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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림 Dec 11. 2018

82년생 김지영, 79년생 정아무개.

조남주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지독하게 어려운 임신이었다.
기쁨을 느낄 새도 없이 죽을 것 같은 입덧이 시작되었다.
임신 7주, 체중계 바늘은 41kg을 가리키고 있었다.  내 키를 생각할 때 뼈에 가죽만 남아있는 꼴이었다.
구토가 멈춘 건 22주에 들어섰을 때였다. 그러나 23주에 자궁이 열렸다.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날을 창문도 없는 지하에 위치한 분만실에서 보냈다. 3주가 넘도록.
그리고 병실로 옮겨져 5주를 보냈다. 8주간 약을 최고치로 쓰며 진통을 막아내었지만 결국 32주에 자궁이 다 열려 버려 응급수술로 출산을 했다.
기대와 행복으로 기다린 출산 같은 건 없었다. 아이들이 죽지 않고 온전한 모습으로 태어나기만을 바랐고, 여러 종류의 자궁수축 억제제를 장기간 맞은 채 출산을 한 나는 그 부작용으로 출산 후 자궁수축이 이루어지지 않아 내 인생에서 가장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밤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그 밤이 지나고 맞이한 시부모님은 밥을 못 먹은 아들을 걱정하시며 나가서 밥을 먹고 오자고 하셨다. 누군가의 딸인 나는 자궁을 들어낼 위기에 처해 밤새 피를 긁어냈는데, 누군가의 부모인 그들은 죽을 것 같은 터널을 빠져나온 며느리보다 아들의 밥을 걱정하셨다. 그날 이후로 쌍둥이를 키우느라 밥 따위는 제시간에 먹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게 될 한 여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였을까. 아니, 그건 아니었을 것이다. 진심으로 걱정하고 고마워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분들은 밤새 자궁 속 피를 긁어내어 허리도 못 돌리는 한 여자를 두고, 그녀의 보호자인 아들을 데리고 밥을 먹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을 굳이 감추지 않고 표출하셨다. 그것이 팩트이고, 그건 79년생 정아무개 씨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이 책을 읽은 겨울날의 그 밤은 그가 출장 중이라 홀로 시간을 보내던 밤이었다.

자기 전에 손에 들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가 몇 페이지 읽다 전원을 끈 이유는, 82년생 김지영 씨가 대학 선배로, 친정엄마로 빙의된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모습이 너무 섬찟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섬찟한 행동을 하고도 자신의 행동을 기억하지 못하는 김지영 씨. 그녀의 이상행동은 무엇으로부터 기인된 것이었을까.  홀로 누운 깊은 밤에 읽기는 내 멘탈이 견디기 힘들 것 같아 결국 전원을 끄고 뒤척이다 잠에 들었지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다시 켜서 읽기 시작했다.

82년생 김지영 씨는 79년생 아무개 씨로 바꿔도 전혀 이질감이 들지 않는 삶을 산다. 그것은 82년생 김지영 씨가 여자이듯, 79년생 아무개 씨도 여자이기 때문이다. 섬찟한 행동을 보인 82년생 김지영 씨는 출산과 육아로 자신을 포기한 대부분의 삼사십 대 여성을 대변한다.
쌍둥이를 남편의 근무지인 지방에서 혼자 키우면서 비로소 밥을 끼니때에 맞춰 먹거나 화장실을 가고플 때 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폭풍 같은 시기가 지나가고 아이들이 네 살쯤 되었을 때 걷잡을 수 없는 상실감이 밀려왔다. 가족들에게 가졌던 서운한 마음과 분노가 표출되기 시작했다. 우울증인 것 같다 말하는 내게 그런 건 약한 사람에게나 찾아오는 거라며 쓸데없는 말 말라 하셨던 친정 부모님과는 그 후 거의 일 년을 소원한 관계로 지냈다.
많은 시간이 지났다.
아이들은 많이 컸고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일은 거의 없어졌으며 친정부모님과의 관계는 회복되었다. 그럼에도 군더더기 없는 문장으로 설명하는 82년생 김지영 씨의 삼십몇 년의 삶은 나를 뒤흔들며 지난날 속의 꺼내어놓기 힘들었던 상처를 떠올리게 했다.
여자보다는 남자가 더 읽어야 할 책, 결혼과 육아로 어떠한 상실감을 느낀 적이 있다면 어쩌면 눈물이 나게 할지도 모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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