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부: 준비

by 짱이아빠

나코마의 오두막에서 돌아온 후, 서연과 케일럽에게는 숨 쉴 틈조차 없었다. 그들은 빌리의 트레일러 구석구석을 뒤져 나코마가 말한 두 번째 요소, '추장의 유물'을 찾아냈다. 낡은 공구함 이중 바닥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던 그것은, 짐승의 뼈를 깎아 만든 하얀 피리였다. '붉은 매'가 생전 부족의 화합을 위해 불었다던, 아직 피와 원한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물건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케일럽의 피와, 서연의 의지뿐이었다.


결전의 날은 보름달이 뜨는 이틀 뒤로 정해졌다. 하지만 그 이틀은 서연에게 있어 지옥보다 더한 시간이었다. 악령은 영리했다. 놈은 자신을 가둘 덫이 준비되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아챘고, 계획의 가장 약한 고리인 '이방인' 서연을 무너뜨리기 위해 총공세를 퍼부었다.


그것은 밤마다 찾아오는 끔찍한 악몽으로 시작되었다.

서연은 식은땀을 흘리며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벌써 사흘째, 같은 꿈이었다. 꿈속에서 그녀는 만삭의 임산부였다. 배가 터질 듯이 불러와 고통에 몸부림치며 산통을 겪었다. 하지만 다리 사이로 끔찍한 미끈거림과 함께 쏟아져 나온 것은 아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차갑고 끈적한 점액질에 뒤덮인, 거대한 도마뱀이었다.


도마뱀은 서연의 배 위를 기어 올라와, 노란 눈동자로 그녀를 빤히 쳐다보며 쇳소리로 낄낄거렸다. "내 아이야... 너는 괴물을 낳았어..." 그 도마뱀의 눈은 공사 현장에서 봤던 붉은 흙더미 속의 악령, 그 텅 빈 눈동자와 똑같았다.


"허억... 헉..."


침대에서 일어난 서연은 화장실로 달려가 헛구역질을 했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반쯤 죽은 사람처럼 퀭했다. 극심한 불면증이 그녀의 이성을 갉아먹고 있었다.


'도망치고 싶어.'


변기통을 붙잡은 채, 서연의 마음속에서 억눌러왔던 욕망이 검은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지금이라도 짐을 싸서 공항으로 달려간다면? 가장 빠른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돌아간다면? 이 끔찍한 흙먼지와 귀신, 그리고 피비린내 나는 저주 따위는 영영 잊을 수 있을 텐데. 내가 왜 남의 조상의 죄 때문에 도마뱀을 낳는 꿈이나 꾸며 목숨을 걸어야 해?


핸드폰을 켜 인천행 항공권을 검색하는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예약' 버튼만 누르면 이 지옥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이것은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생존 본능이었다.


"서연 씨?"


그때, 밖에서 인기척을 느낀 케일럽이 문을 두드렸다. 그는 악령의 공격을 걱정해 서연의 컨테이너 앞에서 밤새 불침번을 서고 있었다. 서연은 황급히 찬물로 세수를 하고 문을 열었다. 문밖의 케일럽 역시 며칠 새 부쩍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흔들림 없이 단단했다.


"안색이... 너무 안 좋아요. 또 그 꿈을 꿨나요?" 케일럽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서연은 쥐고 있던 핸드폰을 등 뒤로 감췄다. 도망치려 했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에게 붙잡아 달라고 말하고 싶은 것일지도 몰랐다.


"케일럽... 나 무서워요." 서연이 처음으로 약한 소리를 내뱉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아요. 그냥... 다 포기하고 싶어요."


케일럽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는 서연이 감춘 핸드폰 화면의 불빛을 본 듯했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대신 그는 조용히 서연의 어깨를 감싸 쥐었다.


"알아요. 당신은 이 일과 아무 상관 없으니까. 지금 떠나도 아무도 원망하지 않아요.... 나조차도요." 그의 목소리는 씁쓸했지만 진심이었다. "하지만... 당신이 없으면 덫은 완성되지 않아요. 그리고 덫이 없으면, 저 악령은 이 공장을 넘어 마을로, 도시로 뻗어 나갈 거예요. 제 아버지를 죽였듯이, 또 다른 누군가를 미치게 하고 죽이겠죠."


케일럽은 서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는 내 피로 죗값을 치를 겁니다. 하지만 문을 닫아줄 '순수한 의지'는 강요할 수 없어요. 서연 씨의 선택이에요."


그의 눈 속에는 간절함과 동시에, 혼자서라도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비장한 결의가 담겨 있었다. 서연은 그 눈빛에서 며칠 전 어둠 속에서 느꼈던 그 따뜻한 손의 온기를 다시 떠올렸다. 자신이 도망치면, 이 남자는 빌리처럼 처참하게 찢겨 죽을 것이다.


서연은 등 뒤의 핸드폰 화면을 껐다. "... 준비하러 가요."


결전의 날 밤, 공사 현장 동쪽 구역. 붉은 흙이 처음 발견되었던 그곳은 이제 거대한 제단으로 변해 있었다. 서연과 케일럽은 나코마가 일러준 대로 소금을 뿌려 거대한 원을 그리고, 그 중앙에 3번 굴착기가 파헤쳤던 구덩이를 배치했다. 작업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갑자기 마른하늘에 천둥이 치며 돌풍이 불어닥쳤다.


"꺄악!"


서연이 들고 있던 소금 포대가 바람에 날려갔다. 단순한 바람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그녀를 밀치고 있었다.


"가라... 떠나라... 이곳은 네가 있을 곳이 아니다..."


귓가에 끔찍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고, 눈앞에 다시 도마뱀 떼가 기어 다니는 환각이 보였다. 서연은 비틀거리며 구덩이 쪽으로 밀려났다. 발밑의 흙이 무너져 내리며 그녀의 몸이 칠흑 같은 구덩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려는 찰나였다.


탁!


케일럽이 몸을 날려 서연의 팔목을 낚아챘다. "정신 차려요! 놈이 당신을 쫓아내려는 거예요! 당신의 의지를 꺾으려는 거라고요!" 케일럽의 외침이 환청을 뚫고 들어왔다. 서연은 이를 악물었다. 공포에 질려 도망치는 것, 그것이 바로 악령이 원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케일럽의 손을 잡고 기어올라 왔다. 흙투성이가 된 얼굴로, 그녀는 허공을 향해 소리쳤다.


"안 가! 절대로 안 도망가! 여기서 널 끝장낼 거야!"


서연의 외침과 함께, 휘몰아치던 바람이 거짓말처럼 잠시 잦아들었다. 악령도 그녀의 단단해진 '의지'를 느낀 것이었다.


"준비됐어요." 서연이 숨을 몰아쉬며 케일럽을 보았다. 그녀의 눈에 더 이상 망설임은 없었다. 케일럽은 고개를 끄덕이며, 품에서 낡은 주머니칼을 꺼내 자신의 손바닥을 그었다. 선명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사냥을 시작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