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지라도 괜찮아.”

by 노바써니

올해 활동범위가 달라지면서 이전과는 다른 성향의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그동안은 내 안의 부정적인 생각과 행동을 강화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런 사람을 내가 자꾸 끌어들이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런데 나와는 기질과 성향이 완전히 다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단단한 내 고집의 성에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그 틈으로 흘러 들어오는 것들은 받아들이기 쉬운 것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다.


그 가운데 “오이가 되려 하지 않아도 괜찮아. 오이지라도 괜찮아.”라는 말을 두고두고 곱씹게 되었

다. 상처라는 거친 소금에 긁히고 담가져 푹 절어버린 오이지가 된 지 33년이다. 그런데 고작 3년 물에 담가두었다고 염분이 모두 사라질까? 다시 33년이라는 시간 정도는 들여야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가 되지 않을까. 하지만 사람이라는 게 그렇게 수학적으로 똑떨어지는 존재가 아니기에 그것도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 결국에는 죽을 때까지 염분을 완벽하게 제거한 오이는 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무리하게 오이가 되려 헛된 꿈을 꾸기보다 저염 오이지를 목표로 하라던 지인의 말이 내 안에서 계속 맴돈다. 나는 저염 오이지가 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저염 오이지보다 오이가 매력적으로 보이고, 오이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한구석에 존재한다. 하지만 상처의 염분을 빼내는 일이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란 걸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저염 오이지를 향한 노력을 매 순간 치열한 다짐으로 채우기보단 숨을 쉬듯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해보자고 마음먹는다. 그래야 오래오래 내가 지치지 않을 테니까. 나는 완급 조절을 잘 하지 못하는 편인데, 무리하게 참으며 힘을 쥐어짜면서 33년을 살아왔다. 하지만 중년을 향해가는 앞으로의 33년은 힘을 빼볼까 싶다. 얼마나 힘을 뺀 채로 일상을 유지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것도 연습하다 보면 늘겠지.


우울하지 않은 상태로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 잘 몰라서 사실 우울이 찾아오지 않은 날의 내 마음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었는지 잘 살펴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좋은 기억을 거의 떠올리지 못하고 나를 아프게 했던 기억만 자꾸 꺼내어 봤고, 그럴수록 고통은 강화될 뿐이었다.


하지만 방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면서 빈 벽을 되찾고 그곳에 좋아하는 것들을 꺼내어 놓고 보고 있자니 ‘그런 날도 있었지!’하는 순간이 늘어나고 있다. 추운 겨울, 이불 속에서 꼼지락대며 자수를 놓던 것이나 누군가 내게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보내주었던 엽서 같은 것들이 누워 있어도 보인다. 마음 가는 대로 나답게 살자며 글을 써놓은 것도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마주한다. 이렇게 조금씩 발을 떼면 되지 않을까.


부쩍 찬 공기가 도시를 감도는 요즘, 나는 연말을 준비하고 있다. 어느 때보다도 소란스럽고 북적북적했던 올해는 훗날 내게 어떤 의미로 남을지 궁금하다. 그러면서 더불어 2020년을 얼른 준비하고 싶어 안달이 난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설레니까. 새해에 만날 나는 익숙한 듯 조금은 낯선 나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든다.


오이지라도 괜찮아. 나는 꽤 건강하고 괜찮은 오이지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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