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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윤 Aug 19. 2020

긍정적 사고가 많은 옷을 가지게 한다


 “삶의 핵심은, 그것도 긍정주의자로 사는 삶의 핵심은 아직 최상의 미래가 도래하지 않았다고 믿을 정도로 순진해지는 것이다.”


 영국의 배우이며, 극작가인 피터 유스티노프가 한 말이다.


 나는 참 긍정적이다. 주위에서는 나를 예스맨이라고 부른다. 처음부터 예스맨은 아니었다. 운동선수를 그만두고 많이 배우지 못했다는 생각에 나는 뭐든지 배우려고 했다. 그래서 남들이 안 된다고 할 때 나는 무조건 하고 봤다.


 2010년 11월 코치로 농구단에 왔을 때 나에게 고리가 있는 옷은 한 벌 밖에 없었다. 그 고리가 달린 옷은 훈련 일정을 기록하며 지도할 때 입는 옷이었다. 그러나 2012년 코치에서 감독으로 변경이 되면서 나에게 고리가 달릴 옷은 한 벌에서 여덟 벌로 늘어났다.


 첫 번째 옷. 자원봉사자.

 비장애인 농구에 비해 휠체어 농구는 훈련 장비가 많다. 그래서 일손이 많이 필요하다. 우리 팀도 주기적으로 지인이나 홍보를 통해 장기간 할 자원봉사자를 구한다. 그러나 대부분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단기 자원봉사자뿐이다. 자원봉사자가 없는 날이면 감독인 내가 직접 창고에 들어가 훈련에 필요한 훈련 용품과 경기용 휠체어를 꺼내 놓고, 훈련이 끝난 후에는 다시 창고에 집어넣는다. 이뿐만 아니라 선수들이 먹을 물도 물통을 세척한 후 물을 담아 얼린 후 훈련장에 가져간다. 이렇듯 휠체어 농구뿐만 아니라 장애인 체육은 비장애인 체육보다 사람의 손이 많이 필요하다.


 두 번째 옷. 예산 담당자.

 우리 팀은 매년 A시의 지원과 A시의 시민, S대기업의 후원으로 운영된다. 매년 12월이면 다음 연도의 쓸 예산을 세운다. 나는 처음에 많이 버벅거렸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기에 어떻게 할 줄을 몰랐다. 그래서 같은 팀 Y팀장님과 동료들의 도움을 받았다.

 감독인 나는 한 해 쓸 예산만 세우는 게 아니다. 훈련에 필요한 용품이나 전국 휠체어 농구대회를 참가할 때마다 기안 문서를 만들어 제출한다.

 내가 선수일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밥을 주면 밥을 먹고, 옷을 주면 옷을 입고, 숙소에서 재워주면 그냥 편하게 자면 됐다. 그러나 내가 예산 담당자가 되면서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특히 예산 담당한테는 카드 영수증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매일 밤 영수증을 보면서 예산은 잘 맞게 썼는지 혹시 틀린 건 아닌지 불안해하며 계산기를 두드린다.


 세 번째 옷. 심리학자.

 나는 선수를 보면 제일 먼저 인사부터 한다. 그러면 선수도 나에게 인사를 한다. 이때 나는 선수의 목소리를 들으며 분석한다. 목소리를 통해 선수의 심리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수의 목소리에 힘이 넘치면 더 힘을 낼 수 있게 “훈련 때 멋진 동작 나오겠는 걸?”라며 한 마디만 한다. 그러나 반대로 선수의 목소리에 힘이 없으며 “오늘 힘들었구나?” 라며 선수가 계속 말을 할 수 있게 질문을 통해 선수의 고민을 끄집어낸다. 이야기를 듣고 바로 해결할 수 있는 고민이라면 그 자리에서 10분 안에 해결해주고, 만약 그 자리에서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이라면 그 선수에게 “내일 시간 되면 커피나 한 잔 하자.” 라며 약속시간을 잡아 선수의 고민을 들어준다. 이러면 선수 대부분 고민거리가 사라진다.


 네 번째 옷. 전술가.

 나는 2014년 대한 장애인체육회 이천훈련원에서 ‘해외 우수 지도자 초청 강습회’를 참가하여 4박 5일 동안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강사는 미국 국가대표 휠체어농구 Ron Lykins 감독이었다. 강의 진행 방식은 Ron Lykins 감독이 한국 휠체어농구 꿈나무 선수를 지도하면 한국 감독들은 코트 밖에서 관전하며 질의를 하는 방식이다. 나는 코트 밖에서 관전하기보다는 Ron Lykins 감독의 지도를 직접 몸으로 체험하고 싶어 한국 휠체어농구 꿈나무 선수들과 함께 휠체어를 탔다. 지도받으면서 Ron Lykins 감독의 휠체어농구 철학을 알 수 있었고, 그리고 비장애인 농구 훈련 연습과 전술이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휠체어 농구에서 휠체어란 단어가 들어가 휠체어 농구를 너무 어렵게만 생각했다. 그러나 Ron Lykins 감독의 지도를 받고 난 후부터는 휠체어 농구 훈련과 전술을 지도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내가 비장애인 농구 선수 시절에 배운 훈련과 전술을 10에서 2 정도만 변형하여 가르치면 됐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는 미국 국가대표 휠체어농구 팀 영상을 보며 전술을 분석하고, 그 분석을 토대로 우리 팀 색에 맞게 전술을 변형하여 지도한다.


