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오이지를 타고

사는 맛 레시피

by 달삣



연일 폭염이 오르내리고 곧 휴가철이라 다들 어디론가 시원한 곳을 찾아 떠나고 싶을 것 같다.


녹음 짙은 계곡과 청파랑의 바닷가에 몸을 담그고 열기를 시킬 생각만 해도 온몸이 짜릿해온다. 딱 거기까지다.


진짜 생각만 그렇고 실상은 가는 길 교통 정체에 마스크 낀 우리네와 발바닥 뜨거운 모래 해수욕장과 쓰레기 몸살을 앓고 있는 전국의 땅과 계곡, 바다를 생각하니 속이 갑해져 왔다.


차라리 집안에 콕 틀여 박혀 선풍기나 에어컨을 간간히 틀며 시원한 오이지 우린 물에 밥 말아먹으며 더위를 시키는 게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여름이면 친정엄마의 여름 반찬이 한 번 더 공개되는 시기다.


일주일 전에 엄마 집에 갔더니 돌로 오이지 눌러 논 걸 보여주며 아직 더 있어야 한다고 해서 돌아서며 아쉬웠는데 며칠 지나서 전화가 왔다.


" 아침 뜨겁지 않을 때 엄마 집에 와, 오이지 가 마침맞게 익었다. 배낭 둘러메고 오너라. 올 때 숏 빵 하나 사 오고 오디잼 발라먹으려니까"


" 네, 알았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속으로 '유야호'쾌재를 불렀다.


내가 한 오이지가 김치 냉장고에 있지만 엄마가 만든 곰팡내 나는 별미 오이지는 한여름에 기다리는 이들이 많다.


엄마네 갔더니 엄마의 무짠지 고추 삭인 것 오이지 깍두기 등 자꾸 나온다


"이건 시누이 갔다 줘"하며 따로 더 챙겨줬다.


청양에 사는 언니가 시골생활을 접고 서울로 이사온지 얼마 안 된걸 엄마가 아셨기 때문이다. 오이지는 이렇게 뜨거운 날씨에 먹어야 맛있고 찬바람이 불면 맛이 떨어지기 때문에 뜨건 날씨임에도 만나기로 했다.


배낭이 제법 묵직해오고 혹시 김치 냄새라도 날까 꼭꼭 밀봉해 음식 보따리를 메고 집에 왔다.


예전에는 음식 보따리 메고 다니는 걸 싫어했지만 이 음식을 먹고 식구들이 '아 맛있어'하는 표정을 생각하니 그다지 싫지가 않다


다음날도 36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였지만 여자들만이 아는 맛의 릴레이 보따리를 지고 언니네 집과 우리 집의 중간지점 전철역 근처 다동 남포면옥 평양냉면집에서 시누를 만나기로 했다.


더우니 넓은 냉면집이 북적거렸다.

시원한 평양냉면을 먹고 무슨 접선하듯 선글라스를 낀 채 근처 다동 커피집에 가서 음식물 보따리를 언니 배낭으로 건넸다.

다동 커피집은 에스프레소가 리필이 되어서 쥔장이 석 잔이나 더 주셨다.

' 에고 에고 오늘 잠은 다 잤다. 어쩌자고 위스키도 아닌데 쓴 고농축 커피를 석 잔씩이나 마셨는가 '


젊은이들이 좋아한다는 에티오피아 예가체프와 콜럼비아 수프 레마 등 산미가 있는 게 꽤 맛있었다.


"예가 체프는 산미가 강하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좋아하죠"하고 쥔장이 말해서

"저희 이야기네요 예가 체프로 주세요"해서 서로 웃었다.


이렇게 더운 날은 도시 안에서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도 꽤괜쟎은 피서 방법인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총총히 오이지 보따리를 들고 힘차게 떠나는 시누이의 뒷모습에도 나의 빈 배낭에도 오이지 사랑 여름사랑이 배어 있는 듯했다.


피서가 따로 있나 싶다. 밥 말은 찬물에 오이지나 고추장아찌면 여름을 이겨 낼 것 같다.

한낮에 마신 에스프레소 석 잔이 여름밤을 하얗게 잠 못 들게 해도 뿌듯함이 몰려온다.


올 피서의 시원한 계곡과 바다는 상상으로만 하기로 했다.

keyword
이전 14화층간소음은 배려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