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나의 첫 항암이 시작되었다.
순서는 예방적 차원에서 항구토제를 먼저 주입하고 R-CHOP 항암제를 차례대로 맞게 된다고 했다. 그중 부작용이 심한 약물은 주입 속도와 용량을 서서히 올려가면서 맞을 예정이라고, 혹시나 두드러기가 올라오거나 호흡 곤란하거나 하는 증상이 있으면 바로 간호사를 호출해 달라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하고 그대로 누워 주렁주렁 매달린 항암약들이 이제 막 시술을 끝낸 케모포트에 차례대로 밀고 들어오는 것을 올려다보았다. 코 끝 찡하게 식염수 냄새가 나기도 했고 알 수 없는 울렁거림이 느껴지기도 했다.
- 여보, 내가 옆에 있으니까 숨 쉬기 힘들거나 몸이 가렵거나 하면 바로 얘기해.
남편은 내가 항암을 하는 6시간 동안 옆에서 책을 읽으며 기다리겠다고 했다. 신생아 육아로 지칠 대로 지친 터라 남편도 보호자 침대에 눕거나 어디 가서 좀 쉬었으면 좋겠는데 남편은 나를 지켜보는 게 중요하지 본인이 쉬는 건 중요하지 않다며 한사코 의자에 꼿꼿하게 앉았다. 나만큼이나 첫 번째 항암에 대해 긴장하고 있는 남편이었다. 나는 그런 남편의 옆모습을 보며 미안함과 동시에 안정감을 느꼈다.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까. 깜빡 잠이 들었는지 눈을 뜨니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았다. 그런데 몸이 이상했다. 숨이 잘 안 쉬어지고 몸이 뻣뻣하게 굳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너무 놀라 '여보, 여보!' 하고 옆에 있는 남편을 다급하게 불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남편이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더 목소리를 높여 '여보!'하고 외치며 손을 뻗어 남편을 불러보려고 했지만 무슨 일인지 손마저 돌덩이처럼 무거워 들리지 않았다. 나는 심장이 빠르게 뛰면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답답함을 느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지금 이 상황을 알리지?
- 여보, 여보. 괜찮아?
눈을 뜨니 남편이 나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가위에 눌린 건가. 나는 힘이 들어오지 않는 주먹을 애써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며 '기력이 쇠해서 악몽을 꿨나 봐.' 하고 멋쩍게 웃었다. 항암 부작용이 아닌 악몽이라 얼마나 다행인가 하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항암제를 맞는 6시간은 참 더디게 흘러갔다. 케모포트에 주사가 꽂혀있기 때문에 움직임도 자유롭지 않았고 무엇보다 항암제 특유의 냄새가 내 몸 안에서 돌고 돌아 가만히 있는 침대에 누워서도 멀미가 났다. 이럴 땐 뭘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까. 드라마도, 유뷰트도 다 딴 세상 이야기인 것 같아 나는 그냥 몸을 일으켜 앞으로 내가 맞이해야 할 순간들을 대비하기로 했다.
출산과 항암을 먼발치에 두고 기다리고 있던 겨울, 가장 두렵고 피하고 싶은 것을 꼽으라면 나는 출산도 항암도 아닌 탈모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메이크업이나 헤어에 큰 관심이 없는 나지만 그래도 이렇게 아예 머리가 빠져버리는 건 아무리 미용에 무지한 사람이라도 괜찮을 리 없었다. 그동안은 '머리가 빠지게 되면 가발 쓰면 되지 뭐'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막상 항암을 시작하니 시한부를 사는 사람처럼 마음이 조급해진 것이다.
알고 싶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었던 가발의 세계는 막상 열어보니 꽤 다양했다. 가발 사이트에서 긴 머리 가발이나 단발머리 가발 중 하나를 골라 주문하면 될 것 같았는데 찾아보니 여러 개의 쇼핑몰은 물론 가발 전문 미용실도 있었다. 가발도 통가발, 인모가발, 모자 가발 등 종류도 많았다. 가격도 천차만별이었다. 쇼핑몰에서 구매할 수 있는 십몇 만 원의 가발에서부터 스튜디오에서 맞추는 몇 백만 원의 가발까지. 가발에 이렇게 큰 비용을 들이자니 선뜻 손 이 가지 않았지만 평소에 캡모자도 불편해서 안 쓰고 다니는 나였기 때문에 가발은 내 두상에 맞춰야 그나마 쓰고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한 시간의 고민 끝에 큰맘 먹고 가발 전문 스튜디오에 전화를 걸었다.
- 아, 제가 가발을 맞추려고 하는데요. 혹시 오늘 가능할까요?
[ 네- 확인해 보겠습니다. 실례지만 어떤 이유로 가발 맞춤 주문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
- 제가 항암을 하게 돼서 가발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 그러시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항암은 언제 시작하시나요? ]
- 지금 항암 주사 맞고 있는데... 오늘 첫 시작했어요!
