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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혜연 Nov 11. 2021

시작은 느닷없이

새로운 반려자, 귀염뽀짝 강아지.

충동적으로 하지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정말 반가워~


 시작은 가히 충동적이었다. 아이가 강아지를 키우자고 말한 이후, 불과 한 시간여 만에 강아지는 우리 가족이 되었다. 나는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 강아지가 담긴 상자를 꽉 잡고서 “이게 무슨 일이지?”라고 말했고, 남편은 “원래 이렇게 시작하는 거야.”라며 맑은소리로 웃었다.

 예전부터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했던 남편과 달리,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책임지고 싶지 않았으니까. 

 내 기억 속 귀여운 강아지들을 예뻐만 했지 스스로 그들을 보살핀 기억은 거의 없었다. 공부해야 하는 학생이라고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이니까, 그 외의 여러 가지 이유로 ‘귀여운 강아지’ 관리는 오로지 엄마 혹은 아빠의 몫이었다. 만약에 우리 집에 강아지가 생긴다면, 남편은 회사에 가야 하므로 결국 강아지는 내 몫이 될 게 분명했다. 

 “메이고 싶지 않아. 난 싫어.” 

 난 강하게 반대했다. 

 “강아지가 늙고 병들고 가족들에게 귀찮은 존재가 되었다가 결국은 죽는 그 과정을 지켜보고 싶지 않아. 먼 훗날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너무 싫단 말이야.”

 진심이었다. 

 어릴 때 요크셔테리어를 키운 적 있다. 검은 털로 뒤덮인 녀석이 바닥과 헷갈려 행여나 밟을까 조심조심 걷고 자꾸만 깜짝 놀라곤 했다. 온 가족이 모여 앉아 강아지 이름을 짓고, 보드라운 털을 만져보고 꺅꺅 소리를 질러댔던 시절. 작디작은 강아지는 십여 년을 우리 곁에 살며 생사고락을 함께했다. 갑작스러운 이사도 함께 하고, 난데없는 식당 운영 중에도 녀석은 가게 쪽방 반죽 기계 옆에서 단잠을 자곤 했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그 방에서 새끼도 낳았는데 그 경이로운 시간을 가족들은 오래도록 이야기하며 웃었다. 가게에서, 학교에서, 군대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각자 치열한 시간을 보내며 세월을 떠안는 동안, 작은 강아지는 우리 곁에서 말 없는 응원과 위로를 보내며 삶을 나누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강아지는 꾸준히 나이를 먹었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강아지는 꽤 외로웠을 것 같다. 일이 많았던 부모님, 나나 오빠도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기 때문에 하루의 대부분을 기다림으로 보냈겠지. 체구가 작아서 발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던 녀석은 나이를 먹자 머리통 피부가 그대로 드러났고 씻겨 놓아도 무언가 불쾌한 냄새를 풍기는 천덕꾸러기로 변해갔다.  

 삶에 지쳐서인지, 강아지가 더 귀엽지 않아서였는지 나는 조금씩 불친절해졌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출근한 어떤 날, 녀석의 마지막을 전화로 전해 들었다. 그 말을 전한 사람이 엄마였는지 아빠였는지 기억이 흐릿하다. 퇴근 후에 들어선 집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모든 것은 그대로였다. 움직이던 녀석만이 사라졌을 뿐.

 손바닥 두 개 정도의 크기였던 강아지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컸다. 한동안 머리가 멍했고 녀석이 죽기 전날 모습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생각만으로도 입속에 무언가 이물감이 남을 만큼, 갑작스러운 이별이었다. 

 사랑만 받던 시절을 지나 외로움을 견디다가 떠나가는 여정. 절대적 시간의 양이 적을 뿐, 개의 시간은 사람의 일생과 닮았다. 지난 세월 동안 작은 강아지에게 우리 가족은 삶 전체와도 같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자 심장이 쿡쿡 아파왔다. 슬펐고 미안했다. 행복의 등 바로 뒤에 소금처럼 짠 슬픔이 마주하고 있었다. 끝없이 미안했고 다시는 시작하지 말아야지, 라고 다짐했다. 

 그러던 내가 아이의 손을 잡고 손바닥만 한 강아지 앞에 또 서 있었다. 강아지는 끊임없이 총총거리며 뜀뛰기를 하고 있었고 생후 3개월이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 플라스틱 울타리 안에 집을 마련해 주자 원래부터 제 집 이었던 것처럼 편하게 엎드렸다. 그렇게 나는 ‘보호자’로서의 후반전을 다시금 시작한다. 두려움 속에 받아 안은 생명. 강아지는 밤새 낑낑거렸고, 남편은 얇은 이불 한 장을 깔고 누워 울타리 사이로 손가락 하나를 넣어주었다고 말했다. 남편의 손톱 끝에 코를 박고 아기 강아지는 잠이 들었다. ‘어쩔 수 없네.’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나는 또 웃고 있었다.

 그렇게 스리슬쩍 가족이 되었다. 그리고 “안녕 아가야.”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마치 엄청난 시간 동안 너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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