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산 게이 <헝거>를 읽고.
헝거. 허기.
몸과 허기에 대한 고백을 읽으며 나는 부끄러웠다.
190cm에 261kg. 가장 살이 쪘을 때 록산 게이의 기록이다.
그 몸이 무엇 때문에,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적은 글을 읽으면서 안타까워했다. 그녀 자신도 쓴 것처럼 그렇게 자신을 사랑해준 부모님께 털어놓았더라면, 도움을 요청했더라면, 기댔더라면 그렇게까지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그렇다. 나는 261kg의 몸을 망가진 몸이라 생각한 것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했음을 알았을 때 나는 부끄러웠고, 읽기를 잠시 멈춰야 했다.
나는 늘 말랐었다.
키는 168cm인데 고등학교 입학 때 겨우 40kg을 넘겼다. 결혼했을 때 46kg였고 출산 당일 아침 몸무게가 56kg였다. 그러니까 나는 3~4년 전까지는 계속 마른 사람으로 산 셈이다.
어려서부터 말라깽이, 소말리아 등의 별명이 따라다녔다. 당시의 사진을 보면 볼이 쏙 들어가 얼굴이 각지고 다른 사람 같다.
먹어도 찌지 않는데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뚱뚱한 사람한테 대놓고 "왜 이리 살이 쪘어?"라 말하는 건 무례하다고 생각하면서 마른 사람에게 "야, 왜 이렇게 말랐어? 밥 안 먹어? 좀 먹어"라 말하는 건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먹는 양이 적지 않았고(오히려 식사량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그저 단 음식을 싫어했을 뿐인데 "저러니 살이 안 찌지"라고 웃으며 말했다.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이야기의 마무리는 말라서 부럽다고, 살 안 쪄서 좋겠다는 말이었다. 계속 들으니 칭찬 같았다. 계속 들으니 살찌는 게 싫었다. 그래서 최근 몇 년간 살이 많이 찐 내 몸이 어딘가 맘에 들지 않는다 여기게 되었다. 이런 기이한 생각은 나 자신의 잘못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몸에 비정상적인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의 잘못도 분명 있다.
그녀는 놀라운 일들을 해냈다. 열두 살 때 자신이 좋아하는 소년으로부터 배신당하고 그와 그의 친구들로부터 강간당한 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삶을 짓누르는 그 공포 속에서도 끊임없이 글을 쓰고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이제는 그것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음을, 더는 숨지 않아도 됨을 공개적으로 밝힐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그렇다고 믿고 싶다) 자신의 몸을 견고한 성으로 만들어버리려는 노력으로 뚱뚱해지는 데 성공했고, 나쁜 짓을 당할 확률이 줄었음에 안도했다. 그녀의 성공으로는 가늠하기 힘든 몸의 역사가 그녀에게 깃들어있는 것이다.
며칠 전 읽은 그녀의 소설은 소설이기에 힘들어도 견딜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모든 것이 살아있는 이야기이며 팩트이다. 이 힘든 이야기를 읽으며 내가 더 힘들었던 이유는 그녀도 책의 전반에 걸쳐 적었다시피 그녀 자신이 중상류층이었다는 점이다. 먼 곳으로 도망가고 싶을 때 비싼 기숙학교의 학비를 대주는 부모님이 있었고 대학을 다니다 1년간 사라졌을 때 뒷정리를 다 해주고 모든 비용을 처리해 준 아버지가 있었다. 사랑을 빙자한 간섭은 싫었을 테지만 다시 돌아왔을 때 따스하게 맞아주고 진정으로 걱정해주는 가족이 있었다. 경제력과 사랑을 가진 부모님이 있는 생존자, 피해자 (그녀는 일어난 일의 엄중함을 깎아내리고 싶지 않기에 '피해자'를 선호한다고 했다)의 삶이 이렇게 힘들었을진대 그것이 없는 생존자/피해자의 삶은 어떨 것인가.
우리는 너무나 자주 성폭행 기사를 접한다. 그리고 같은 빈도로 그들이 얼마나 편하게, 가볍게 처벌을 피해 가거나 다시 사회로 돌아오는지를 본다. 몰카는 더 이상 심각한 범죄가 아닌 것처럼 이야기되고 어떻게 피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글을 본다.
여자로 태어난 나는, 우리는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다. 나쁜 남자를 만나봤을지는 몰라도, 맞거나 죽지 않았음에 안도한다. 당신은 이런 삶을 진짜로 이해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