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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바써니 Aug 10. 2021

나도 어린이인데

내가 어린이일 때 가장 우울했던 날은 어린이날로 기억한다. 매년 질리지도 않고 돌아오는 어린이날마다 나는 선물을 받지 못했다. 자그마한 티코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어느 어린이날, 나는 빈손으로 우울하게 창밖을 바라보았고 남동생은 싱글벙글했다. 가지고 싶었던 로봇을 샀으니까.

매년 그런 식이었다.     


한 번은 동생이 그런 말을 했다.

“그러니까 누나도 졸라. 미친 듯이 떼쓰면 사주게 돼있어.”라고.

천연덕스럽게 잘도 그런 말을 하는 동생을 보며 나는 기겁했다. 같은 부모 밑에서, 같은 가정교육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쩜 이렇게 다를 수 있지?          


동생하고 싸우거나 동생에게 문제가 생겨도 늘 내가 혼이 났다. 5~6살 무렵, 우리 집은 화장실도 없는 방 한 칸만 겨우 얻어 셋방살이를 했고, 그 시절 나보다 2살 어린 동생은 툭하면 내 신발을 한 짝만 집어 맨홀 밑으로 빠뜨리곤 했다. 그럼에도 동생은 크게 혼나는 일이 없었고, 내 신발은 줄어만 가는데 ‘누나’니까 참아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에서 숨바꼭질을 하다 동생을 잃어버렸다. 아이들끼리 찾아볼만한 곳은 전부 찾아보았지만 동생은 보이지 않았고, 슬슬 해가 지고 있었다. 결국 어른들에게 사실을 알리고 경찰에 신고까지 했다.     


그때도 동생을 제대로 보지 않고 잃어버렸다며 혼이 났고, 동생은 숨바꼭질을 하다 태평하게 잠이 들어있었다. 동생을 찾느라 심장이 쪼그라들던 어린 나의 마음 따위를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무사한 동생 곁에 머물 뿐….          


한 번은 동생과 식탁에 앉아 엄마가 끓여주는 라면을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가 식탁에 라면을 놓아주고 돌아서기 무섭게 입도 대보지 못한 라면을 동생이 전부 쏟고 말았다. 그때도 내가 혼났다. 동생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게 억울한 일이 하나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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