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다같이 빙글빙글
아들은 여름을 싫어한다. 더위를 타는 체질 탓에 땀도 많이 흘리고, 끈적거리는 느낌도 불쾌하고 윙윙 벌레도 많아서 싫단다. 벌레는 나도 싫어하지만, 나는 더위를 많이 타지 않고 무엇보다 청량한 여름 밤바람에 행복감을 느낀다.
벌레는 무서울 수 있지만 너를 해치지 않고, 땀이 흐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며, 여름엔 바다에서 수영도 할 수 있지 않으냐고 장점을 늘어놔도, 아들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여름밤을 함께 느끼기 위해 산책을 제안하지만, 반응은 영 미지근하다. 나가기 싫은 거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론, 몸에서 늘 열이 나는지 아예 에어컨 앞에 상주하고 있다.
아들이 좋아하는 계절은 겨울이다. 겨울은 덥지 않고 벌레도 없고 눈놀이를 할 수 있다며 미소를 짓는다. 하긴, 눈이 펑펑 내리는 모습을 집 안에서 지켜보는 즐거움도 있다. 그러나 웬만큼 내리고 나서도 눈발이 멈추지 않으면, 나는 즐거움을 뒤로 하고 심장이 쿵쿵 온갖 걱정을 시작한다.
아이가 지금보다 어렸을 때, 나는 아이를 태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폭설을 만나 도로에 세 시간 동안 고립된 적이 있다. 브레이크를 살짝만 밟아도 ABS 등이 반짝거렸고, 핸들이 빙글빙글 헛돌았다. 생애 첫 경험이었다. 회사에서 야근 중이던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오빠, 우리 죽는 거야?”
남편은 나의 질문을 기막혀하며, 도로가 풀릴 가망이 없어 보이면 지금이라도 차를 돌려 마트에 차를 버리고 돌아오라고 말하며 살짝 웃었다. 좀 더 대기하다가 나는 결국 타이밍을 잡아 차를 돌렸고, 거북이처럼 기어서 마트 주차장에 안착했다. 그때 기억만으로도 폭설은 정말 지긋지긋하다. 반면 아들은 그때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도로에 갇힌 시간이 길어져서 몰래 감춰두었던 장난감을 뜯어 주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린이는 역시 한없이 해맑아서 걱정보다는 기쁨이 우선인 모양이다.
봄과 가을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계절이다. 봄은 새싹의 기운 때문인지, 무엇이든 시작하고 싶게 하는 힘을 가졌다. 또한 한 해의 시작이어서 절망과 좌절보다는 희망을 꿈꾸게 하니 더 좋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해에는 유난히 봄비가 자주 왔다. 비 온 후 기온이 떨어지고 바람이 불면, 아이는 우산을 제대로 쥐지 못해 흔들거리며 위태롭게 등굣길에 올랐다.
“예쁜 아기 손바닥이네!”
아이 입에서 쏟아진 보석 같은 표현을 나는 자꾸 잊는다. 잊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더 중요한 걸 챙기느라 하루가 바쁜 삶을 살고 있다.
강아지 가족이 생기고 일 년을 함께 보냈다. 겨울엔 작고 보드라운 아기였고, 봄엔 정신없이 나부끼던 말썽꾸러기, 여름엔 중성화 수술을 했고, 겨울엔 눈밭에서 함께 달리기했다. 차에 태우고 지방 여행을 다니기도 했고, 캠핑을 하러 같이 갔더니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이 생겨 내내 후회하기도 했다. 한때는 갑자기 분리 불안이 심해져 골머리를 앓기도 했다. “안녕! 잠시만 나갔다 올게.”라고 말하고 집을 나섰다가, 1분 만에 돌아오는 훈련을 자주 해야 좋다는 말을 듣고 실제로 여러 번 해보기도 했다. 그때는 짜증 났는데, 돌아보니 참 재미있는 시간이었던 듯하다.
앞으로 우리에겐 수많은 사계절이 남아있다. 분명 매년 다른 사건과 이야기가 넘치겠지만, 아들은 여전히 여름이 싫고 강아지는 여전히 사람에게 딱 붙어 애교를 부리겠지. 지금의 여름이 지나도, 또 한 해를 견디면 또다시 나에게 그 계절이 주어진다는 것이 기적 같다. 아들은 언제쯤 여름에 투덜거림을 멈출까. 강아지와 함께 하는 다음 여행은 언제일까. 가보지 않은 길을 상상해 보는 일은 오늘도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