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처를 바라볼 자신이 없어

by 노바써니

지금도 나는 내 문제를 똑바로 바라볼 자신이 없다.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상처 난 곳이 쓰리고 아파서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다. 가족이나 사랑 같은 단어를 듣기만 해도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걸 참느라 바쁘다.


사실 ‘사랑을 주는 존재’에 대해 내가 목을 매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 원인은 다름 아닌 원가족으로부터 출발한다.


아빠는 나를 돈만 축내는 식충이 같은 딸로 여기면서도 바라는 게 많았다. 어릴 때 나를 어린이로 대해준 적이 없었다. 항상 한 사람 몫도 무능한 인간으로 대했는데, 성인이 되니 돈도 벌어 오고 결혼해서 손주도 안기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남동생은 사소한 일로 감정이 상하면 몇 달씩이고 나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그러다 새벽에 월드컵 개막식을 보겠다며 난리를 피우던 날, 잠 좀 자자고 성질을 내던 나에게 무력을 가했다. 엄마는 내가 열여덟이 되던 해에 간접적으로 부모님의 이혼 사실을 알게 된 다음날, 생일선물로 드렸던 노란 스트라이프 니트만 남겨둔 채 사라져버렸다.

그로부터 10년 뒤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부모님은 내가 어렸을 때 이미 이혼하고도 우리 때문에 같이 살았던 것 같다. 그리고 엄마가 조현병이라는 사실을 스물여덟이 되어서야 처음 알게 되었다.


무너질 대로 무너진 우리 집 사정은 무엇으로도 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동생이 내게 손찌검을 한 그날 이후로 집은 더 이상 내게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모든 일이 괜찮아질 때까지 웅크리고 있기에는 도대체 언제쯤 괜찮아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냥 다 같이 세상에서 없어지는 게 낫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대로 있다가는 정말로 무슨 일이 날 것만 같았다. 차갑고 살벌했던 집안이 동생의 손찌검 이후로 내 방 한 칸조차도 안전하지 않게 느껴졌다. 그 뒤로 나는 집을 나왔다. 아빠와 동생이 보는 앞에서 짐을 싸들고 나왔지만 누구도 나와 눈을 마주치거나 말을 거는 일이 없었다.


2019년 현재 아빠와 동생 얼굴을 보지 않은지 5년, 엄마는 15년이 되어 가는데도 엄마 문제와 관련해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계속 연락을 해온다. 아빠의 연락처도 모두 차단을 했지만 기기를 바꾸면 수신차단이 풀리는 바람에 나는 계속 피해자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원가족으로부터 충분하고 안정된 사랑을 받지 못했던 나는 연애를 할 때마다 상대방에게 너무 과한 기대를 했다. 평소엔 잘 지내다가도 연애를 시작하는 순간, 사랑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을까?라는 핑크빛 환상에 휩쓸리곤 했다.


내 문제의 원인이 가족관계로부터 시작된다는 건 알지만,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었다. 기억에 한계가 있기도 했고, 설령 모든 것을 다 알게 된다고 해도 그것이 내게 좋은 일인지, 그것을 내가 원하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때때로 문제를 파고들기도 했지만, 사실 대부분의 시간은 묻어두려 애썼다. 하지만 마치 엄마처럼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린 그를 보며 모든 문제의 봉인이 풀려버린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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