 다섯 번째 옷. 인재 감식가.

 다른 팀에는 뇌병변(뇌의 문제가 생겨 신체 상하지 마비가 생김) 장애인을 선수로 등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나의 전술에 맞는다면 나는 기꺼이 뇌병변 장애인도 우리 팀 선수로 등록을 시킨다.

 우리 팀에는 뇌병변 장애인이 두 명이나 있다. 두 명 다 내가 발굴하였다.

 J선수는 연예인처럼 길거리 캐스팅으로 팀에 데려왔다. 퇴근 후 차를 타고 아파트 입구로 들어서는데 입구 옆 편의점에서 휠체어 장애인이 있는 것이었다. 나는 차에서 얼른 내려 편의점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러고서는 휠체어 장애인을 유심히 관찰하였다. 관찰한 결과 나의 전술에 맞아떨어져 나는 내 명함을 장애인에게 주었다. 그렇게 해서 J선수는 우리 팀 선수가 되었다.

 K 선수는 우리 기관의 일자리 사업을 통해 일하는 장애인이었다. 나는 K 선수를 유심히 관찰하였다. K 선수는 키가 컸다. 그리고 보행은 가능하였지만 왼쪽 팔과 다리에 마비가 있었다. K 선수는 키가 크고 나이가 어렸기에 잘 가르치면 팀에 필요한 존재가 될 것 같았다. 나는 J선수 때처럼 K 선수에게 명함을 주면서 휠체어 농구를 함께 하자고 했다.

 나는 이 두 선수를 적재적소에 경기에 투입해 이긴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감독의 전술에만 맞는다면 선수의 신체의 마비는 별거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여섯 번째. 시범조교.

 시범은 그 어떤 말보다 강하다. 아무리 선수들에게 훈련 전술을 쉽게 설명해도 시범만큼 쉽게 설명하는 것은 없다.

 나는 선수들에게 훈련 전술을 가르칠 때 현란한 드리블, 멋진 패스, 창의적인 슛을 하라고 지도한다. 그러면 선수들은 이해를 하지 못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선수들과 함께 휠체어를 타며 현란한 드리블, 멋진 패스, 창의적인 슛을 일부러 선보인다. 그래야 선수들이 보고 따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독은 틀에 박힌 드리블, 패스, 슛을 지도하면 선수를 발전시키지 못한다. 틀에 박히지 않은 드리블, 패스, 슛을 지도해야 우물 안에만 있는 선수를 우물 밖으로 나오게 할 수 있다.


 일곱 번째. 롤 모델.

 감독이 아버지라면 코치는 어머니이고, 선수는 어린 자식이다. 어린 자식은 부모의 말과 행동을 보고 따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감독은 말과 행동을 바르게 해야 한다.

 주위를 보면 말뿐인 감독들이 종종 보인다. 이러면 선수들은 반발심이 생긴다. 감독이 말과 행동이 같아야 선수들이 반발심이 생기지 않는다.

 감독은 선수의 거울이다. 거울이 똑바로 비쳐야 선수 또한 똑바른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다.


 여덟 번째. 훈련 기록자.

 내가 선수 시절 때 코치 선생님은 항상 종이에 오늘 할 훈련을 적었다. 그래서 훈련을 할 때 그 종이를 꺼내 보면서 선수들을 지도했다. 나 또한 오늘 할 훈련을 종이에 적어서 선수들에게 훈련을 지도한다. 이렇게 해야 훈련하는 도중 훈련 내용을 잊지 않게 된다. 감독은 선수를 지도할 때 꼭 오늘 할 훈련을 종이에 적어 훈련시켜야 한다. 그래야 내가 계획했던 대로 훈련을 지도할 수 있다.


 나에게는 이렇게 여덟  벌의 옷이 있다. 여덟 벌의 옷이 있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면 다를 “힘들지 않아?”라고 묻는다. 나는 “당연히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힘들지.”라고 말하며 한마디 더 덧붙인다. “이 힘든 걸 이겨내면 여덟 벌의 옷은 빌린 옷이 아닌 내가 산 옷이 돼.”


 긍정적인 사고는 나에게 고리가 많이 달린 옷을 갖게 해 준다. 지금 당신이 맞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 옷도 긍정적인 사고를 갖는다면 자연스럽게 맞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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