[ 아... 지금 항암 하시는 중에 전화를 하신 거군요...? ]
상대방이 당황하는 것이 느껴졌다. 항암을 하는 도중에 가발을 맞추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건가...? 다른 사람들은 언제쯤 가발을 준비하는지 궁금해졌다.
[ 일단 오늘 항암을 시작하시면 14일 뒤에는 탈모가 시작되실 거예요. 가발은 측정하고 맞춤 제작하는 데까지 약 한 달 반 정도 소요될 거고요. ]
- 오래 걸리는군요! 그럼 빨리 가야겠는데요? 오늘 예약 꽉 차 있으면 내일이라도 방문할게요.
[ 아... 아마 내일 방문하시기 어려우실 거예요. 오늘 이후로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셔서 몸이 많이 좋지 않으실 겁니다. 둘째 주까지는 면역이 계속 떨어지셔서 밖에 나오시기 힘드실 거예요. 일단 오늘 항암 중이시니까 2주 차까지는 잘 쉬시다가 탈모가 시작되면 그때 오시는 걸로 예약 도와드리면 어떨까요? ]
아무래도 항암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가발을 맞춰서일까. 항암 중인 것도 까먹고 당장 내일이라도 가발을 맞추려고 나갈 기세였는데 오히려 가발 스튜디오에 있는 직원 분이 거의 간호사와 똑같은 설명을 해주며 나를 말렸다. 나는 더 할 말이 없어 2주 뒤에 가겠다고 하고 이제 정말 진짜로 암환자가 되었구나 하고 새삼스럽게 좌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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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항암과 신생아 육아의 공존이 시작되었다. 암환자와 신생아, 세 식구 중 약자가 두 명인지라 남편을 돕기 위해 엄마도 함께 했다. 항암은 3주 주기로 맞게 되는데 항암을 맞은 날로부터 7-10일 차까지 면역이 계속 쭉 떨어지고 그 이후로는 서서히 컨디션이 올라와 조금 살만해지면 항암제를 맞는 날이 된다고 했다.
누군가 항암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회차를 묻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첫 번째 항암을 했던 때라고 말할 것이다. 첫 번째 항암은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었다. 항암제를 맞고 난 후로 그렇게 계속 내 몸에서 역한 약냄새가 나는지 몰랐고, 화장실에 갈 때마다 소변 색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잿빛일 지도 몰랐고, 면역주사를 맞고 나서 허리가 그렇게 아픈지도 몰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머리가 빠지는 스트레스가 이렇게 클 줄도 몰랐다.
나는 낮에는 세상밖으로 나왔어도 아직 만 40주도 안 된 신생아를 보느라 마음 졸였고, 밤에는 머리가 언제 빠질까, 정말 머리를 꼭 빡빡 다 밀어야 할까 하며 수많은 암환자들의 브이로그를 보며 밤을 새웠다. 남편과 엄마가 최선을 다해 육아와 살림을 도와주며 나는 회복에만 집중하라고 했지만 그때의 나는 아무것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그리고 항암을 시작한 지 14일. 과연 과학의 14일이라더니 정말이었다.
'머리 오늘 빠지는 거 아니야?', '자고 일어나면 우수수 다 떨어지려나?' 하고 항암 2주 차에 접어들면서는 매일 머리맡을 확인했는데 정말 딱 14일이 되자 탈모가 시작되었다. 처음엔 그냥 머리가 좀 많이 떨어졌나 싶었는데 손으로 머리를 쓸어내리는 족족 머리카락이 맥없이 손에 잡혔다.
머리를 감으면 더 심했다. 샤워기로 머리를 헹구면 물이 떨어지는 것처럼 머리카락이 우수수 떨어져 나와 욕조를 가득 메웠다. 흰 욕조에 물 반, 머리카락 반. 진짜 항암하고 아무리 아파도 울지 않았는데, 머리가 이렇게 끝도 없이 빠지는 것을 눈으로 보니까 마음이 너무 상했다. 5개월 전부터 마인드 컨트롤 했는데, 브이로그도 계속 보면서 마음을 잘 잡았는데도 그런 건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나는 욕실에서 나와 사춘기 소녀처럼 옷방 문을 쾅 닫고 엉엉 울었다.
- 괜찮아, 여보. 머리는 또 금방 자랄 거야.
-... 갈 거야.
- 응?
- 지금 가발 바로 맞추러 갈 거야.
남편과 나는 바로 짐을 챙겨 가발 스튜디오로 향했다. 엄마와 아기에게 인사하고 문을 나서며 엘리베이터에서 거울을 보는데, 집에 돌아올 땐 빡빡머리가 밀려 있을 생각 하니 마음이 착잡했다. 울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만 눈물이 맺혀 꾸역꾸역 손등으로 눈을 비벼댔다. 그런데 남편은 이런 나를 위로하면서도 한 손으론 핸드폰을 들고 영상을 남기고 사진을 남겼다.
