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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삣 Aug 21. 2020

낯선 사람과 우산을 쓴다는 건

사는 맛 레시피(거리의맛)

장마 내내 우산이 인기가 있었다.


식구들도 살 부러지지 않고 휴대하기 좋은 우산을 가져가려고  비 오는 출근길에는 우산 쟁탈전이  벌어진다.


 우산은 평소에는 신발장 구석에서 숨죽이고 조용히 있다가 비가 오면 우산살을  쫙 펴고 당당히 거리를 활보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비가 오는 날 우산이 없어서 당황스러울 때 쓰윽하고 우산 하나가 들어오고  강동원이나 박보검 같은 미남이

"우산 같이 쓰고 가실래요"하고 자기는 거의 몸이 밖으로  나와서 비를 쫄딱 맞는 장면이 있다. 여자는 그 남자에게 반한다.


현실은 어떤가 하면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는 않는다. 낯선 이 가  갑자기 훅치고 들어오면 전투태세가 된다. '뭐지?'


우연히  낯선 남자와 두 번 우산을 쓴 적이 있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출근시간에 버스에서 내려 우산을 펼쳤는데 버스에서 내린 남자가 갑자기 우산 속으로 뛰어 들어왔다. 말이 라도 겸손하게 " 미안하지만 우산 좀 같이 쓸래요" 하는 것도 아니고 " 거 우산 좀 같이 씁시다." 


하며 거의 우산을 뺏듯이 하고는 자기 쪽으로 우산을 들고 가는 게 아닌가 얼굴도 뺀조롬하고 불쾌 하기 짝이 없었으나 비가 오는데 내쫓기도 뭐하고 황당 한 상황에 그냥 걸었다.


중간에 그 남자는 고맙다는 말도 안 하고 어느 건물로 들어갔다. 간 다음에야  두려움에서 벗어나

"뭐 저딴 게 다 있어 재수 옴 었네"하고 혼자 소리를 질렀다."매너라고는 눈꼽만도 없는 놈"그래 봐야 공허함만 밀려오는데 드라마 같은 일은 결코 없다.


또 한 번은 퇴근하려고 우산을 펼쳤는데 나보다 키 작고 머리숱도 심하게 없는 안면도 없는 회사 직원이 장대같은 빗속을 뚫고 갈 생각이 없는지 서있었다. 나는" 정류장까지우산 같이 쓰고 가실래요"하니까  말도 미소도 없이 우산 속으로 들어왔다. 가는 내내 '드라마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아 어휴'생각했다.


나도  낯선 사람 우산을 얻어 쓴 적이 있다.

중학교 시절  창덕궁으로 소풍 가는 길에  버스를 잘못 타서 창경궁 돌담을 타고 걸어가는데 갑자기 소낙비가 내렸다.

교복이 순식간에 젖어서  어쩔 줄 모르는데 웬 여자분이 "우산 같이 쓰고 갈래?"하고 훅들어 왔다.


그때는 반항기 있는 사춘기라 '그냥 가지 누가 씌워 달랬나' 생각했던 것 같다. 나도 고마워요 소리도 못하고 가는 내내 말 한마디 못하고선 창덕궁 정문이 보이자 막 뛰어갔던 경험이 있다.


고맙다고 말하지 못할 정도로 나의  젖은 모습이 초췌하고 뻘쭘했다.


낯선 사람과 우산을 같이 쓴 기억이 모두 어색하고 불편했다.


 낯선 사람과는 벽이 있고 모르는 적대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색함이겠지만  너무 가까이 다가오는 것에 대한 공포감가  있다.


낯선 사람들에게 무례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길가다 한번 툭 쳤다고 해서 시선이 마주치면서 "뭘 봐"하며 쳐다봤다고 싸움으로까지 번지는데 동물적 감각의 선을넘어들어오는불쾌함 때문일 거다.


친한 사람도 약간의 거리를 두는 게 편할 때가 있는데 그것 때문에 낯선 사람과 우산 쓰기가 불편했구나 싶다.


대의 밀접한 거리 내에 들어감으로써 상대를 위협하거나 공격하는 것입니다.


_ 책 '나를 위한 사회학' 이와모토 기케키_


실제로 낯선 이들이  1m 안으로 들어오면 위협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엘리베이터나 대중교통시 사람들의 표정은 반쯤 굳어있고 낯선 이 가 말이라도 걸면 불편해한다. 설령 칭찬이라도 그렇다.


 가능한 선인 예의를 지키되 또 한 번 낯선 사람과 우산을 같이 쓰게 된다면 보다 친절한 모습을 보여볼까 한다.  어색하고 뻘쭘하기는 피장파장이니까 그래도 우리의 이웃이지 않는가? 서로 호의를 베풀고 고마워하는 표현도 해가며 살아도 괞쟎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며칠 내내 땡볕이더니 비가 온다. 우산을 꺼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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