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자주 볼 수 없지만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조그만 아기들, 얼마나 예쁜가요! 꼬물거리는 모든 행동이 신기하고 재미있습니다. 그 표정에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한 걸 봅니다. 아무렇지 않게 날아다니는 꽃잎과 새들도 아이들을 깔깔거리게 합니다. 세상에 못생긴 아이는 없습니다. 찡그리고 화난 아이는 있어도 예쁘지 않은 아이는 없습니다.
결혼과 임신, 육아의 과정은 정말 고됩니다. 호르몬과 신체 리듬이 완전히 깨져서 극심한 몸의 피로로 매사 의지만으로 이겨내지 못하는 순간이 많습니다. 자신을 돌보는 순간은 사라지고(이제 막 엄마가 된 사람들은 자신의 자아를 생각할 심리적, 물리적 여유가 없습니다.) 온 신경을 아이에게만 집중하게 됩니다. 하나의 생명체가 새로 태어나고 성장하는 과정은 자신의 인생에서 낯설고 비현실적이고 신비롭지만 상상 이상으로 아프고 힘이 듭니다.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처음 만나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몸 전체가 통째로 분리되었다가 다시 붙은 고통을 견디고 태어난 아이였기에 그만큼 충격적이었습니다. 털북숭이에 아토피가 심해서 벌겋게 된 얼굴을 한껏 찡그리고 목청껏 우는 아이의 모습은 - 첫 느낌이 ‘아프겠다’ 였습니다. 너무 비현실적이었고 당연히(길에서 보던 아기들은 모두 예뻤으니까) 뽀얗고 보송보송 예쁠 거라고 생각했던 아이는 '전혀' 예쁘지가 않았습니다. 예쁘다는 생각보다 정확히 안 예쁜 쪽이었습니다. 엄마가 된 입장에서, 왜 아이가 예쁘다고 생각되지 않는 거지?... 왠지 낯설고 이상한 기분이 듭니다. 꽤 당혹스러웠습니다. 병원에서 집으로 오고 며칠이 나서야 조금 신기하고 꼬물거리는 모습이 이쁘기 시작합니다. 버둥거리는 몸을 조심히 다루며 옷을 갈아입히다가 우연히 잡은 손가락 하나, 꽉 쥔 주먹의 힘(굉장히 셉니다.)이 느껴지면서 '아, 내가 엄마가 됐구나' 그제서야 상황을 실감합니다.
사실 첫 아이가 태어나던 그해엔 크고 작은 유괴사건(1991년에 개구리소년 사건이 일어나고 해결이 되지 않은 상태였던 터라 아이들 유괴에 대해 특히나 민감하던 시기였습니다)이 빈번했었습니다. 심지어 병원에서 다른 집 아기로 바꿔치기하거나 아예 다른 사람의 아기를 몰래 안고 나가는 일도 자주 일어나던 때였습니다. 불안한 뉴스를 접할 때마다 벌써부터 험한 세상을 살아야 하는 아기가 걱정되기 시작합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보니 사회 초년생이 될 때까지 제법 자신만만하게 살았던 세상이 달리 보입니다. 관심두지 않아서 몰랐던 분야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세상이 험하다는 생각에 이르며 마음이 움츠러들며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 시작이 모두 아기가 됩니다.
아토피로 벌게진 얼굴과 몸을 가진 아이가 기록적인 더위의 여름을 견뎌낸다는 건 무척 힘든 일이었습니다. 괴로워서 힘들어서 짜증이 나서 많이도 울었던 시기, 그때까지만 해도 아토피 치료(약은 아예 없었고 병원에서 아토피라고 진단되면 인스턴트 섭취를 줄이고 - 아니 신생아가 무슨 인스턴트 섭취를... - 주변을 자연치화적으로 해 주라는 설명 정도가 다였습니다.)가 쉽지 않았고 실제 해 줄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결국 나중엔 환경을 바꿔주기 위해 서울을 벗어나서 이사를 했지만 여러모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봄에 태어난 아이가 맞는 첫여름은 이제 막 버둥거리기 시작해서 가만히 있지를 못합니다. 잠자는 시간도 줄어들고 더위에 열어놓은 집집마다의 창으로 들려오는 온갖 소리 때문에 가뜩이나 소리에 민감한 아이는 늘 울음을 터뜨립니다. 안 그래도 더운데 아이 우는 소리는 더위를 한층 더 부채질해 여름 내내 주변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아이가 우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하지만 대개는 엄마가 어르고 달래고를 못한 걸로 여깁니다. 아이가 욕구불만을 해소하지 못해서 우는 거라는 생각은 하지만, 엄마라고 별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닙니다. 더구나 아이를 특별히 좋아해 본 적도 없던 사람이 엄마가 되어 어떻게 달래줘야 할지, 너무 작고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존재에게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른 채 멍.... 하니 쳐다보다가 어른들에게 혼쭐이 나곤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를 향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오늘은 날씨가 어떤지, 기분이 어떤지 혼자 느끼는 느낌을 이야기하다가 오늘 틀어주는 음악이 무엇인지 장황하게 설명하며 아기에게 기분이 좋은지, 뭘 먹고 뭘 하면서 놀고 싶은지, 시원하게 목욕을 하면 좋을지, 왜 찡그리고 있는지, 빨래를 마저 하고 놀아줄 테니 조금만 더 참아줄 수 있는지 물어보며... 하염없이 말을 겁니다. 나중에 이 광경을 본 양가 어른들은 혼자 뭘 그렇게 중얼거리냐고 이상하게(집에만 있어서 이상해진 줄...) 보셨지만, 어느덧 습관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하루 종일 엄마의 목소리들 들으며, 아이는 자고, 놀고, 먹고, 웃고, 울고, 찡그리며... 자랍니다.
아이 옆에서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곁에서 '함께한다'는 것이 무슨 효과가 있었을까요?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과 간혹 닥치는 어려운 고비마다 그 이유가 드러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