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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람북 Sep 24. 2024

장모님과 사위의 신생아 육아 대격돌

항암을 시작할 무렵 우리 집은 둘에서 아기까지 셋이 되고, 셋에서 엄마까지 넷이 되었다. 네 식구 중 둘은 환자와 신생아였기 때문에 각자의 부모이자 보호자인 엄마와 남편이 이 둘을 케어하기 위해 기꺼이 한 지붕 아래 모인 것이다.


이 날을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던가.

일단 집을 옮겼다. 신생아인 나다와 환자인 내가 공간적으로 분리가 되어야 했고, 엄마도 독립된 방에서 머물며 생활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음으론 아기방을 세팅하고 엄마가 지내며 사용할 침구와 식기구도 준비했다. 남편은 낮에는 이사 간 집에서 아기와 엄마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밤에는 해본 적도 없는 육아를 실수 없이 해내려고 소아과 의사가 쓴 두꺼운 육아책을 몇 번이고 정독했다. 엄마는 엄마대로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육아를 해야 했기에 떨리는 마음으로 신생아 목욕시키는 유튜브를 보며 머릿속으로 연습했다고 했다.


나는 그런 남편과 엄마에게 마냥 고맙고 마냥 미안했다. 첫 항암이라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몰라 두려웠고, 아기는 이른둥이라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는데 이 모든 짐을 남편에게 떠맡기는 것 같아 미안했고 그런 우리를 돕겠다고 한달음에 달려와 준 엄마에게 고마워 나는 내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채 생각하지 못했다. 나도 준비를 했어야 했는데. 처음인 육아를 엄마와 남편과 함께 하는 것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사실 이번은 유독 쓰기 어려웠다. 연재를 하면서 이렇게 한 글자 떼기가 어려웠던 적은 처음이다. 방사선을 하고 항암을 했던 기억을 떠올려서 쓰는 것도 이렇게까지 힘들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이번 편은 스트레스가 되는 걸까. 매주 화요일마다 연재하면서 아기가 갑작스럽게 열이 났을 때를 빼곤 자의로 연재를 미룬 것도 처음이다. 너무 쓰기가 싫어 연재를 여기서 멈출까도 생각해 봤지만 그러기엔 써 온 글과 받았던 응원의 메시지가 아까워 다시 겨우 마음을 붙잡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항암도 방사선도 이제는 지난 경험이라 생각해서 담담히 써 내려갈 수 있었는데 아마도 이번 편에는 아직 소화되지 않은 감정이 어딘가에 조금은 남아있나 보다.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밤새 썼다가 다음날 아침에 지워버리고, 뭉뚱그려 썼다가 그것도 이상해서 삭제해 버리길 몇 번째. 아예 목차에서 빼버릴까도 했지만 빼버릴 수만은 없는 중요한 시간 중 하나라 어떻게든 이어가 보려고 한다. 그러니 글이 조금 띄엄띄엄 인 것 같다면 그것은 독자의 기분 탓이 아닙니다.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우리 집이라는 채널에서 슬기로운 의사생활과 슈퍼맨이 돌아왔다 정도 방영할 거라고 알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며느라기가 편성되었다고나 할까. 며느라기 같은 드라마는 계획에도 없었는데 말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육아만큼은 아니었지만 장모님과 사위의 육아도 꽤 쉽지 않은 영역이었다. 아니 어쩌면 엄마와 딸이 하는 육아도 그럴 수 있겠다. 주변에서 보면 친정엄마가 딸 산후조리를 도우러 갔다가 마음이 단단히 상했다는 케이스도 심심찮게 있다니 말이다. 이 모든 문제는 시어머니든 엄마든 장모님이든 손주 사랑하는 마음은 부모 못지않는데 삼십 년 전 육아의 상식이 지금의 육아의 방식에 따라오지 못한다는데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오히려 교육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라 육아도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이 시기부터 이렇게 해야 한다.'라는 가이드라인이 명확하면서도 다양하다. 당장 수면 교육만 해도 방법도 여러 가지일뿐더러 분유를 주는 것도 누구는 하루에 이만큼을 먹여야 한다, 누구는 아기가 원하는 만큼 줘야 한다 주장하는 바가 다르다. 이제 갓 부모가 된 엄마 아빠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열심히 아기의 발달에 맞춰 필요한 것들을 따라가고자 하는데 여기에 확신이 들지 않는 부분이 있거나 잠시라도 마가 뜨는 시간이 있으면 그때 '옛날에 너 키울 땐 다 이렇게 했어.'가 어김없이 치고 들어온다. 증거로 가장 흔하고 귀여운 에피소드를 꼽자면 요즘 엄마 아빠들은 태열 오른다고 시원하게 입히는데 그렇게 동네를 나갔다가는 '양말 신겨라'라는 소리를 백 번 듣는다는 것을 예로 들 수 있겠다.







