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친다는 것

선생은 종종 오만해진다

by Norah

여기저기 하고 있던 멘토링 활동을 모두 접은지 몇 달이 되어간다. 멘티들 역시 자신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해주기를 기대하는 눈치였고 해결책보다는 단순한 위로와 공감을 받고 싶어하는 경향이 많았다. 멘토링이 그들의 삶에 진정 도움이 될까하는 의심도 들었다. 이런 저런 이유는 많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가르친다는 것이 갑자기 하기가 싫어졌다. 나도 다 잘 하는 것도 아니면서 내가 뭐라고 훈계질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책임감없이 보이는 즉흥적인 결정에 연락도 많이 받았지만 조금도 후회는 없다.


나는 어릴 때 남의 장점을 서슴없이 말해주는 아이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는 사람의 장점보다 단점이 더 눈에 들어왔고 칭찬보다는 비판과 시비가리기를 더 많이 하게 되었다. 겸손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슨 이유로 내가 그렇게 변하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 설에 고향에 가서 아버지와 간만에 기나긴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이유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나도 인지하지 못했던 것을 아버지께서 정확하게 집어 주셨던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부터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가르치는 학생마다 성적과 태도가 좋아져서 잘 나가는 과외 선생으로 소문이 났다. 그 덕에 다른 친구들보다는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타인의 삶에 지적질을 해대는 행동은 나도 모르는 새 습관이 되어버렸다. 낮은 자세로 한창 배워야 할 20대에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가르치려드는 거만함이 몸에 밴 것이었다. 가르친다는 것은 세 가지 보시 중에 법보시에 해당된다고 어깨를 으쓱였던 행동과 심지어는 멘토들 앞에서까지 멘토링 하는 법에 대해 가르친 것을 생각할 때 마다 부끄러움이 생긴다. 대체 내가 뭐라고.


한번은 반야심경 풀이를 해석해서 책으로 내보고 싶다는 나의 말에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그 뜻을 바로 접은 적이 있다. "글이라는 것은 쓰는 사람의 의도와 다르게 읽혀질 수도 있는데 진리는 그렇게 설명되지 않는다. 空이라는 것도 글로 알 수 있을 것 같으면 모든 사람들이 다 도를 깨쳤을 것이다."

그때 나는 고승들이 도가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똥이다"라든지 "차나 들게"라고 말씀하시며 대답을 피하신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가르쳐서 알 수 있는 것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가르친다고 그대로 흡수하는 사람도 드물다. 아무데서나 가르치려드는 것은 자신의 오만함을 극명하게 드러내줄 뿐이다.


우리 회사에도 가르치는 것을 엄청나게 좋아하시는 올드맨이 계셨는데 그 분에게는 한 번 잡히면 기본 30분 이상 연설을 들어야 한다. 전형적인 꼰대였고 그 분과 눈이 마주칠까 겁이 날 지경이었다. 외로운 분이시려니 생각하고 작정하고 들어줄 때도 있었지만 그 많은 이야기, 남얘기는 절대 듣지 않고 혼자서만 쏟아내는 이야기 중에 기억에 남는다거나 뭔가를 느끼게 된 적은 솔직히 한 번도 없었다. "잘 모르는가 본데"로 시작하는 그 이야기들은 지나치게 고리타분하고 편견이 가득했고 자기 테두리 바깥에 있는 사람은 다 이상하고 희한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통에 반발심만 생기게 되었다.


우리는 부모나 선배나 노인이나 상사나 선생이라는 이유로 너무 많이 가르치려 든다. 그러면서 이런 게 다 관심이라며 잔소리를 합리화시켜버린다. 자신은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런 가르침은 청자 위주가 아니라 화자 자신이 그 말을 하고 싶으니까 하는 말일 때가 많다. 그들은 단지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말이라는 것은 하면 할수록 실수를 하게되고 자가당착에 빠진다. 가르침은 위험하기도 하다. 가르친다는 것은 내가 알고 있고 내가 아는 것이 맞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다. 특히 백지상태의 아이들에게 잘못된 정보일지도 모르는 내 말을 주입하는 것은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맞다고 우기는 모든 말은 틀린 것이다. 이제는 가르치는 일을 떠나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는 일에 더 열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개가 짖는다고 해서 용하다고 볼 수 없고 사람이 지껄일 수 있다고 해서 영리하다고 볼 수 없다. -장자


Capture.JPG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지도가 아니라 깨우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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