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골에서 순박하게 운동만 했다. 체육관 기숙사 집 밖에 몰랐다. 꿈에 대해 누구 하나 이야기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주위에선 온통 대학을 가야 한다는 말 뿐이었다. 그래서 내 꿈은 국가대표, 프로농구선수, 체육 선생님이 아닌 대학을 가는 게 내 꿈이 되었다.
대학을 가기 위해 농구 훈련만 열심히 했다.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더 간절히 꿈을 꾸게 된 계기가 있었다. 3학년 형 몇몇이 대학 진학에 떨어졌다. 지금은 11개(1부) 대학에 농구부가 있지만 그때는 10개(1부) 대학뿐이었다. 10개(1부) 대학에서 형들을 불러주는 곳은 없었다. 그때 많이 놀랐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6시~7시까지 새벽 운동을 하고, 9시~12시까지 오전 운동, 15시~18시까지 오후 운동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9시 30분~ 21시까지 야간운동을 했다. 학교도 가지 않고 일주일, 한 달, 일 년 그렇게 짧게는 3년 길게는 12년 이상 죽어라 운동만 했는데 대학을 못 가는 것이었다. 대학을 못 가는 형들을 바라보니 나는 더 간절히 대학 진학이란 꿈을 꾸게 되었다. 어떡하면 대학을 갈 수 있을까? 고민하다 하루 4번 운동 사이에 개인 운동을 추가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12시와 15시 사이에 대학을 가기 위해 개인 운동을 했다. 매일 점심식사만 하고 바로 체육관으로 향했다. 육체적으로 굉장히 힘들었지만 자신감은 나날이 향상되었다. 그 자신감이 나를 성장시켰다. 어느 누가 수비를 해도 1대 1로 뚫을 자신 있었다. 매 시합에 한 명 두 명 수비를 뚫어 골을 넣다 보니 어느새 우리 팀은 창단 후 처음으로 추계 전국 남녀 중·고 농구대회에서 8강을 하였다. 입상 성적, 감독님, 코치님 역량 덕분에 나는 1부 팀 대학에 운 좋게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입학할 수 있었다.
대학생활은 고등학교 생활과 똑같았다. 틀린 게 있다면 하루 4번 운동에서 3번 운동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하루 4번 운동을 했다. 정말 열심히 훈련만 했다. 열심히 한 결과와 다르게 내 자리는 코트가 아닌 항상 벤치였다. 매 시합에 벤치만 앉아 있다 보니 오기가 생겼다. 그래서 코치 선생님을 찾아가 말을 했다.
“시합에 나갈 수 있게 기회 좀 주세요.”
“넌 아직 시합에 나갈 실력이 못된다. 하지만 열심히 하면 언젠가 기회는 주겠다.”
그 언제 가라는 기회를 잡기 위해 정말 후회 없이 연습만 했다. 주말이면 선수들이 다 외박을 나가도 나는 기숙사에 홀로 남아 연습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연습 시합에서 나에게 5분이란 기회가 주어졌다. 꾸준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그 5분 안에 내 모든 걸 보여야만 했다. 하지만 뭔가 꼭 보여줘야지 라는 생각으로 시합에 임하지는 않았다. 보여줘야 한다는 마음이 앞서 나도 모르게 몸에 힘이 들어가 이 소중한 기회를 날려 버릴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수비부터 하자는 생각으로 시합에 임했다. 그러다 보니 시합은 잘 풀렸고 첫 3점 슛도 넣게 되었다. 그 3점 슛 계기로 5분에서 6분, 6분에서 10분, 그렇게 40분 풀타임을 뛸 수 있게 되었다. 나날이 실력을 인정받아 MBC배 전국 대학농구대회를 스타팅 멤버로 뛰게 되었다. 대학에 올라와 처음으로 부모님께 구경 오시라고까지 했다. 기쁜 마음으로 시합에 임했지만 기쁜 마음과 달리 시합은 창피할 정도로 못했다. 두 번째 시합은 더할 나위 없이 못했다. 내 자리는 코트에서 다시 벤치로 돌아왔다. 시합은 끝났고 내 농구 인생도 끝나는 것 같았다. 불길한 예감은 맞아떨어졌다. 어느 날 감독님께서 감독실로 나를 불렀다.
“이번 시합에서 너는 굉장히 못했다. 그래도 다시 한번 기회를 주려고 한다. 다음 학기 때는 등록금(매 학기 운동선수에게 학교 측에서 청룡 장학금 지급)을 내고 운동을 하던지 아니면 운동을 그만둬라.”
“운동을 그만두겠습니다.”
