서 같은 아파트 놀이터의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가끔은 지루하고 답답하기도 한 것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창가 바로 아래로 보이는 키 큰 은행나무다. 나는 이 자리에서 은행나무가 노랗게 되어가는 것을 여덟 번이나 보았다. 은행나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도 해랑이 이야기해 주어서 알았다. 내가 세상의 많은 것들을 배우는 통로는 오로지 해랑이니까.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책을 읽을 수도, 영화를 볼 수도, 음악을 들을 수도 없으니까. 내게 와닿는 것은 오로지 해랑의 목소리뿐이니까.

해랑이 어렸을 때는 우리는 늘 함께 놀았다. 그 시절의 해랑은 나를 외출시켜 주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나를 데리고 다님에 떳떳해했고 나를 자랑스레 소개하곤 했다. 누군가가 놀릴 준비를 하고 윤해랑, 하고 해랑의 이름을 부르면 해랑은 오히려 당당하게 나한테 사랑이가 있는 게 부러우면 부럽다고 말해, 하고 맞받아치곤 했다. 해랑이 그렇게 되받는 것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마음이란 우물펌프 같은 거라는 걸 깨달았다. 해랑이 나를 옹호하는 말을 할 때면 마중물이 마음에 꼴락꼴락하니 부어진 느낌이었다.

그러면 끝을 알 수 없는 자부심이 쏴아 쏟아지곤 했다. 나는 중요해, 나는 소중해.


그러나 해랑이 나이를 먹고 나 대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집 대신 바깥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나는 해랑에게서 덜 중요한 존재가 되어 갔다. 해랑이 나가고 없던 어느 날 오후, 엄마는 어쩐지 안타까워하는 듯한 웃음을 보이며 내게 그렇게 말했다. 사랑아,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야, 얘. 자라면 밖의 친구들이 더 중요해지는 건 누구나 다 그렇거든. 나도 옛날엔 그랬어.

다른 가족들은 나를 있는 듯 없는 듯 투명하게 취급했지만 엄마는 종종 내게 말을 걸어주었다.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는 내가 가엾었던 걸까, 아니면 그냥 한 번쯤 아는 척해 주는 게 해랑의 어린 시절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던 걸까. 어느 쪽이라도 괜찮았다.

예전처럼 함께 시간을 보낼 수는 없어도 나는 해랑이 나를 여전히 소중히 여기는 걸 안다. 다만 소중하다는 말의 의미는 세월에 따라 울림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걸,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몰랐다. 해랑이 어린 시절 입에 달고 살던 소중해, 가 맑고 투명한 풍경소리를 닮았다면, 그래서 하루에도 수차례 입에 올려도 괜찮은 귀엽고 가벼운 말이었다면 지금의 소중해, 는 깊은 여음이 남는 종소리를 닮았다는 걸. 그래서 섣부르게 그 말을 울리지 않는다는 걸. 하지만 나를 보는 눈에, 내 이름을 벙긋거리는 입술 안에 그 울림이 있다는 걸 볼 수 있으니 괜찮다고, 정말로 괜찮다고 나는 생각했다.


늘 주의 깊은 해랑이 오늘은 바빴는지 가을볕이 깊고 짙게 들어오는데도 나를 창가 바짝 붙여 앉혀놓고 나갔다. 해를 피해 그늘로 가고 싶어도 나는 누구의 도움 없이는 옴짝달싹할 수 없는 신세라, 하는 수 없이 따가운 해를 받으며 그대로 물끄러미, 또다시 샛노랗게 가을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은행나무를 바라보는데 어느 순간 살짝 열려있던 창문 사이로 들어온 바람이 내 목에 묶여 있던 리본을 장난스레 흔들고 가버렸다.


해랑은 내게 옷을 입히는 대신 매일같이 부지런히 리본을 바꾸어 매어주는 것으로 애정을 표현하곤 했다. 내게 제일 잘 어울리는 색은 파란색이라고, 엄마가 그렇게 가르쳐 주었다며 도대체 어디서 구해왔는지는 몰라도 세상의 온갖 무늬, 갖가지 파란색 리본은 다 모아 온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작은 바구니를 들어 보였다. 매일같이 내 목덜미를 조몰락거리던 해랑의 손길은 점차 뜸해졌고 매일같이 바뀌던 리본은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그리고... 마지막이 언제였더라.

해랑이 늘 잡고 흔들어대던 앞발바닥에 붙은 벨벳 조각을 본다. 삐뚤빼뚤한 어린아이의 글씨로 내 이름이 적혀 있다.

윤사랑.

해랑은 내게 자신의 성과 돌림자를 붙여 이름을 지어주었다. 해랑과 갓 만났을 때만 해도 해맑은 노랑 빛깔이었던 털은 어느새 꾀죄죄한, 아무리 좋게 보아주려 해도 노랑의 먼 친척뻘도 되지 못할 것 같은 색으로 변해버렸다.


“얘 또 여기다 놓고 나가버렸네. 안 그래도 탈색돼서 얼룩덜룩한데...”


옛날 생각을 하느라 엄마가 들어온 줄도 몰랐는데 어느새 나를 달랑 들어 올린 엄마가 나를 세워 안고 엉덩이와 등짝을 팡팡 털며 손으로 쓱쓱 빗어주었다. 따가운 햇살만 벗어나도 살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를 가만히 보던 엄마가 웃으며 나를 해랑의 피아노 위에 앉혀주었다.


“더운 데서 고생했네. 거기가 그늘져서 시원하지?”


그렇다고 답해주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나는 그냥 빤히 엄마를 바라본다. 엄마는 좀 특이하다. 나뿐만 아니라 집안 여기저기 놓여 있는 물건들에도 종종 말을 걸곤 한다. 엄마가 나를 가만히 보다가 중얼거렸다.


“해랑이가 너 참 예뻐했는데.”


아니라고, 해랑은 지금도 내 이름만큼 나를 사랑해 준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지금은 왠지, 내가 인형이어서가 아니라 사람이었어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까만 플라스틱 구슬 눈 아래로, 방울방울 눈물이 고이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그래도 괜찮다. 해랑은 그래도 나를 아껴주니까. 나는 해랑이 지금껏 내게 쏟아준 사랑을 안다. 그렇게 생각하는 내게, 올이 풀린 목의 빛바랜 리본 끄트머리가 보였다.


어린 시절의 해랑이와 사랑이





[표제어_그리워하다/모티브_마저리 윌리엄스 「벨벳 토끼 인형」]

사진: Unsplash의Oxana Lyashen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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