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죽과 부추전 이야기

어쩌면 삶은 소금 커피와 레몬 케이크(감칠맛)

by 달삣

20대 초반 대학교 앞에서 자취를 한 적이 있다.


자취집을 가려면 시장 앞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 어둡고 좁은 골목길을 걸어서 도착해야만 하는 허름한 판잣집이었다. 전봇대 주황색 갓쓴 알전구가 흐릿했는데 그 빛을 따라 걷다보면 끝집이 있었다.


안집 식구 여자만 네 식구 살았었다.

골목 어귀에서 채소가게를 하는 주인아주머니가 가장이었는데 가게에서 먹고 자고 했었기 때문에 안집 식구는 실제로 세 식구가 맞을 것이다.


대학에 다니는 두 딸과 시어머니를 모시고 장사를 하였는데 주로 살림은 아주머니의 시어머니인 안집 할머니가 하셨었다.


안집 할머니는 동화 속에 나오는 팥죽 할머니처럼 생기셨다. "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라는 동화 속 할머니는 팥죽을 주위 동물들에게 나눠줘서 호랑이를 물리치는 이야기이다.


할머니 허리는 기역자 모양으로 꺾어져 늘 지팡이 짚고 다니셨는데 어쩌다 한 번씩 허리를 쭉 피고 먼데를 응시하곤 했었다. 어디를 보고 계셨을까. 무엇이 보였나 궁금했다.


그때는 잠시나마 할머니의 쭉 펴진허리 모습을 보고 나까지 허리의 시원함을 느끼고는 했는데"아구구 시원타"하고는 온몸을 꼿꼿히 피셨다.


할머니는 손바닥만 한 햇볕이 들어오는 쪽마루에 앉아 숱이 없는 흰머리카락을 참빗으로 빗어 올려 단정하게 은비녀 쪽을 지셨다.


항상 밑 흰 속바지가 보였고 아래위 다른 색 한복을 입고 다녔다. 신발은 흰고무신이었는데 희끄무레한 색이었다.


할머니 두 손녀의 이름은 하자와 외자였고 성은 정 씨였다.


할머니가 살림을 하셨으나 식구들은 할머니가 한 음식을 잘 먹지 않았다.


대학생 딸들은 동네 제과점 식빵을 사다 먹고 아주머니는 가게에서 대충 음식을 끓여 먹었다.


그래도 할머니는 꾸준히 음식을 하셨는데 특히 팥죽과 부추전을 자주 하셨다.


할머니는 노안으로 눈이 잘 보이지 않으셨는지 재료를 깨끗이 다듬지 못하셨다.


식구들은 음식재료에 이물질이 많이 섞여있는 할머니 음식은 불결하다고 생각했다. 꾸준히 정성 것 해도 잘 먹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젊은이들은 죽 종류를 즐겨하지도 않았다.


기름을 조금 두른 질척이는 부추전도 좋아하지 않았다.

질척이는 식감도 문제지만 맛도 그렇게 당기는 맛도 아니었다.


그당시로 돌아가 장면을 기억해보면

팥죽은 제대로 팥을 고르지 않아서 돌이 씹혔고 부추전은 지푸라기와 흙이 씹혔다.


할머니가 팥죽을 쒀서 손녀 하자에게"하자야 팥죽 먹어봐"하면 하자는"할머니 제발 팥죽 좀쑤지 마요"한다


할머니가 먼저 먹으라고 만들어 내어 준 부추전은 동생 외자는 버리는 중이다."할머니 부추전 먹어서 배부르니까 팥죽 주지 마"


하면 할머니는 자취생들과 세 사는 이의 방문을 두드린다." 이봐 학생 팥죽과 부추전 좀 먹어봐"


한 번씩 할머니 팥죽과 부 추전 맛을 먹어본 사람들은 방문을 잠그고 없는 척을 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할머니는 왜 그리 팥죽을 좋아하셨을까? "저승사자 올까 봐 팥죽으로 중 무장이라도 하신 걸까?" 생각이 든다.


가끔 햇볕이 드는 옹색한 마루에 앉아" 오물오물"이 더없이 맛있게 팥죽과 부추전을 드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생각난다.


오십이 넘어 그 집을 지나가 보니 그 집은 없어지고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깜깜 한밤 그 골목길 껌벅거리던 전봇대의 전등 불빛이 그리워진다.


바람이 차가워지는 11월이 되니 따끈한 팥죽이 당기는 나이가 됐다. 팥에는 신장을 보호하고 몸의 붓기도 빼주는 기능도 있고 나쁜 것을 막아내는 액막이 기능까지 있다고 한다.


모양은 또 얼마나 예쁜가! 자주색 붉은빛의 팥에다 손을 넣어 휘저으면서 손가락 사이로 팥을 떨어뜨려본다. 단단한 팥 콩이 제스퍼 보석을 연상케 한다.


나이가 드니 점점 팥죽 같은 흐물거리는 음식이 좋아진다. 젊을 때는 죽어도 먹기 싫은 음식이었지만 이제는 소화가 잘되고 먹고 난 후 속 편한 음식이 최고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 할머니도 이가 없으니 소화 잘되는 죽 같은 음식이 좋았을 것 같기도 한다.


또 눈도 잘 보이지도 않으니 식재료를 잘 씻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제야 할머니가 이해가 된다.


팥죽을 만드는 과정은 인생과 많이 닮아있다.


단단한 팥을 끓는 물에 푹 삶는 것 젊을 때 야심 만만하고 콧대 센 것이 뜨거운 삶을 거치면서 흐물 흐믈해진다. 기가 꺾이고 부드러워진다.


팥죽을 삶기 위해선 팥을 삶아 첫 팥물은 버린다. 독성의 씁쓸한 맛을 빼는 것이다. 그래야 단맛이 도는 것이다.


나이가드니 다 이해가 된다.


팥죽과 기운 내려고 부추전 먹던 할머니도 이해가 되고, 팥죽 먹기 싫어하던 젊은 시절의 나와 하자 외자도 이해가 된다.


인생은 꼭 그 나이가 돼야 알 수 있는 뭔가가 있다. 오래 살고 볼일이다.

keyword
이전 24화콩나물 국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