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는 길
식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초록의 빛깔에 집중하게 된 게 언제부터인지 알지 못한다. 어느 날 갑자기 로즈메리의 찰랑찰랑하는 머릿결과 몬스테라의 넓은 이파리가 예쁘게 느껴졌다. 그저 평범했던 어느 날, 나는 조금 변했다.
20대 시절, 중년의 아주머니들이 화려한 옷을 맞춰 입고 더 화려한 꽃 앞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며 웃었다. 비웃었다기보다는 정말 웃겨서 웃었다. 유난히 목청이 크고 목을 젖혀가며 웃는 모습하며,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나오는 간식거리. 나는 그런 ‘아줌마’가 되고 싶지 않았지만, 이미 나는 아줌마고 야외에서 누구보다 큰 소리로 이야기할 수 있다. 한없이 자연스러운 변화였다.
입맛도 변했다. 학창 시절,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으면 엄마는 꼭 남은 찬밥에 물을 말아서 짠지나 김치와 후루룩 먹곤 했다. 상남자였던 아빠는 “청승 떨지 마.”라고 콕 짚어 비난했고, 나와 오빠도 별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모습이 유쾌하진 않았다. 그런데 내가 그런다. 밥은 물을 말아야 더 맛있고, 반찬은 장아찌 하나면 족하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그렇게 짠한 것인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베란다에 식물을 모으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였다. 나보다 네 살이 많은 남편은 이른바 ‘반려 식물’에 나보다 훨씬 먼저 입문했다. 그가 꼭두새벽이면 잠에서 깨어나, 분무기로 식물들에 물을 줄 때 나는 두려웠다. 잠결에 ‘아이고. 바짝 말랐네. 목말랐겠다.’ 하는 그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화훼시장에 따라나설 때도 별다른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화분은 거추장스럽고 곧 죽을 것 같은 기분에 귀찮음이 앞섰다. 화훼시장 안에서 남편은 생기가 돌았다. ‘금전수’는 집에 돈을 불러오니 사야 하고, ‘몬스테라’와 ‘스파트 필름’이 잘 자란다며 초록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서 금방이라도 꿀이 떨어질 것 같았다. ‘이제 나이 드니 식물이 좋은 거야?’라고 그를 놀렸다. 그에겐 내 농담 따윈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침저녁으로 흙을 만져보고 혹여 뿌리가 썩어서 식물이 죽으면 내내 속상해했다. 따스한 사랑이었다.
지금의 나는 산과 계곡 풀과 나무의 매력에 서서히 빠져드는 중이다. 코로나 19로 집안에 갇혀 지내는 동안, 베란다에 모여 있는 식물의 가치를 제대로 알게 됐다. 갑작스럽게 내가 너무 많은 짐을 짊어져야 하는데도 아프다는 소리를 낼 수 없는 재난 상황이었다. 나는 커피를 한 잔 들고 식물 앞에 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그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겠다는 듯 빳빳하게 줄기를 세우고 최선을 다해 살아내고 있는 초록들이 내 복잡한 마음도 함께 가져가는 것 같았다. 죽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미리 실망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다. 남은 커피를 목구멍 가득 삼키고 식물에도 조금씩 물을 뿌려주었다.
‘자연으로 돌아간다.’라는 말의 의미를 알 것 같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비슷한 모습으로 우리는 함께 나이 들고 있다. 속도와 깊이가 다를 순 있지만, 누구나 의연하고도 따뜻한 자연을 반려하며 살고자 할 것이다.
문득 주변을 돌아본다. 언제 어디서든 내 옆에 붙어 있으려는 어린 아들과 털북숭이 강아지, 의리가 깊어진 남편이 보였다. 함께 있으니 든든하다. 그런 감사함 마음을 되새기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