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과한 집이란 없다

by 고쳐 쓰는 이작가

두 번째 전세 계약을 하면서는 솔직히 겁이 났다. ‘잘한 결정일까’라는 불안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양가 부모님까지 한 목소리로 과하다고 하니, 잘못된 선택을 한 건 아닐지 걱정도 됐다. 그도 그럴 것이 전에 살던 집의 두 배가 넘는 42평으로, 평수를 크게 늘렸기 때문이었다.


다소 무모해 보이는 평수늘리기에는 첫 집의 영향이 컸다. 집에서 주로 일을 하는 나에게 작업실용 방은 필수였다. 개인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한 남편 역시 방이 필요했다. 침실 포함 방 세 개인 집을 구해야 했다. 살아보니 중앙난방의 단점도 컸다. 마음대로 보일러를 켜고 끌 수 없어 겨울 내내 수면바지와 도톰한 양말이 필수였다. 여름도 예외는 아니었다. 온수가 나오지 않는 시기엔 꼼짝없이 찬물 샤워를 해야만 했다. 사계절 코를 훌쩍 거려 시아버지가 온풍기를 사다주실 정도였으니, 불편함을 달고 산 4년이었다.


남편에게는 부족한 주차 공간도 큰 스트레스였다. 아침 일찍 나가는 날에는 주변 차들을 손으로 밀어야 해서 양 손바닥이 까매졌고, 조금이라도 늦게 퇴근하는 날에는 이중주차할 자리도 없어 단지를 몇 바퀴 도는 일도 허다했다. 안그래도 오래된 남편의 차는 매일 앞 뒤로 손자국이 났고, 여기저기 긁힌 흔적도 하나둘 늘어갔다.

반면 뚜벅이인 나에게는 입지가 생각보다 중요했다. 주로 집에서 일을 했지만 녹화나 생방송이 있는 날에는 현장에 가야 했다. 당시 아침방송을 했는데, 일주일에 2~3일은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2번 갈아타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새벽 5시 30분에 집을 나서도 빠듯한 동선이었다. 상암, 강남, 여의도 등 미팅 장소도 다양했다. 길에다 시간을 버리는 일도 허다했다. 이런 저런 불만들을 모아보니 반대로 살고 싶은 집의 윤곽이 잡혔다.


결심을 실행에 옮기려면 '총알', 즉 돈이 필요했다. 지난 4년은 그 총알을 장전하기 위해 치열하게 버틴 시간이었다. 매달 적금을 넣는 풍차 돌리기와 생활비 줄이기는 일상이었다. 그 사이 남편의 연봉이 오른 것도, 프리랜서인 내가 쓰리잡, 포잡을 하며 일을 늘린 것도 큰 도움이 됐다. 싹싹 긁어 계산해보니 어느덧 4억 원이라는 거금이 모여 있었다.


처음 알아본 곳은 7호선 천왕역 인근이었다. 남편 직장에서 차로 30분 거리인 서울 구로구는 위치도, 가격도 적당했다. 당시 집값이 급등하던 광명에 비해 오히려 구로가 저렴한 편이라 신축 20평대 매물도 전세로 충분히 구할 수 있었다.


부동산 중개사가 보여준 집은 역세권의 번듯한 신축 아파트였다. 처음 생각한 조건에는 가장 부합했지만, 문제는 불어난 전세금만큼 우리 눈도 한껏 높아져 있었다는 점이었다. 좁은 집에서 참으며 살아온 4년에 대한 보상심리였을까. 냉장고를 베란다에 두어야 하는 구조를 보자 남편은 단번에 미간을 찌푸렸다. 허투루 모은 돈이 아니기에, '삶의 질'이라는 가성비를 챙기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30평대까지 평수를 넓히니 역과의 거리는 멀어졌지만 공간이 주는 만족도는 올라갔다. 하지만 이사 날짜가 맞지 않아 고민하던 찰나, 운명은 충동적으로 찾아왔다. 중개사가 가벼운 마음으로 던진 "구경이나 한 번 해보시라"는 말에 따라 나선 곳에서 우리는 완전히 꽂혀버렸다.


2008년식 아파트로 가구당 1.45대의 널널한 주차 공간은 역세권을 이기는 조건이었다. 30평대 보다 저렴한 전세가도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처음 봤을 때 감탄이 절로 나오던 넓은 내부까지. 남편과는 현관문 크기부터가 다르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어찌보면 과했지만, 우리에게 그 집은 단순한 허세가 아닌, 지난 4년간의 고단함을 씻어줄 휴식처로 느껴졌다. 단 한 가지, 전체 세대수가 고작 35세대뿐인 '나홀로 아파트'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제외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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