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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혜연 Nov 18. 2021

지금이 제일 행복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힘든 일은 한꺼번에 온다. 역경에 부딪히면 처음엔 허둥지둥 갈 길을 잃었다가, 하나씩 포기하며 비로소 갈 길을 찾게 된다.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하나둘 내려놓는 연습은 늘 나를 성숙하게 만든다. 

 때로는 물건이었고, 사람이었으며 상처이기도 했다. 물건을 버릴 때는 그 속에 배어있는 시간을 함께 정리하는 느낌이 들어 특히나 더 망설이게 됐다. ‘아. 이 물건을 처음 받았을 때 내가 이랬지.’라며 잠시 추억에 젖다가, 나도 모르게 다시 서랍 속으로 물건을 집어넣는다. 버린다는 행위는 꽤 어렵다. 

 놀라운 사실은, 막상 없애고 나면 잘 생각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심지어 없어진 지도 모르고 잘 산다. 그러니까 버려도 되는 것이었는데, 나는 도대체 무얼 끌어 안고 버리지 못한 것일까.


 사람을 정리해야 할 때는 살갗이 꽤 아팠다. 수 없이 자신을 다독이고, 더 참을 수 있는지를 묻다가 견딜 수 있는 방향으로 관계를 정리했다. 마흔이 넘었지만, 아직도 새로운 인연을 맺고 이어가는 건 마냥 어렵기만 하다. 어릴 땐 편하게 맺고 풀리든 관계였는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마음이 자꾸 오기를 부린다. 서운함과 불편함이 속으로 차곡차곡 쌓이다가 감정이 터지는 순간이 오는데, 그런 순간이 오면 희한하게도 매우 냉정해진다. 시작은 상대에 잘못이었더라도, 제대로 표현하지 않고 내내 참기만 했던 나에게도 같은 크기의 책임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잘라낸 이후의 아픔을 견뎌내는 것 역시 오롯이 나의 몫이다.

 상처 정리는 아직도 잘못하고 있다. 후련하게 털어내지 못했고, 심지어 그 속을 제대로 들여다본 적도 없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기회에 글을 쓰게 되면서 비로소 나의 속을 들여다 보게 됐다. 


 왜 그때 싫다고 말하지 못했는지.

 말하지도 못할 거면서, 왜 남을 비난하며 시간을 허비했는지.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며 아쉬워했는지.

 지나면 아무것도 아닐 일에, 왜 그렇게 아파하며 머물렀는지.


 문득 감상에 젖는 내 곁에 두 생명이 자리를 지킨다. 아이는 보물 같은 존재다. 아이가 내 몸에서 나오는 순간, 무한 긍정과 감동을 공짜로 얻었다. 아이가 웃는다면 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간의 내 삶의 궤적으론 상상할 수 없는 긍정의 힘이다. 털북숭이 친구는 또 다른 세상을 선물하는 별책부록이다. 무조건 나만 바라보는 눈망울에 세상 시름이 녹아내린다. 


 나이를 먹는다는 게 나쁘지만은 않다. 지나간 일에 연연하지 않고, 갈등에 의연하게 대처하게 되었으니까. 모습이 조금 일그러져도 괜찮다. 겉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이미 배운 나이이기에 그렇다.

 젊은 날이 그립지만, 정작 돌아가고 싶진 않다. 


 딱 지금, 난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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