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 당면 전골

어쩌면 삶은 소금커피와레몬케잌

by 달삣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5년 정도 되었다.


67세 간경화로 휘경동 삼육병원에 3월 초에 입원하셔서 3월 말에 돌아가셨다.


아버지 돌아가시던 날

병원 마당에 벚꽃이 푼푼이 지던 기억이 난다.


가정마다 다 사연이 있듯이 아버지는 가족과 떨어져 평생을 사셨기 때문에 작은아버지를 통해 연락받았을 때에는 간경 화병이 많이 진행된 상태였다.


술을 좋아하셨던 아버지의 간 상태가 많이 안 좋아서 의사는 일주일이라는 시간만 남았다고 통보했다. 사람이 기가 막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그리고 꼭 일주일 후 돌아가셨다.


형제들과 아직 겨울 냉기가 남아있는 3월 말 위생병원 마당에서 장례를 의논했던 기억이 난다.


개나리는 추위 속에서도 명랑하게 피어나고 우리는 오들오들 떨면서 어른 고아가 됨을 실감했다.


비록 사정 때문에 서로 떨어져 살았어도 아버지의 부재는 컸다. 살아계실 때는 몰랐는데 가슴속에 바람이 불었다. 아버지를 생각하며 어린아이의 기억으로 돌아가 본다.


가끔 해주던 아버지의 쇠고기 전골 맛은 기가 막혔다.


전골냄비에 쇠고기를 간장 양념해서 양파와 마늘을 많이 넣고 다시마 국물에 대파와 당면까지 넣으면 맛이 달았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가 한 번씩 끓여내는 전골을 맛있게 자식들이 먹으면 “아! 잘도 먹는다”하며 아버지도 입을”아”하고 벌리시며 웃으셨다.


아버지가 평생을 박장대소하며 경박하게 웃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그때는 어떤 기쁨보다 커다란 것을 느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보니 아버지의 심정을 알 수가 있었다. 자식 입에 음식 들어가는 게 기쁨이라는 걸 느끼게 된 것이다.


아버지는 요리 맛있게 하는 비법이 “ 음식 할 때는 불 옆을 떠나지 말고 지켜보고 음식에는 정성이 깃들어야 한다. 나중에 시집가서도 아이를 키울 때도 정성을 들여야 한다”. 말씀하셨는데 그때는 그 말이 어려서 잘 몰랐다.


그날의 달달한 쇠고기 전골 맛은 아버지의 사랑의 맛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이번 추석날 형제들이 모여 아버지 요리에 대해 추억하자 멀리 떨어져 산세 월의 원망이 돌아가셨는데도 아직 남아 있었나 보다.


아버지의 전골 맛이 특별했던 기억은 쇠고기가 귀한 시절에 쇠고기 전골이니 맛있을 수밖에 없다고 남동생이 우스갯소리를 한다."그때는 고기는 뭘 먹어도 맛있었어"


그 맛을 기억했을 뿐인데 떨어져 산 아버지도 맘도 편하지는 않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오십이 넘으니 든다. 남동생도 아버지를 이해하는 날이 곧 오겠지라는 생각을 해본다.


keyword
이전 16화귤과 마들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