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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혜연 Nov 15. 2021

배려라는 이름으로

말이 가진 힘



 ‘배려’라고 말하면 입속이 따뜻해진다. 

‘상대방에게 마음을 쓰다.’라는 뜻이 몸속에 퍼지며, 나를 조금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느낌이 상쾌하게 흘러들어온다. 이왕 반려견을 맞이했으니 나는 강아지와의 동거를 토대로, 아이에게 약자에 대한 ‘배려’를 가르치고 싶었다. 아이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빠른 속도로 강아지 공포를 극복했고, 그 이후엔 오히려 말 못 하는 동물을 소중하게 대하는 법에 대한 교육이 더 절실해졌다.

 강아지는 유치가 간지러워 각종 끈을 잘근잘근 물어뜯었다. 새로 산 악어 인형은 이미 터진 옆구리에서 솜이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집에 있는 캠핑용 노끈으로 매듭을 만들었다. 강아지는 적당한 길이로 만들어진 매듭을 이쪽저쪽으로 씹으며 재미있게 놀았다. 

 아들도 그 노끈 매듭을 참 마음에 들어 했다. 한 쪽에서 아이가 당기고, 반대쪽에서는 강아지가 이빨로 당기는 모습이 자주 연출됐다. 둘은 거실을 종횡무진으로 뛰어다니며 신나게 놀았다. 그러다 그 놀이가 지루해지면 아이는 조금 격하게 강아지를 당기기도 했고, 그러면 강아지가 발랑 뒤집히기도 했다. 그 모습이 웃기는지, 점점 더 세게 당기는 듯해, 내가 개입해서 놀이를 중단시켰다. “밍밍이가 싫다고 안 했어.”라고 말하는 아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

 아들은 강아지가 늘어져서 자고 있을 때, 꼭 옆으로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만졌다. 잘 때와 먹을 때는 만지지 말라고 여러 차례 얘기했지만 자꾸 까먹었다. 아이도 잘 커야 했고, 강아지도 편하게 잘 지내야 했기 때문에 난 늘 마음이 분주했다. 말로 설명하는 것에 분명 한계가 있었다. 강아지는 말이 없고, 늘 귀엽기만 하고 즐거워 보이기만 했으니까. 


 반려견 놀이터에 갔던 날이다. 겁이 많은 강아지가 주저주저하며 들어서는 순간, 멀찍이서 주인에게 기대있던 개 한 마리가 정신없이 달려와 우리 강아지에게 달려들었다. 달려오는 속도에 맞춰 우리 강아지도 열심히 피했지만, 계속 지나치게 격하게 달려들어서 남편이 우리 강아지를 번쩍 안아 올렸다. 혹여 물렸나 싶어 달려오던 개의 입이 지나간 부분을 손으로 만져봤다. 피부를 꽉 물리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입이 닿았었는지 털에 물기가 만져졌다. “물렸나?” 하며 속삭이는데, 갑자기 아들이 울기 시작했다. 이유는 우리 강아지가 물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당황한 상대방이 다가와 사과를 했다. 그전까진 자기 개를 통제하지도, 미안하다 표현하지도 않던 사람들이 일순간에 태도를 바꾼 것이다. 아들은 강아지가 다쳤을 까봐 속이 상해 몹시 서럽게 울었다.


 집에 돌아와, 무엇이 걱정됐고 어떤 게 가장 속이 상했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나쁜 개가 달려와서 밍밍이가 무서웠을 것 같았고, 뾰족한 이빨에 물렸으면 아플 것 같아서 슬펐다고 했다. 나는 상대방의 무례함을 되짚어주며, 우는 모습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동생을 보호한 멋진 형이었다고 칭찬해주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들은 조금씩 더 배려 깊은 형으로 거듭나고 있다. 말로 표현 못 하는 답답함을 이해해주고, 무서운 것에서부터 보호해주기. 나의 배려 교육은 느리지만,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뭘 원하는 지는 형인 네가 가장 잘 알잖아. 엄마가 보기에 밍밍이는 형을 가장 좋아해.”

 아들은 이미 강아지와 정서적 유대를 이루고 있다. 요즘은 가끔 사람 음식을 나눠주는 나를 탓하며 강아지의 건강에 유의할 것을 당부한다. 맑고 곧은 너에게 또 배운다.


 너희 둘, 정말 형제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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