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유난한 아이

Inner peace

by 쁘띠프렌

유난한 아이




가족들 모두 순~둥 순~둥 하고 둥글둥글하니 모나지 않은 성품들인데 유난히 까탈스럽고 예민한 아이는 밥상머리에서 어머니와 신경전을 벌이기 일쑤였다. 밥상을 차려 안방으로 가져오면 상위에 뭐가 있나 살펴보곤 고기반찬이 없으면 팩~! 돌아앉아 밥도 안 먹는 아이. 결국엔 계란 프라이라도 얻어내야 밥숟가락에 손을 얹는 아이. 우리 집 식사메뉴 서열은 가장이 아닌 외동딸 밥 먹이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 엄마, 난 왜 초등학교 6학년 때 키 고대로야? ”

“ 입이 짧아 안 먹으니까 그렇지. 우유도 안 먹고, 과일도 안 먹고, 채소도 까실 거리지 않게 촘촘히 다져 달걀 물이라도 입혀야 겨우 한두 점 먹을까 말까니 뭐든 영양분이 있어야 크지. ”

“ 갓난아기 때 젖은 먹여야 하는데 분유만 먹으면 토하고 설사를 하니 할 수 없이 쌀겨 죽을 끓여 체에 밭친 묽은 물을 먹여야 했지. 젖이 부족해서 그랬지만 하여튼 유~난했어. ”


그랬다.

유난하고 특이한 아이. 사대부 가정에서 유교적 예법을 익히며 자란 어머니는 보수적이고 대쪽 같은 성품이셨다. 그녀는 다른 형제들과는 많이 다른 아이를 이해하지 못했고 더욱이 겉으론 드러내지 않지만, 매사 아들보다 딸을 우선하는 아버지 처사에 못마땅해하셨다. 가정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아이는 본인 기질과 무관하게 엄격한 처사에 순종해야만 했다.

돌이켜 보면 음식을 토해 내는 습관은 예민한 그 아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어 수단이자 반항이었다고 생각된다. 어머니는 자기주장을 하는 아이가 말대답으로 대항한다고 생각하고 단호함으로 제압하셨다. 그 시대에는 보편적으로 여자는 시집을 잘 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러려면 다소곳하고 고분고분한 유순한 여성으로 자라야 한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그럴수록 그 아이는 뜨개질, 바느질, 요리 등 흔히 여자들의 신부수업이라 불리는 것들에는 일부러 시큰둥하게 반응하며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문제는 교내 가정 가사 점수였는데 필기 60%, 실기 40%를 내신성적에 반영했다. 아이는 고민할 것도 없이 필기점수를 만점으로 커버하고 실물 과제는 대충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제출하곤 했다.



결혼을 앞두고 어머니는 딸 걱정에 머리를 싸매고 누우셨다. 이유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아이가 덜커덕 시댁에 들어간다고 하니 이보다 큰일 날 일은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어머니는 혼수보다 시댁에 보낼 이바지 음식에 온 정성을 다했고 최상급 재료와 솜씨로 시 외할머니 어머니를 놀라게 했고 시댁에서는 자랑삼아 일가친척들을 모셔 대접했다.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시댁 어른들 사이에 그 이바지 음식은 회자되고 있다.

#

예전 국민학교 시절에는 아침 조회시간이 되면 전교 학생을 운동장에 집합시키고 교장 선생님 훈화를 시작으로 족히 30분은 서 있어야 했다. 각 반을 두 줄로 세우고 줄에 맞혀 일렬로 서 있으면 아이는 어지럼증이 나서 고개를 푹 숙이고 눈을 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 안에서 수십 개의 노란빛이 타 다탁 사방으로 튀고 머리가 한 바퀴 돌면 그다음엔 기억이 없었다. 깨 보면 교내 양호실. 한두 번 오는 환자가 아니니 양호 선생님은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늘 그랬듯이 스르르 일어나 가벼운 묵례를 하고 교실로 향하는 아이. 한 번은 하굣길에 쓰러져 오빠 등에 업혀 집에 온 적도 있었다. 그런 아이가 걱정스러워 병원에서 엑스레이도 찍고 용하다는 한의원에서 지어준 보약을 오랜 기간 달고 살았다. 그 덕분인지 몰라도 고등학교 입학 후부터는 잔병치레도 없이 잘살고 있는 거 보면 약효가 없는 건 아닌 듯싶다.

본래 알러지 체질로 먹는 것보다 못 먹는 과일 수가 더 많았고 행여 면역이 약해지면 피부가 먼저 반응을 일으켰다. 언젠가 어머니가 사 오신 체리 때깔이 어찌나 예쁜지 붉은빛에 그만 유혹되고 말았다. 겨우 한입 베어 물었을 뿐인데 붉은 두드러기가 목부터 시작해 두덕두덕 번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아이의 몸에 검은 천을 둘둘 말아 뜨거운 방 안에서 몸을 지지게 했다. 무슨 종교의식이라도 치른 듯 다행히 두드러기는 사그라들기 시작하고 노곤해져 한숨 자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말짱해졌다.



