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남이가
내 친구 A는 의리가 넘친다. (의리는 사전적 의미로 사람으로서 지켜야할 도리를 뜻하지만 이 글에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자기 사람을 생각하는 끈끈한 정'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친구는 의리를 인간의 최고 덕목이라고 생각해서 어떤 일이든 자기 사람 편을 들어주고, 그들을 칭찬하고, 그들 대신 용기있게 나서주기도 한다. 그래서 그를 따르는 친구들도 많다. 그런데 이 훌륭한 인품을 지녀보이는 이 친구에게도 큰 약점이 있다. 이성적임보다는 감정적으로 말하고 행동할 때가 참 많다는것이다. 가령 이 친구의 친한 사람이 누가봐도 나쁜 행동을 했을 때 조차도 이 친구는 어떻게든 그 사람을 변호하기 위해 앞뒤도 안맞는 궤변까지 끌어들인다. 그리고 자기가 잘못한 일에도 친구니까 이해해주라는 식으로 말한다. 의리를 자기 입맛에 맞게 써먹는다. 이런 친구와는 합리적인 대화를 기대할 수가 없다.
중학교 다닐 때의 일이다. 나는 공부를 잘해서 무난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는데 한 번은 나를 잘 챙겨주던 음악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졸린 내 눈을 보시고는 밤에 공부를 많이 해서 잠이 오는가보다 하시면서 엎드려 자도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서 반친구들에게는 "정신차리고 제대로 들어"라고 언성을 높이셨다. 나는 그 때 자기는 커녕 화가 나서 잠이 달아났다. 편애도 정도껏해야지, 저런 사람이 선생님 될 자격이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이후로는 그 분이 보기 싫어 인사도 건성으로 했었다.
비슷한 일은 어른이 되어서도 여러차례 있었다. B와 C는 나와 친했고 그 둘은 나에게 잘 대해주는 사람들이었다. C와 B는 친한 친구였지만 C는 늘 사람들에게 B욕을 하며 다녔고 B는 C의 위선적이고 가식적임도 모르고 C를 칭찬만 하곤했다. 나는 C의 행동을 알고나서 그와의 관계를 끊어버렸다. 나와 직접적으로 상관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런 부류의 사람과는 인맥을 유지하고 싶은 생각이 더이상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런 행동들을 한 것은 반 친구들에 대해서나 B에 대한 의리가 있어서가 절대 아니었다. 내 편 니 편 할 것 없이 깔 사람은 다 까버리는 나는 오히려 의리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나는 그저 행실이나 타인을 대하는 태도가 틀려먹은 사람을 상종하기 싫어하는 까탈스러운 성격을 가졌기 때문이다. 나에게 잘하든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가 않다. 악하고 거짓된 사람은 일단 멀리하고 싶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만 잘하면 다 용서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것을 의리라고 생각하고 자신도 그 의리에 보답해야한다고 생각하곤 한다. 학연, 지연, 혈연도 마찬가지이다. 그것들 역시 의리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용기와 힘을 줄 때가 많다. 의리는 분명 좋은 면도 많고 아름다운 인간애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의리가 종종 사람을 좁은 세상으로 가두어버린다는 것을 인지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의리가 객관적인 눈으로 현상을 보지 못하게 만들고 판단력과 통찰력을 없앨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자신의 기준에서 만들어놓은 의리가 타인에 의해 무너졌다고 느낄 때 드는 으리으리한 배신감 또한 이루 말 할 수가 없다.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는 의리, 무조건 멋지고 훌륭하게만 볼 일은 분명 아닐 것이다. 아무래도 의리는 이성보다 감정에 많이 치우쳐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감정이라도 과한 것은 안 좋은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