- 아니, 뭐 하는데?
- 머리카락 있는 거 지금 많이 남겨야지! 이것도 다 추억이야.
등짝 스메싱 맞을 소리... 정말 내 속도 모르고 지금 이 상황을 영상으로 촬영하다니. 어이가 없어서 화를 내다 웃어버렸다. 그러고 보면 남편은 꼭 어딜 가나 사진을 남겼다. 처음 세침검사를 하러 대학병원에 갔을 때에도 지혈하고 있는 사진을 찍었고, 항암을 할 때에도 사진을 찍어두었다. 심지어 가발을 맞추러 가는 차 안에서도. 이 사진을 어디에 올리거나 누구에게 보낼 것도 아닌데 왜 저렇게 기록을 남길까 했는데, 지금은 가끔 잠이 안 오는 어느 날 그때 찍은 사진들을 찾아본다. 꼭 여행지를 가서 찍은 사진만 추억인가, 이렇게 큰 산들을 넘어가는 것이 진짜 추억이지.
가발 스튜디오에서는 가발에 대한 상담과 쉐이빙이 이루어졌다. 나는 긴 머리의 기장을 선택했고, 지금의 머리는 애매하게 남겨두지 않고 다 빡빡 밀겠다고 결정했다.
- 눈을 감고 계시는 게 좋을 거예요.
쉐이빙을 하기 전 미용사 분이 말했다. '네 그럴게요.' 나는 두 눈을 꼭 감았다. '시작할게요.'와 동시에 이발기 소리가 나며 머리가 목덜미부터 시원해져 갔다. 아마도 남편은 이런 내 모습을 사진 찍고 있겠지. 낯선 소음과 낯선 촉감과 낯선 상황에서 나는 바짓자락만 세게 움켜쥐었다.
- 그대로 일어나셔서 머리 감으러 이동할게요.
쉐이빙은 생각보다 금방 끝났다. 미용사분이 의자를 돌려 거울을 등지게 하고 나를 일으켰다. 나는 머리를 빡빡 밀어도 머리를 감겨주는구나(?) 하고 신선한 경험을 하며 모든 마음을 내려놨다. 시원해져 버린 머리만큼 마음도 의외로 후련했다. 아예 밀어버리고 나니까 더 빠질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그냥 해탈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왠지 그냥 이 상황이 웃기기도 했다.
- 여보, 나 어때?
쉐이빙과 가발 피팅이 끝나고 직원들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남편과 나 둘만 있을 때 나는 눈을 뜨고 남편에게 물었다. 나는 거울을 안 보면 그만이지만 어쩌면 남편은 나보다도 더 내 모습을 많이 볼 것 아닌가. 남편이 볼 때마다 어색해하거나 이상하다고 여길까 내심 걱정도 됐다.
- 귀여워. 동자스님 같은데?
- 에이, 괜히 그런 말하지 말고.
- 진짜야. 그냥 귀여운데. 오히려 나는 머리 민 것보다, 이마에 난 빨간 자국이 더 마음 아프다, 야.
그제야 나는 이마에 난 가발 자국이 눈에 보였다. 순간 눈물이 고였다. 남편은 머리가 빡빡 밀어서 이상해진 내 모습보다, 맞지 않는 가발들을 여러 번 착용해 보느라 자국난 이마가 아플까 봐 그게 더 신경 쓰이는구나. 나는 남편의 그 한마디로 남편이 빡빡머리인 나를 어떻게 볼까에 대한 걱정은 이후에 한 번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머리카락이 없는 게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었다. 머리를 아주 짧게 밀었어도 항암을 하는 동안 그 짧은 머리카락 마저 계속 빠져서 베개 커버며 옷이며 콕콕 박혀 피부를 따갑게 했다. 또 샤워를 할 때마다 부러진 샤프심 같은 머리카락이 욕조에도 몸에도 다닥다닥 들러붙어 그걸 때는데도 한 세월이 걸렸다. 무엇보다 아기를 안을 때마다 내 짧은 머리카락이 아기 옷 어딘가에 박혀 따갑게 할까 봐 눈은 늘 머리카락 찾는데 혈안이 되어있었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을 방법을 찾아야 했던 날들. 남들이 산후탈모라고 속상해할 때 나는 머리카락 전체를 다 밀어야 했고, 남들이 산후풍으로 힘들다 할 때 나는 항암 부작용까지 갓 출산한 몸으로 견뎌내야 했지만 이 또한 감당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어 그저 시간을 보냈다. 마치 머리카락만 안 떨어지면 된다는 마음으로 아기 속싸개를 빡빡머리에 두르고 꽉 묶어버리는, 보기엔 우스꽝스러워도 누구보다 입술을 꽉 깨물었던 그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