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버엔딩 멜랑콜리아

by 노바써니

덕분에 많이 좋아지긴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내 방은 중구난방, 마음도 여전히 부정적인 것에 훨씬 민감하다. 혼자 사는데 매일 쓰레기는 왜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버려도 버려도 집안을 채우고 있는 것들의 부피는 조금도 줄지 않는 것 같다. 마음도 비워내려 애쓰는데 하루만큼의 피로가 쌓여 명상하고 일기를 써도 다시 제자리인 것만 같은 기분.


사실 우울증 치료를 3년이나 했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면 병원에 그만 오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열다섯부터 이미 내 우울이 단순히 지나가는 것이 아님을 알았으면서도 낫는 건 순식간에 될 줄로만 알았다.


한편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내가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음을 이야기해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너무 놀라지도 캐묻지도 않는 덤덤한 반응이 고맙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무관심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내가 평소 같지 않을 때마다 당황하는 눈치였다. 내 기복으로 인해 일을 망칠 수는 없기에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일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지 않으려고 밀어내도 원래 성격이 유별난 사람으로 치부될 뿐이었다. 사람들은 상태가 좋을 때의 나를 평소의 나로 기준 삼으며 그것을 나라는 사람으로 규정짓는 것 같다. 하지만 내 본모습은 내가 가라앉을 때 나오는걸. 침대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나도 나인 걸.


그래서 우울이라는 녀석이 어떤 놈인지 알기 위해 심리학 도서를 한 권이라도 더 읽으려고 애썼다. 책에서 좋다고 하는 방법들도 실천해보려 애썼다. 최근 1년 사이에는 유튜브도 찾아보며 인플루언서들이 추천하는 것이나 강연 같은 것도 많이 들으려 노력했다. 그런데 그런 것을 쫓는 데도 에너지가 필요해서 오랜 기간 멈추지 않고 지속하기가 어려웠다. 이것 역시 기복에 따라 접근이 쉬울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럼에도 ‘해야만 해!’라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가끔은 책도 읽지 않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그냥 숨만 쉬고 누워있는 나를 허용해 줄 수 있어야 하는데, 왜 그렇게 나는 나에게 가혹한 건지.


어린 시절 가족이, 선생님이, 친구가 나를 대했던 방식으로 나 스스로를 대하니 괴롭고 힘들다는 자각이 이따금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렇구나, 내가 그들의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었구나. 사랑에 자꾸만 조건을 달고, 거래를 하려고 하고 만족할 줄 모르고 더! 더!를 외치며 욕심부리는 그 싸늘하고 뜨거운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구나.


현실은 가혹해서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멍하게 있으면 한순간에 몇 걸음이고 뒤처져 버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픈 와중에도 쉬지 않고 달려왔다. 멈추는 순간 이 얄팍한 생도 끝나버릴까 봐.

그러나 이제는 숨 쉬는 걸 우선으로 두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그냥 두면 자동적으로 우울이나 분노와 같은 회로로 돌아가는 내 뇌는 평생을 그런 패턴으로 움직일 테니까. ‘우울에 잠식당하지 않으려는 내 노력도 평생이 되겠구나.’라는 걸 받아들일 때가 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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