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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wrts Feb 19. 2021

잔뜩 쌓인 기적

나와 화목하려고 매주 화, 목에 쓰는 시 - 20




변기에 앉아 볼일을 본다

이제 누구에게 

말할 리도 알릴 리도 없는

별일도 아닌 일


맨 처음으로 되감아보면

우리 모두는

변기에 혼자 앉아

볼일을 별일처럼 치르고

부모로부터 박수를 받았지


그날 밤 두 어른은

큰 숙제 하나 끝냈다며

부푼 성취감을 베개 삼아 

단잠에 들었으리라


팔 구멍에 고개를 들이미는

우스꽝스러운 일 없이

바짓가랑이 하나에 

다리 둘을 집어넣는 

귀여운 모습도 더는 없이

혼자 멀끔히도 옷을 입은 

맨 처음 날은 또 어땠을지


너무 높이서는 뛰어내리지 않고

날카로운 데서는 날아다니지 않고

좁아지는 골짜기와

넓어지는 정글을 가늠해

그래도 걸을 만한 길로 골라다니는

요령을 익히기까지


잠시 웅덩이에서 머뭇댄대도

덥석 달려들어 돕지 않고

적당히 뒤따라오던

긴 그림자가 곁에 있었겠구나


대신하지도 말고

아주 떠나지도 말고

가만히 지켜봐야만 하는 숙제를 

성실히 해내는 그림자가 있었겠구나


이제야 알았다

아이의 순간과 순간은 

어른의 숙제와 숙제이고

해낸 뒤엔 기적이나 다름없음을


숱한 기적이 쌓여 

아무렇지 않은 

사람 하나가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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