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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혜연 Nov 18. 2021

가족인가요? 가족입니다.

가족이라는 건


 



달콤한 세상



 대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한다. 서로 웃으며, 짧은 대화도 나누고 음식을 맛있게 나눠 먹는다. 

 “요즘 힘든 일은 없니?”

 아버지의 물음에 고등학생 딸이 미소로 화답한다. 

"없어요."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우리에게 말하렴.”

 어머니의 따뜻한 한 마디. 딸은 고개를 끄덕이며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먹는다.

 흔히 보는 일일드라마의 단골 장면이다. 따뜻하고 든든한 느낌, 가족이 지향하는 이상향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일단 온 가족이 다 같이 식사하지 않을 확률이 높고, 현실 고등학생 딸은 미소로 화답하는 법이 없으며, 한쪽 손에 휴대전화를 들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대화를 나누기 힘들 것이다. 

 '당연히' 주어지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유지하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의 어린 시절에는 무조건 아버지가 대접받아야 한다는 의식이 강했다. 간혹 양육 가치관이 엄중하고 단호한 부모의 경우엔, 식사 시간마다 예절을 가르치고 실수를 단속했을 것이다. 아이가 물을 쏟으면 ‘끙’하고 침묵으로 부주의함을 나무랐다. 반면 같은 실수를 부모가 저지르게 될 때의 상황은 사뭇 달랐을 것이다. 근엄한 아버지도 때론 컵을 팔꿈치로 쳐서 떨어뜨리곤 한다. 그리곤 말하지.

 “누가 컵을 여기에다 둔 거야?”

 과거, 한국 가족 개념의 이중성은 상대적 약자, 즉 여성이나 아이들을 자연스럽게 하대한다는 데에 있다. 강력한 가부장을 중심으로 한 힘의 균형. 강한 자가 한 실수는 용인되지만, 상대적 약자에겐 아니라는 점. 가끔 광고 문구로 ‘가족처럼 대해드리겠습니다.’라는 문장을 접할 때면, 난 오싹하게 소름이 돋았다.


 도대체, 넌 날 얼마나 함부로 대하려고!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욱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말에 동감한다. 가족이기에 모든 걸 다 받아주고 인내할 이유는 없다. 따뜻하고 편안해서 무례함까지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곁에서 응원하고 보듬어주는 존재. 나 역시 그런 가족을 만들고 싶고, 아들에게도 항상 그립고 행복한 그늘이 되고 싶다.

 언젠가 아들과 식당에 방문했을 때, 점원이 “가족 몇 분이세요?”하고 묻자 당당하게 “네 명이요!”라고 답하는 걸 보고 크게 웃었다. 아들이 생각한 가족은 강아지가 포함이므로 네 명이 맞다. 그렇게 말하는 마음이 예뻤다. 내가 가질 수 없는 순수함이었다.


 맞아요. 우리 가족은 한 마리 강아지를 포함한 네 식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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