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불리 먹었다

by 노바써니

살고 싶지만 마음은 죽을 것처럼 괴롭던 그 시기엔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평소 오랫동안 써오던 일기조차 쓸 수 없었다.

그러나 두 달 가까이 빈칸으로 남겨진 일기장 사이에 드문드문 검은 잉크가 보이는 날이 있었다. 일기를 쓴 날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식사를 한 날이었다는 것. 별다른 내용 없이 ‘배불리 먹었다. 배부르게 먹었다.’라고 간신히 적어놓은 것을 되돌아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잘 먹는 것이 우울을 조금이나마 몰아내는 데 도움이 되는구나 싶기도 했고, 겨우 이런 사소한 내용을 기록으로 남길 만큼 힘들었구나 싶기도 했다.

지금도 가끔 일기를 되돌아보면 만족스러운 식사를 한 날의 기록이 어김없이 남아있다. 음식을 조리하고 차려먹고 치우기까지의 과정은 여전히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지만, 아무래도 잘 먹는 일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에게 훨씬 중요한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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