결혼 후 아기를 낳고 산후조리할 때도 온몸의 땀샘이란 땀샘은 다 열렸는지 내복을 하루에 서너 번씩 갈아입을 정도로 흥건했다. 몸의 수분이 다 빠져나가 버린 후 이번엔 얼굴이 건조해져 푸석푸석 쪼글쪼글 할머니 피부로 변해 허물 벗듯 각질이 드러났다. 할 수 없이 유명한 장충동 ‘유 XX 피부과’ 원장님을 찾아갔다.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 원장님은 손주 며느리를 대하듯 하시며 진피층이 얇아 아기 피부 같으니 처방한 약 외엔 아무것도 바르지 말고 되도록 화장은 하지 말라며 당부하셨다.

나이가 들면 체질도 바뀐다는데 그 아이에겐 해당 사항이 없는 것 같다. 원해서 하게 된 편식은 아니지만 가려서 먹게 되고 요리할 때 조미료는 거의 쓰지 않는다. 건강을 위해서라지만 때때로 혀를 자극하는 감미료의 유혹을 뿌리치기는 힘들다. 특히 주말이면 우리 집 두 남자가 최 애 하는 점심 한 끼. 바로 ‘라면’이다. 아들이 어렸을 때는 ‘라면’ 먹고 싶다 하면 고육지책으로 한번 데쳐 기름을 빼고 다시마 우려낸 베이스 국물에 청양고추와 매운 고춧가루를 넣고 수프를 반만 첨가하고 끓여 주곤 했다. 성인이 된 후 아들은 직접 라면을 요리하기 시작하며 주방엔 얼씬도 못 하게 했다. 라면을 끓이면 부르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두 남자를 주방으로 모이게 만드는 묘한 면 요리. 모든 음식에 조금만 첨가해도 감칠맛으로 바뀌는 8g의 마약 가루의 힘. 어쩔 수 없이 가끔은 두 남자의 최 애 식품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을 택하고 있다.

예민한 신경과 피부로 인해 모든 촉각을 곤 두세 우고 생활하다 보면 때론 지치고 피곤해져 주변 환경에 방어적이 되거나 사람들 시선에 민감해진다. 학창 시절 학교에서는 누구보다 모범적이고 수용적인 친구지만 긴장감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집에 오면 어머니께 풀거나 형제들에게 까칠하게 굴었다. 그런 연유로 가족들 사이에서 더 특이한 아이가 되곤 했다.


“ 누나, 그러다간 연애는 고사하고 결혼도 못 할 걸? ”

“ 그런 성질로 시집가면 3일 만에 쫓겨나지. 쯧. 쯧 ”

부정적인 언어들은 사춘기 아이에게 자존감을 하락시켰다. 하지만 가족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는 대학 1학년 때 만난 첫사랑과 7년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 신기한 일은 시댁과 궁합이 맞았는지 친정과는 다르게 우려했던 부딪침이나 큰 말썽 없이 사랑받으며 지냈다. 게다가 오랜 연애기간을 통해 아이를 파악하고 너그럽게 받아주는 친구 같고 애인 같은 남편 덕에 어머니가 염려하던 예민함과 까탈스러운 성질을 부릴 일은 거의 없었다.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라고 하는데 결혼을 함으로써 얻어진 전혀 다른 환경에서 심적으로 편해지고 그 아이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수용해주는 넘치는 사랑으로 치유받았다. 물론 친정에서 사랑 못 받고 자란 건 아니지만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받아주는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편안함이었다. 결과적으로 세월이 흐르며 날카로움은 조금씩 무뎌지고 그럼으로써 예전보다 외부 자극에 피부도 덜 예민하게 반응했다.

#


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다.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일인으로 특히 ‘팬데믹’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에게는 필수적으로 자기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기를 바란다. 다시 시작한 요가. 한 시간 남짓 나의 몸에 귀 기울이고 긴장을 이완시키고 나면 훨씬 가벼워진 나를 만나게 된다.

민낯의 나를 마주하고 온전히 받아들일 때 비로소 심연에 고요한 평정심을 되찾게 된다.


오늘도

내면 깊이

마음의 평화를 꿈꾸며

두 손 모아 나마스떼 (Namaste)*


Inner Peace




* 나마스떼 (Namaste) 요가에서 자주 쓰는 나마스떼는 산스크리트어로 인도와 네팔에서 주고받는 인사말로 당신을 존중, 존경한다는 의미와 더불어 당신이 믿는 신도 존경한다는 뜻을 내포한다. 만남과 헤어질 때 사용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