하여간 그 짧은 몇 주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엄마는 손주가 너무 예쁘고 자랑스러워 아기가 병원에서 퇴원하고 집에 온 다음날 갑자기 엄마 친구를 집에 초대하기도 했고, 밤에 수시로 깨는 아기를 재우느라 아기랑 분리하지 않고 한 침대에서 밤잠을 자기도 했다. 항암을 시작한 딸에겐 다양한 끼니를 해주고 싶은 마음에 음식도 이왕이면 조금 더 맛있게 하려다 그간 우리가 먹지 않고 피했던 식재료를 사용하기도 했다.


그 무렵 남편은 아내의 건강과 아기의 안전이 최우선이라 모든 것에 철저하게 대비를 하고 있는 터였다. 아내의 식단부터 아기의 하루 스케줄까지 신경이 안 쓰이는 부분이 없었다. 그런 남편의 마음엔 장모님의 도움이 유일하게 의지 되면서도 어떤 면에선 신경 쓰이고 불편했다. 애초에 '어떻게 해주시고 이 부분은 여기까지 해주세요.'라고 명확하게 기준을 정하고 충분한 대화를 했어야 했는데 그럴 겨를이 없이 육아가 시작되어 서로가 눈치껏 더 돕겠다고 하던 게 그만 별 영양가 없는 에너지 소모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상태로 서로가 잠이 부족하고 고단한 날들이 쌓였다. 엄마와 남편 모두 겉으로는 아무 내색 없었지만 내 귀엔 엄마가 마음속으로 '치-' 하는 소리와 남편이 '아...'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언제라도 내가 개입해서 상황을 정리했어야 하는데 나는 나대로 엄마와 남편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커서 어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양쪽의 눈치만 보며 엄마의 마음이 상할세라 남편의 신경이 예민해질세라 중간에서 전전긍긍하기만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참아왔던 마음이 다 터져버렸다. 어떻게 보면 계기는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거였는데 생각해 보면 어떤 일이었건 상관없이 이미 예고되어 있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그렇게 밤을 새 가면서 돕는데 계속 지적만 당하는 것 같아 서럽고 힘들고 화가 났고, 남편은 모든 게 조심스럽고 걱정돼서 이렇게 해주십사 하고 부탁드리는데 매번 긍정의 마음으로 수용되는 것 같지 않아 지치고 피곤하고 어려웠다. 그 사이에서 나는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어쩌면 아직도 산후조리를 해야 하는 몸으로 항암을 하느라 견디기 버거웠는데, 엄마와 남편이 한 팀이 되어 나를 돕는 게 아닌 서로가 서로를 못마땅해하는 마음을 지켜보는 게 스트레스가 되었다. 결국 그냥 이럴 거면 돕지 말라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항암을 하면서 신생아 육아까지 할 테니까 제발 그만 좀 하라고 큰 소리를 내고서야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



엄마가 짐을 싸서 나갔고, 남편이 육아와 간병을 홀로 책임져야 했고, 상처 주고 상처받은 내가 남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육아를 돕는 모든 집에서 있을법한 에피소드인데 그땐 왜 그렇게 화가 났고 왜 그렇게 상처받았으며 어째서 그 마음은 아직도 소화되지 않는 것일까.


마치 입덧할 때 남편이 먹고 싶은 음식을 사다 주지 않으면 출산 이후에도 걸핏하면 그때의 일을 끌어와 화를 내는 것처럼, 왜인지 모르게 나는 그때 일을 생각하면 자꾸만 어릴 적 엄마가 어느 날 짐을 싸서 나에게서 떠나버린 것까지 떠올라서 내가 가진 모든 아픔을 끌어와 더욱 엄마를 향해 분노했다. 더욱,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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