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부: 에필로그 - 흙먼지 가라앉고

by 짱이아빠


폭풍우가 휩쓸고 간 텍사스의 아침은 거짓말처럼 투명했다. 밤새 대지를 뒤흔들던 뇌우도, 귓가를 찢을 듯한 악령의 비명도, 붉은 흙먼지의 광기도 모두 사라졌다. 남은 것은 비에 젖어 짙은 갈색으로 변한 흙 냄새와, 씻은 듯이 맑게 갠 하늘뿐이었다.


서연과 케일럽은 동쪽 구역의 봉인된 구덩이 앞에 나란히 서 있었다. 그곳은 이제 평범한 공사장의 일부처럼 보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그 평온한 흙 아래, 얼마나 거대하고 슬픈 분노가 잠들어 있는지를.

케일럽은 빌리 할아버지가 늘 지니고 다니던 낡은 보안관 배지를 흙 위에 살며시 내려놓았다.


"편히 쉬세요,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도요."


그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더 이상 슬픔에 잠식된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는 비로소 수십 년간 자신의 가문을 옥죄어온 죄책감과 저주의 사슬을 끊어냈다.


서연은 말없이 그의 손을 잡았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생명력으로 따뜻한 손. 그녀는 지난밤 생사의 고비를 넘기며 이 남자를, 그리고 이 척박한 붉은 땅을 사랑하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서울의 빌딩 숲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날것 그대로의 삶이 이곳에 있었다.


'여기 남을까.'


처음으로 '투성'이라는 거대한 간판도, 성공에 대한 강박도 없는 삶을 꿈꿨다. 케일럽과 함께 목장을 고치고, 저녁이면 붉은 노을을 보며 맥주를 마시는 삶. 그것이 진짜 행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운명은, 아니 '투성'은 그녀를 그렇게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사건 수습 보고를 위해 본사와 화상 회의를 연결한 날, 화면 속 인사팀 상무는 뜻밖의 제안을 던졌다. 아니, 그것은 제안을 가장한 명령이었다.


"김서연 매니저, 아니 이제 김서연 팀장이지. 자네가 텍사스 현장의 그 골치 아픈 '미신' 문제를 해결했다는 보고는 아주 인상 깊었어. 공사가 재개됐다니 기적에 가깝군."


"운이 좋았습니다." "운도 실력이야. 특히 그런... '비과학적인 리스크'를 관리하는 능력은 우리 회사에 아주 희귀하거든." 상무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서류 한 장을 화면에 띄웠다.


[발령: 글로벌 위기관리팀 팀장 / 근무지: 중국 시안(西安) 반도체 2 공장]


"시안 공장에서... 꽤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 병마용갱 근처를 파다가 뭐가 나왔다는데, 인부들이 밤마다 헛것을 보고 미쳐 날뛴다나? 자네가 적임자야. 이번 건만 잘 처리하면, 본사 핵심 임원 자리는 따 놓은 당상일세."


서연은 멍하니 화면을 응시했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만약 거절한다면, 그녀는 회사에서 매장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텍사스에서의 이 모든 일들이 그저 '실패한 관리자'의 헛소리로 치부될 것이 뻔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묘한 호기심을 부정할 수 없었다. '해결사'. 그것이 그녀의 새로운 정체성이 되고 있었다.


출국 날, 오스틴 공항의 게이트 앞. 케일럽은 서연의 짐을 들어주며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려 노력했지만, 눈가에는 짙은 아쉬움이 배어 있었다.


"정말... 가야만 해요?"

"미안해요, 케일럽. 아직은... 내가 해야 할 일이 남은 것 같아요." 서연은 케일럽의 뺨을 어루만졌다. 텍사스의 태양에 그을린 그의 피부가 그리워질 것 같았다.


"하지만 약속할게요. 언젠가, 이 모든 게 끝나면... 반드시 다시 돌아올게요. 당신과, 붉은 흙이 있는 이곳으로."


"기다릴게요. 흙먼지가 가라앉고, 다시 바람이 불어올 때까지."


짧지만 깊은 입맞춤을 끝으로, 두 사람은 작별했다. 케일럽은 서연이 보안 검색대를 통과해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서연은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멀어지는 텍사스의 대지가 붉은 점으로 변해갔다. 그녀는 긴장을 풀고 좌석 깊숙이 몸을 묻었다. 이제 끝났다. 끔찍했던 악몽도, 붉은 매의 저주도.


'시안이라... 거기도 만만치 않겠지.'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승무원이 건넨 샴페인을 한 모금 마셨다. 기내 조명이 어두워지고, 승객들은 하나둘 잠을 청하고 있었다. 평화로운 비행이었다.


그 평화가 깨진 것은, 비행기가 태평양 상공을 지날 무렵이었다.

서연의 대각선 앞줄, 창가 쪽에 앉아 내내 불안하게 다리를 떨던 중년의 동양인 남자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그의 눈은 초점이 없이 풀려 있었고, 입가에는 기괴한 거품을 물고 있었다.

승무원이 다급하게 다가갔다.


"손님, 자리에 앉아 주십시오. 지금은..."


하지만 남자는 승무원을 거칠게 밀쳐냈다. 그리고 기내의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을 만큼, 찢어질 듯한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동쪽에서 온 자, 하늘에 닿으라!!!"

"......!"


서연의 손에서 샴페인 잔이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유리잔이 깨지는 소리는 남자의 외침에 묻혔다.

그 말. 서연이 텍사스의 컨테이너 창밖에서 바람결에 들었던 그 말. 그리고, 100년 전 '붉은 매' 추장이 죽어가며 남겼다던 저주의 주문.

그것이 왜 지금, 텍사스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태평양 상공에서, 낯선 남자의 입을 통해 들려오는가.

서연이 경악에 찬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는 순간, 남자는 기내식에 제공된 은색 포크를 역수로 쥐고 망설임 없이 자신의 목을 찔렀다.


푸욱!


"꺄아아아악!"

동맥이 끊어지며 솟구친 붉은 피가 기내 천장과 앞 좌석의 하얀 시트를 적셨다. 남자는 목에 포크가 박힌 채, 피를 토하며 서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죽어가는 그의 눈동자가 정확히 서연의 눈과 마주쳤다.

그 눈. 붉은 흙구덩이 속에서 서연을 노려보던 악령의 텅 빈 눈동자와 똑같았다. 남자의 입술이 벙긋거리며, 소리 없는 말을 서연에게 전했다.


'끝난 줄 알았나?'


서연의 온몸에 털이 곤두서는 듯한 소름이 돋았다. 심장이 멎을 듯한 공포가 다시 그녀를 덮쳤다. 텍사스의 붉은 흙은 봉인되었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악령은, 혹은 그 악령을 만들어낸 더 거대한 어둠은, 이미 그녀를 따라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전 세계의 '동쪽'마다 또 다른 붉은 매들이 깨어나고 있는 것일까.


비명과 혼란으로 아수라장이 된 기내 한복판에서, 서연은 덜덜 떨며 자신의 배를 감싸 안았다. 며칠 전 꾸었던 꿈, 도마뱀을 낳던 그 끔찍한 악몽이 다시 떠올랐다.


비행기는 흔들리며 어둠 속으로, 더 깊은 미스터리의 심연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텍사스의 붉은 흙> -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