내 나이 21살 대학교 2학년 1학기로 농구선수 인생은 그렇게 끝이 났다.
열심히 했기에 농구에 대한 미련이나 후회는 없었다. 하지만 농구선수를 선택했으니 그래도 프로팀은 가서 농구로 먹고살겠지 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며 살았는데... 그건 나의 큰 착 각이었다! 나의 꿈은 프로 선수가 아닌 대학 입학이었기에 대학에서 농구선수 인생이 끝이 난 것 같다.
중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높은 것을 얻으려는 사람은 중간 것을 얻고, 중간 것을 얻으려는 사람은 낮은 것을 얻고, 낮은 것을 얻으려는 사람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운동을 그만두고 시간이 흘러 깨달았다! 꿈은 크게 가져야 한다는 걸. 꿈을 크게 가져야 꿈에 맞는 환경 또한 커진다는 걸 알게 됐다. 내 꿈이 송사리면 환경은 어항이 되고, 내 꿈이 고래면 환경은 바다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휠체어 농구 코치를 할 때 꿈을 크게 가졌다. ‘내 선한 영향력으로 선수를 가르쳐 선수 모두 휠체어 농구 국가대표 선수가 될 수 있게 지도하고, 나 또한 국가대표 선수를 가르치는 감독이 되어 대한민국을 휠체어 농구 강국으로 만들자’라는 큰 꿈을 가졌더니 3년 만에 휠체어 농구 발전을 함께 하자며, 국가대표 코치 제의가 들어왔다. 하지만 개인 사정으로 인해 그 제안은 받아들이지는 못했지만, 아직도 ‘대한민국 휠체어 농구를 강국으로 만들자’라는 꿈은 포기하지 않았다.
LG 구본무 회장은『머니투데이』오동희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청춘들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꿈의 크기가 클수록 더 크게 이룰 수 있다,”
다들 한 번쯤은 관상어 코이라는 물고기를 들어 봤을 것이다. 이 물고기는 작은 어항에 기르면 5~8cm밖에 자라지 않지만, 커다란 수족관이나 연못에 넣어 두면 15~25cm까지 자라고, 강물에 방류하면 90~120cm까지 자란다고 한다. 주위 환경에 따라 코이는 작은 피라미가 될 수도 있고, 큰 대어가 될 수도 있다.
코이처럼 꿈도 마찬가지다. 꿈이 크면 클수록 내가 원하는 꿈 이상으로 이루게 되고, 꿈이 작으면 작을수록 내가 원하는 꿈밖에 이룰 수 없는 게 꿈의 크기다.
나는 ‘대한민국 휠체어 농구를 강국으로 만들자’라는 큰 꿈을 이루기 위해 매일 새벽 4시에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내 글이 책이 되어 모든 사람들이 읽고 휠체어농구에 관심을 가졌으면 해서다. 소수의 비장애인과 장애인들만 관심을 가지면 휠체어 농구는 발전이 없다. 대한민국 모든 사람이 관심을 가져야 휠체어 농구뿐만 아니라 장애인 체육도 발전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장애인 체육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람들은 장애인 체육은 장애인만 할 수 있는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다. 비장애인들도 장애인 체육을 할 수 있다. 한번 비장애인이 장애인 체육을 접하게 되면 중독처럼 장애인 체육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그만큼 장애인 체육은 재밌고, 역동적이다.
우리 휠체어 농구팀은 재밌고, 역동적인 휠체어 농구를 알리기 위해 연 2회 적게는 500~600명, 많게는 800명~1,200명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휠체어농구 시범경기 및 휠체어농구 체험을 진행하고 있다. 휠체어 농구 시범경기를 보고 휠체어 농구 체험을 했던 한 학생이 나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휠체어 농구란 종목이 있는지도 몰랐어요. 휠체어 농구를 보고 체험하면서 휠체어 농구뿐만 아니라 장애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어요. 장애인을 보면 불쌍해 보여 무조건 도와줘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휠체어 농구를 보고 체험하면서 불쌍한 사람이 아닌 우리랑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휠체어 농구가 이렇게 박진감 넘치는 운동인 걸 처음 알았어요.”
웃으며 말하는 그 친구를 보면서 나는 내가 하는 일과 나의 꿈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꿈이 크면 클수록 꿈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는 걸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꿈은 크게 가져야 된다. 그래야 깨져도 그 조작이 큰 법이다. 꿈이 작으면 깨져도 그 조각이 작아 내 손에서 가루가 되어 사라지게 된다. 성공한 사람 모두는 꿈을 크게 가졌다는 것이다. 큰 꿈은 인생의 활력이 되어 당신에게 희망이 가득 찬 삶을 선물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