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https://www.kyongbuk.co.kr/news/articl
고통에 두려워하는 사람은 벌써 두려움에 고통받고 있다-몽테뉴
얼마 전 공무원 카페에서 이런 글을 본 적 있다.
‘전 이번 시험 포기했습니다.’
A라는 사람이 쓴 글이다. A는 열심히 공무원 준비를 했다. 그런데 막상 시험 날짜가 다가오니 시험을 본 후 떨어졌을 때 받을 상처가 겁이나 공무원 시험을 포기했다고 한다.
A라는 사람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지레 겁부터 먹고 도전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는 꽤 많이 있다.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사회 필요기업』동원그룹은 임직원 670명 대상으로 ‘도전 앞에서 망설여진다면 그 이유는?’이라는 질문으로 사내 다이렉트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15%가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라는 답이 나왔다.
누구나 실패를 두려워해 도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생에 성공한 사람 모두는 그 두려움을 이기고 도전했기에 성공을 했다.
농구 전술 훈련 중에 공격자 반칙을 얻어내는 훈련법이 있다.
공격자 A선수와 B선수, 수비자 C선수와 D 선수가 있다. A선수가 공을 가지고 있으면 B선수가 A선수를 수비하는 C선수 오른쪽으로 스크린을 간다. A선수는 B선수의 스크린을 받고 왼쪽으로 드리블을 한다. 이때 B선수를 수비하던 D 선수는 “수 위치”라고 말하며 A선수보다 반 박자 빠르게 사이드 스텝으로 A선수의 길을 가로막는다. A선수는 D 선수에게 부딪친다. D 선수는 뒤로 넘어지면 된다. 그러면 바로 공격자 반칙이 된다. 하지만 D 선수가 뒤로 넘어지면서 다치는 걸 무서워해 살짝 상체를 튼다든가. 아님 다리를 움직이게 되면 공격자 반칙이 아닌 수비자 반칙이 된다. 그리고 어설프게 넘어지면 크게 다치는 건 상대가 아닌 D 선수가 된다. 정확하게 넘어져야 다치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다.
나는 이 훈련을 할 때마다 엉덩이를 뒤로 뺀 채 뒷걸음부터 쳤다. 그래서 그때마다 불호령이 떨어졌다.
“야 최용윤 똑바로 안 해!”
코치 선생님의 야단을 들을 때마다 나는 선배들의 눈치를 봤다. 왜냐면 선배들의 표정에 따라 훈련이 끝난 후 집합을 하느냐 안 하느냐 판가름이 나기 때문이다.
나는 나 때문에 집합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넘어지는 훈련을 수없이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온 몸은 푸른 멍으로 번져갔다.
어느 날 동기 K의 넘어지는 훈련을 유심히 본 적이 있다. K의 표정에는 두려움이 보이지 않았다. 훈련이 끝나고 나는 K한테 물어봤다.
“K야 넌 넘어지는 게 안 무서워? 어떻게 하면 너처럼 잘할 수 있어”
“넘어지는 게 뭐가 무서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넘어지는 거야. 그러면 어느 순간부터 무섭지가 않더라고.”
K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일어나지도 않는 일에 대한 생각을 미리 부터하고 있었다. ‘넘어지면 아플 텐데. 넘어지는 훈련을 못해서 또 집합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에 오히려 두려움이 배가 됐던 것 같다. 그래서 그 두려움 때문에 넘어지는 훈련을 잘하지 못했던 것 같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목사이자 동기부여 연설가인 닉 부이치치는 자신의 저서『닉 부이치치의 허그』에서 ‘두려움’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두려움이 우리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면 마음에 소원하는 목표와 이상을 이루지 못한다. 하지만 두려움은 그저 느낌일 뿐 현실이 아니다. 실제로 별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레 겁을 먹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치과에 가거나, 면접을 보거나, 수술을 받거나, 시험을 치르거나 하는 것이 그런 경우다.
나는 두려움이 평범한 이들의 삶을 망가뜨리는 장면을 수없이 지켜봤다. 공포 영화를 보고 놀란다든지 한밤중에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에 벌벌 떠는 유의 이야기가 아니다. 실패를 두려워하고, 실수할까 봐 전전긍긍하며, 헌신하기를 겁내고, 심지어 성공을 무서워하는 이들을 말하는 것이다. 적어도 두려움이 우리 마음의 문을 계속 두드리고 있는 것만큼은 어김없는 사실이다. 반갑지 않은 손님은 집안에 들이지 않으면 된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냉정히 외면하고 가던 길을 계속 가면 그만이다.”
맞는 말이다. 아무 생각 없이 내가 가던 길을 그냥 묵묵히 걸어가면 된다. 그러면 두려움은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스티븐 스코트는 말한다.
“실패에 대한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두려움은 당신 인생의 모든 분야에서 꿈을 이루려는 당신의 능력을 방해한다.”
두려움은 나의 능력을 떨어지게 만든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꿈을 방해한다. 우리는 두려움만 이긴다면 내가 원하는 꿈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3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나는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경 말씀에 이런 말이 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이사야 41:10)
성경 말씀처럼 당신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당신을 언제나 믿어 주는 가족, 당신을 생각해 주는 친구, 당신을 따르는 동생들. 이 모든 사람들은 당신이 어려울 때 든든한 후원자가 될 것이다. 그러니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둘째. 두려움을 정면으로 맞선다.
괴테는 “두려움이 없는 것이 용기가 아니다. 그 두려움을 이기는 것이 용기인 것이다. 그대가 할 수 있는 일, 아니면 하고 싶은 일이라도 상관없다. 그런 일이 있다면 지금 바로 시작하라. 용기 속에는 그런 일을 능히 할 수 있게 하는 천재성과 힘, 마법을 모두 갖고 있다.”라고 말한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원하는 일이 있다면 일단 시작부터 하고 본다. 일을 시작하면 두려움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두려움을 이겨 낼 수 있는 마법을 가지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두려움 때문에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는 것뿐이지 딱 한 번만 두려움을 정면으로 맞서기만 한다면 두려움은 별거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셋째. 나를 두렵게 하는 ‘말’을 멀리 한다.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주위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한다. 하지만 조언을 해주는 사람 대부분은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보다는 오히려 두려움을 더 가지게 하는 이런 말들을 한다.
“네가 되겠어?”
“그 일은 절대 안 돼”
“내가 너를 아껴서 해주는 말인데 괜히 했다가 상처 받지 말고 지금 하는 일이나 열심히 해”
“다른 사람들은 바보니? 너와 똑같은 생각을 안 했을까? 그 사람들이 괜히 안 하는 게 아니야”
이런 말들은 나를 두려움에서 극복하게 해 주기보다는 오히려 나를 더욱더 두려움 속에 갇히게 한다. 이런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의 말은 듣지도 말고 가까이해서도 안 된다.
조지 아데어는 말한다.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은 두려움의 반대편에 있다.”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은 언제나 두려움의 반대편에 있다. 두려움을 넘지 않고서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 성공한 사람 대부분은 그 두려움을 넘고 넘어서 성공을 했다. 그래서 당신도 그 두려움을 충분히 넘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