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견뎌야 할 두려움이라면
아들은 어릴 때부터 겁이 많았다. 내가 그것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았던 이유는 뭐랄까, 두려움을 표하는 대상에 대한 명백한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다. 등원 길에 줄지어 가는 개미를 발로 밟다가 혼나기 일쑤였는데 점처럼 생긴 거미를 보면 오히려 기겁했고, 체험 농장에서 양과 말, 토끼에게는 당근을 척척 나눠 주던 아이가, 길에서 만나는 손바닥만 한 강아지를 보면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으니 말이다. 어린 시절 한때의 두려움이겠거니. 어차피 성장해 나가는 동안 바뀌어 가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다 사건이 터졌다. 강화도에 캠핑을 하러갔던 날이었다. 이틀을 잘 놀고 남편과 나는 집에 돌아가기 위한 정리에 한창이었고, 아이는 캠핑장을 둘러보며 아쉬움을 달래고 있었다. 개수대에서 다 씻은 그릇을 탈탈 털어 나오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아들의 비명.
아이는 화장실 문 앞에서 서럽게 울고 있었다. 전후 사정 파악이 안 된 나는 어쩔 줄 몰라 했고, 남편은 서둘러 아이가 있는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겁에 질린 아이는 온몸으로 울며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문 앞에서 아기 강아지 한 마리와 맞닥뜨렸고 깜짝 놀라 모퉁이를 돌아 달려 나오려던 순간 또 다른 개를 마주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 강아지를 마주한 상황을 멀리서 목격한 남편은 개 주인에게 ‘빨리 너의 개를 데려가라.’라는 사인을 주려는 의미로 “괜찮아. 어서 올라와.”라는 말을 큰 소리로 여러 번 반복했지만, 개 주인은 금방 나타나지 않았다. 아이가 목도한 작은 강아지들은 그저 한두 번 멍멍했을 뿐이었겠지만, 아이는 이미 혼이 나가 있었다.
“네가 강아지를 두려워하는 것보다 강아지가 널 더 두려워할 수도 있어. 용기 내보자.”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지만, 그 두려움은 이미 아이의 뱃속 깊이 둥지를 튼 것 같아 나는 속이 상했다. 겨우 손바닥만 한 강아지였는데 그렇게 무서웠던 걸까. 참으려 해도 자꾸만 한숨이 나왔다.
그때였다. 아이는 갑자기 복통을 호소했고 몸을 좌우로 흔들며 괴로워했다. 잠시 후엔 허리를 펴지 못하겠다며 고개를 숙였고, 숨을 몰아쉬며 힘들어했다. 놀란 나는 안전벨트를 풀고 뒷좌석으로 넘어가서 아이를 손을 잡고 이곳저곳을 만져봤다. 손과 이마는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머리에선 식은땀이 줄줄 흐르다 못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이미 고속도로에 진입한 터라 일시 정차도 곤란한 상황이어서 남편도 나도 당황했다.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대학병원 응급실로 변경하고 일단 최대한 빠르게 가보기로 했다. 나는 어쩔 도리가 없어, 땀범벅이 된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다가 등을 쓸어주고 배를 문지르며 “어떡해. 어떡하지?”라고 발을 동동 굴렀다. 고개를 떨군 채로 마치 내장을 게워낼 것처럼 바르르 떨던 아이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축 처진 채로 사르륵 잠이 들었다. 아이의 몸을 내 쪽으로 기대게 하고, 물티슈로 이마의 땀을 계속 닦아주었다.
일단 잠이 들었으니 그래도 다행이라며 우리는 응급실이 아닌 동네 소아청소년과로 목적지를 바꿨다. 도착한 후에 잠든 아이를 살살 깨우자 아주 단꿈을 꿨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늘어지게 기지개를 켰다. 역시나 특별한 의학적 소견은 없었다.
“뭐에 많이 놀랐나요? 스트레스로 일시적 반응일 수도 있어요.”
의아한 표정으로 돌아서는 우리에게 의사가 말했다.
그렇구나! 문제는 강아지였다.
모든 것이 술술 이해가 되었다. 아이에게 내재해 있던 강아지에 대한 두려움은 온몸이 꼬이고 숨이 막힐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는 걸 우린 알지 못했다.
“우리도 한 마리 길러볼까? 아주 아기 때부터 함께 살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거야.” 남편의 의견이 그럴 듯했다.
그리고 그것 외엔 더 확실한 방법은 없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