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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Nov 16. 2021

그냥 좋아요

좋아하는 데 이유는 없으니까



 강아지와 정이 제대로 들고 나니, 같이 어디든 다니고 싶어졌다. 푸른 잔디밭에 체크 패턴의 천을 깔고 피크닉 바구니에 과일을 가득, 그리고 강아지를 예쁘게 그림같이 놓아두고 싶었다. 밥을 다 먹으면 누워서 낮잠을 자야지. 그러면 강아지는 내 머리맡에 누워서 같이 사랑스럽게 잠드는 건가. 상상만으로도 달콤했다.

 그러나 강아지와 함께 갈 수 있는 곳은 예상보다 적었다. 반려견 출입이 가능하다고 알려진 대형 몰에서도, 막상 들어가면 강아지용 유모차에 태워서 이동할 것을 권고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의견이었다. 개를 좋아하는 건 개인의 취향이고, 그 취향을 강요할 순 없는 것이니 말이다. 반려견 동반 가능 식당도 마찬가지였다. “괜찮습니다. 데리고 들어오셔도 돼요.”라고 흔쾌히 말하는 곳은 흔치 않았고, 출입이 가능한 곳이라 해도 실내와 분리된 야외 테라스에서야 강아지와 함께 앉을 수 있었다. 애견 카페가 아니고는, 어떻게든 눈치가 보였고 마음이 불편했다. 


 여행을 떠나 보기로 했다. 뒷자리에 전용 방석을 놓고 녀석을 그 위에 앉게 했다. 출발해서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동안 아들은 특히 설레 보였다. 올바로 대하는 방법은 배워가는 중이었지만, 이미 아들은 강아지를 충분히 사랑하고 있었다. 

 문제는 화장실에서 비롯됐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각자 볼일을 보고 주전부리를 사기로 하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차 안에 혼자 남은 강아지가 컹컹 짖었다. 마음이 좋지 않아 데리고 내렸더니 녀석도 정신없이 바닥 냄새를 맡으며 즐거워했다. 한 사람씩 강아지를 전담해서 돌보기로 했다. 사라질 때도 티 안 내고 쓱 사라져야 했다. 누구라도 등을 보이고 멀어지면, 녀석은 또 컹컹 짖었다. 짖는 것뿐 아니라, 극도로 불안해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모두 화장실에 들러 다시 차에 올라탔다. 문득 억울한 생각이 드는 거다. 모처럼 나온 가족여행에서 이게 뭐지?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고 셋이 함께 움직일 순 없는 노릇인데 말이야. 내 입에서 자꾸만 한숨이 쏟아졌다. 

 몇 번의 위기를 겪고 무사히 여행지에 도착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먼저 강아지를 맡은 사람이 배변과 산책을 맡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서둘러 개인 용무를 해결해야 했다. 틈만 나면 앞 좌석으로 달려드는 녀석을 진정시키는 건 아들 담당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와서 남편과 나는 깊게 생각한 후에, 강아지 전용 펜션 같은 곳이 아니라면 꼭 다른 곳에 맡겨놓고 우리끼리 가자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아들은 꼭 같이 가야 한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가족이 다 함께 가서 난 엄청 즐거웠어.”라고 말하는 거다. 그때 머릿속이 번쩍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만인 건데, 나는 또 귀찮고 불편했던 시간만 따로 떼어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아들은 책임지는 부분이 매우 작았고, 남편과 내가 전적으로 돌보고 보호했기 때문에 느끼는 피로감은 오롯이 우리 둘의 몫이긴 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모두 다 차에 올라타고 “출발!”을 외치던 때 모두 행복했고, 인적이 드문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 앉아 과자를 먹을 때도 신이 났으며, 우당탕 단체 사진을 찍겠다며 이상한 자세로 서 있을 때도 나는 웃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종종 속도에 관해 생각한다. 아이에게 수학 연산 문제를 풀게 하다가 아이가 토라지거나 감정이 격해지면, 나도 짜증 나는데 여기서 모든 걸 멈춰버릴까 속이 시끄러워진다. 하지만 조금만 시간을 갖고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잠시 쉬었다 가더라도, 절대 멈춰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닫는다. 어른답게, 아이의 인생에 책임감을 느끼며 천천히 가더라도 꾸준히 목표를 향해 걷게 해줘야 하는 것이다. 

 아이가 자라면서 전보다 더 많은 갈등에 시달린다. 그럴 때면 어느새 강아지가 곁에 다가와, 내 무릎에 얼굴이 비비고 배를 보이게 발라당 누웠다가 나를 향해 컹컹 짖는다. 

 나는 숨을 고른다. 너와 함께 천천히 살아내다 보면, 우리에게 엄청난 추억이 쌓이겠지? 털북숭이 강아지를 바라보는 동안, 마법처럼 내 시간이 잠시 멎는다. 머리를 쓰다듬는 내 손길이 따뜻한지, 오늘도 강아지는 내 무릎 위에서 잠을 청한다.


 그래, 좀 늦으면 어때. 

 테라스에만 앉아도 나는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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