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크의 끔찍한 죽음은 공사 현장을 완벽한 혼돈에 빠뜨렸다. 인부들은 장비를 버리고 도망쳤고, 프랭크는 본사의 독촉 전화와 현지 경찰의 조사를 받으며 거의 신경쇠약 직전까지 몰렸다. '투성'은 막대한 위약금을 물 위기에 처했고, 서연에게는 어떻게든 사태를 수습하라는, 사실상 불가능한 명령만이 매일같이 쏟아졌다.
하지만 서연에게는 이제 공사의 성공 여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케일럽과 함께 이 저주를 끝낼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두 사람은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시 빌리의 낡은 트레일러를 찾았다. 지도와 역사 자료 말고, 그가 정말로 숨기려 했던 '진짜' 단서가 있을 거라는 직감 때문이었다.
"이건..."
케일럽이 트레일러 침대 매트리스 밑, 헐거워진 바닥 판자 아래에서 먼지 쌓인 낡은 가죽 일기장을 꺼내 들었다. 빌리의 필체였다. 그것은 단순한 일기장이 아니라, 한 가문의 끔찍한 비밀과 참회의 기록이었다.
첫 장을 넘긴 케일럽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갔다.
일기장은 케일럽의 5대조 할아버지, '사일러스'의 이야기로 시작했다. 그는 이 땅에 처음 정착한 백인 개척자 중 한 명이었지만, 단순한 개척자가 아니었다. 그는 아파치-콤 부족과 교류하며 그들의 신뢰를 얻었고, 심지어 '붉은 매' 추장과 의형제를 맺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는 그 신뢰를 배신했다.
개척자 군대가 마지막 결전을 준비할 때, 여자와 아이들만 남은 마을의 위치를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때, 사일러스가 금화 몇 닢에 눈이 멀어 군인들을 그 비밀스러운 마을로 이끌었다. 그는 '붉은 매'를 배신한 첫 번째이자, 가장 치명적인 인물이었다.
"아니야... 이럴 리가 없어..." 케일럽이 일기장을 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빌리는 자신의 조상이 저지른 끔찍한 죄를 뼛속까지 알고 있었다. 그는 평생을 '붉은 매'의 원혼이 깃든 이 땅을 지키며,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그는 악령이 단순한 원혼이 아니라, 배신당한 자의 분노가 대지의 힘과 결합하여 만들어진, 텍사스의 흙 그 자체가 된 존재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몇 년 전, 이 땅에 첫 번째 개발 계획(지금의 '투성' 공장 이전에 시도되었던)이 발표되었을 때, 빌리는 혼자서 그 의식을 거행했다. 일기장은 그날 밤의 공포를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일기장 내용 - 2019년 11월 4일)
"오늘, 그들이 땅을 파헤칠 첫 번째 측량 기계를 가져왔다. 더는 미룰 수 없다. 나라도 그분을 막아야 한다. 자정, 붉은 흙의 중심부로 향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신성한 흑요석과 정화의 세이지를 피웠다. 내 피를 제물로 바치며 고대의 언어로 봉인의 주문을 외웠다.
바람이 멎고, 땅이 울었다. 그리고 그것이 일어섰다. 흙먼지가 소용돌이치며 2미터가 넘는 거대한 형상을 이루었다. '붉은 매'였다. 하지만 추장의 긍지는 온데간데없고, 오직 굶주림과 증오만이 남은 텅 빈 눈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두려움에 맞서 주문을 외웠다. '사일러스의 피'가 흐르는 나만이 그를 달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악령은 나를 비웃었다. "배신자의 피다!" 그것의 포효에 대지가 갈라지는 듯했다. 신성한 흑요석이 깨지고, 세이지의 불길이 꺼졌다. 거대한 흙의 팔이 나를 짐짝처럼 내동댕이쳤다. 봉인은... 실패했다."
일기장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빌리가 봉인에 실패하고 간신히 목숨만 건져 도망친 그날 밤, 분노한 악령은 그를 직접 죽이는 대신, 가장 잔인한 복수를 택했다.
"저주는 피를 타고 흐른다."
악령은 빌리의 핏줄, 그의 유일한 아들이자 케일럽의 아버지인 '마크'를 저주했다.
케일럽은 숨이 멎는 듯했다. 그의 아버지는 케일럽이 어릴 적, 이 마을에서 가장 다정하고 유쾌한 목장 주인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그는 변하기 시작했다.
일기장은 그날의 참상을 이렇게 기록했다. "악령이 내 아들의 정신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마크는 밤마다 허공에 대고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죽이지 않은' 원주민 아이들의 환영을 보았고, 귓가에 '배신자의 아들'이라는 속삭임이 들린다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케일럽의 아버지는 미치광이가 되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을 '개척자 군대'라 부르며 곡괭이를 들고 위협했고, 이웃집 헛간에 불을 지르며 '그들의 영혼을 정화해야 한다'라고 외쳤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하고 손가락질했다.
"그때... 아버지가... 나에게 소리쳤어..." 케일럽이 텅 빈 눈으로 중얼거렸다. "나더러... '붉은 매'의 눈을 하고 있다고... 날 죽여야 저주가 끝난다고..."
결국, 케일럽의 아버지는 더 이상 저주를 견디지 못했다. 경찰에 체포되기 직전, 그는 가족이 운영하던 목장 헛간에서 스스로 목을 맸다. 마을 사람들은 그가 미쳐서 자살했다고 수군거렸다. 케일럽은 그저 미치광이의 아들이 되어, 평생을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수치심 속에서 살아왔다.
"아니었어... 아버지는... 미친 게 아니었어..."
케일럽의 손에서 일기장이 떨어졌다. 모든 조각이 맞춰졌다. 아버지가 왜 그렇게 고통스러워했는지, 왜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는지, 그리고 할아버지 빌리가 왜 그토록 이 땅에 집착하며 자신에게는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는지. 그것은 케일럽을 보호하기 위한 빌리의 마지막 참회였다.
"아버지..."
거대한 슬픔이 케일럽을 덮쳤다. 그는 자신의 조상이 저지른 죄와, 그 죄 때문에 아버지가 끔찍하게 죽어간 진실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케일럽은 어린아이처럼 웅크린 채 오열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원망, 그리고 뒤늦게 깨달은 진실에 대한 고통이 뒤섞인 통곡이었다.
서연은 이 거대한 비극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녀가 겪었던 직장 내의 배신감 따위는 이 뼛속 깊은 원한과 저주에 비하면 먼지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그저, 울고 있는 케일럽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떨리는 어깨를 말없이 감싸 안았다.
그녀의 이성은 여전히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논리나 합리가 아닌, 그저 한 인간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온기만이 유일한 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