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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니워커 Nov 15. 2023

삐빅, 시그널을 감지했습니다

15. 돌싱이 된 이후 처음 작업을 당해봅니다


이 만남이 어떤 인연으로 변해갈지는 시작하기 전엔 알 수 없으니까.


3040 모임에서 새로운 친구를 여럿 사귄 이후 자신감이 조금 생겼다. 돌싱이더라도 충분히 새 관계를 만들 수 있구나, 편견 없이 대해주는 좋은 사람들이 많구나 하고 말이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모임에도 나가보면 어떨까? 이 분들은 참 좋은 사람들이지만, 또 다른 좋은 사람들이 다른 모임에도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내 삶에도 큰 동기부여가 되고 있었으니까.


한 동안 들어가 보지 않던 모임 어플을 오랜만에 켜봤다. 다양한 모임 중 회사와 멀지 않고 퇴근 후 갈 수 있는 날짜에 모임이 하나 있었다. 맥주를 마시며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주제였는데, 이미 10회 이상 진행된 검증된 모임이었고, 후기도 모두 좋아서 한 번 나가보기로 했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니. 굉장히 뜬 구름 잡는 이야기 같았다. 각자의 연애 경험이나 사랑에 대한 에피소드를 푸는 걸까? 그걸 가지고 어떻게 이야기를 이어가게 할 수 있을까? 호스트의 진행방식이 궁금했다.


모임 날은 비가 많이 오는 7월이었다. 야근 때문에 약속시간보다 20분 늦게 도착하게 되었다. 정말 죄송하다며 얼른 가겠다고 문자를 미리 드렸는데, 걱정 말고 비 오니까 천천히 안전하게 오시라는 호스트의 친절한 답장에 마음이 조금 놓였다. 뒤늦게 도착한 모임 장소는 지하철역 입구에서 조금 들어간 골목으로, 생각보다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길이었다. 2층으로 올라가니 나를 제외한 게스트들이 모두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지금 막 피자가 도착했어요. 식사 안 하셨죠?"


호스트가 친절히 맞아주며 말을 건네왔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라길래 당연히 호스트가 여자일 거라 생각했는데, 내 또래로 보이는 남자분이었다.


"마지막 J님까지 도착했으니, 짧게 다시 제 소개를 할게요. 저는 오늘 모임의 호스트인 D라고 합니다."


D는 내 또래로 보이는 선한 인상의 사람이었다. 능숙하게 게스트들을 배려하며 진행하는 모습에서 오늘 모임이 그리 나쁘지 않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게스트는 나까지 6명이었는데 모두 여자였다. 이렇게 여자들만 게스트로 오면 오히려 남자 호스트 입장에선 꽤 불편하지 않을까 싶어서 모임 중간쯤 물어봤는데, 주제가 사랑이라 그런지 자기 모임엔 여자분들이 많이 오신다고 했다.

모임 공간은 낮 시간엔 D가 사무실로 쓰는 공간으로, 저녁에만 가끔 이렇게 모임을 여는 거였다. 스타트업을 창업해서 사업을 키워가고 있는 중인데, 아직 사업이 크지 않아서 소소한 용돈벌이도 할 겸 하고 있다는 말에 역시 사업을 하면 고충이 많겠구나 싶었다.


예상대로 모임은 잔잔한 대화들로 흘러갔다. 여자분들만 모여서 그럴 수도 있지만, 3040 모임 때처럼 사람들과 티키타카가 맞으며 즐겁게 계속 대화를 나누는 느낌은 아니었다.

‘아, 역시 내가 운이 좋았던 거구나. 다른 모임에서도 케미가 맞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는 없는 거구나.’

아쉽긴 했지만 돈 낭비 시간 낭비라고 생각될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평범하고 소소한 대화를 나누다가 밤 10시쯤 모임이 끝나고 나왔더니 비가 더 쏟아지고 있었다. D는 게스트들에게 우산을 혹시 안 가져오셨으면 빌려드리겠다며 친절히 말해줬고 몇 명은 우산을 빌린 뒤 꼭 돌려주겠다고 말하고 헤어지게 되었다. 난 우산이 있었기에 먼저 들어가겠다고 말한 뒤 헤어졌다.




그리고 며칠이 흘렀을까, 주말 오후였던 것 같다. 집에서 쉬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안녕하세요. 그날 비가 많이 왔는데 잘 들어가셨어요?"


앞의 문자를 지우지 않은 상태여서 알 수 있었다. D로부터 온 문자였다. 모임이 끝난 지 이미 며칠이나 지났는데 갑자기 잘 들어갔냐는 문자라니, 뜬금없었다.


"네, 잘 들어갔죠. 그날 재밌었습니다."하고 형식적인 답장을 보냈다.


"그날 위스키 같은 고도수 술 좋아하신다고 한 게 생각나서요. 혹시 고량주는 어떠세요?"


음? 갑자기 술이라니. 대화의 흐름이 수상하다.


"고량주는 제대로 마셔본 적이 없네요. 고도수 술 중엔 아직 위스키만 마셔본 거였어요."


"그럼 이번 주에 시간 되시면 고량주랑 같이 중국요리 같이 드실래요? 오래간만에 고량주가 마시고 싶어 져서요."


어라. 내가 아무리 눈치가 없는 연애고자라도 이건 무슨 상황인지 느낌이 온다.


잠시 고민했다.

만났을 때의 인상을 떠올려보면 내가 썩 좋아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외모도 대화할 때 느낀 성격도 그냥 평범했다.

하지만 이렇게 모두 다 쳐내다간 시작도 못하고 계속 제자리일 게 뻔했다. 이제 모든 기회가 소중한 나이이다. 심지어 난 한 번 다녀온 사람인데, 이렇게 남자가 작업을 거는 상황이 앞으로 몇 번이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취향이야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건데 의외로 만나보면 괜찮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일단 대화를 나눠보는 것 자체를 미리 막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이게 뭐라고 한참 고민을 하다가 답장을 보냈다.


“오, 중국요리 좋죠.”


위스키와 또 다른 매력이 있어서 고량주도 좋아한다. 특히 양고기를 먹을 때 궁합이 좋다.
지금까지 <우리 종착지가 사랑이 아니라면> 1부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뒷 이야기는 책으로 만나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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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손을 꼭 잡고 이혼하는 중입니다>와 일부 이어지는 조니워커 시리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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